뉴욕 타임스스퀘어의 거리 풍경. ‘비싼’ 뉴욕도 알고 보면 이용할 만하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 ‘뉴욕타임스’ 여행 지면의 베테랑 칼럼니스트이자 뉴욕에서 11년째 살고 있는 매트 그로스(Matt Gross)는 가난한 여행자들도 얼마든지 뉴욕을 즐길 수 있다고 장담한다. 그는 10월의 첫 번째 주말, 아내와 2박3일간 뉴욕 관광에 나섰다. 이들 부부는 500달러(약 60만원)로 두 사람이 주말 내내 뉴욕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부는 예산을 살짝 초과했다. 부부가 금요일부터 일요일 오후까지 쓴 비용은 총 537달러. 그러나 이들은 주말 내내 우아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미술관을 관람하고, 영화를 보고, 또 요트를 타면서 뉴욕의 구석구석을 구경했다. 이제부터 그로스 부부의 행적을 따라가보자.
유서 깊은 호텔 더블룸 숙박비 149달러
● 호텔 대신 단기 아파트 | 뉴욕을 찾는 여행자에게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호텔 비용이다. 그로스는 뉴욕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 여행자에게 ‘단기간 아파트’를 빌리는 방법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뉴욕에는 ‘루모라마닷컴’(roomorama.com)처럼 단기간 아파트를 빌리려는 사람들을 위한 인터넷 사이트가 많다.
저렴하지만 깨끗하고 우아한 호텔도 구석구석 숨어 있다. 그로스가 찾아간 호텔은 맨해튼의 웨스트 23번가에 자리한 첼시호텔
(www.hotelchelsea.com). 마크 트웨인, 아서 밀러, 에단 호크가 묵었던 이 유서 깊은 호텔의 더블룸숙박 비용은 149달러다. 공동욕실을 사용해야 하지만 호텔 룸은 충분히 깨끗하고 안락하다.
● 모마도 금요일엔 공짜! | 금요일 오후, 호텔에 짐을 푼 그로스 부부는 바삐 길을 나섰다. 이들이 맨 처음 찾아간 곳은 뉴욕 현대미술관(www.moma.org). 앞머리 철자를 따서 흔히 ‘모마(MOMA)’라 불리는 이 미술관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www.metmuseum.org)과 함께 뉴욕을 대표하는 전시공간이다. 모마의 입장료는 1인당 20달러지만 매주 금요일 오후 4시부터 8시까지는 무료입장이다. 그로스 부부는 여기에 더해 미술관 지하에서 무료로 영화까지 보고 나왔다.
● 저렴하고 우아한 호텔 레스토랑 | 모마를 나와 그로스 부부가 찾아간 곳은 파커 메르디앙호텔의 레스토랑. TV 드라마 ‘소프라노스’의 포스터와 엘비스 프레슬리의 사진 등이 대형 패널로 장식된 이 호텔 레스토랑에서 두 사람은 햄버거, 프렌치프라이, 맥주, 음료수로 저녁식사를 해결했다. 비용은 29달러. 아주 싼 가격은 아니지만 미드타운의 고풍스러운 호텔 바 분위기도, 식사의 질도 만족스러웠다.
● 아침엔 허드슨 강변 산책을 | 토요일 아침, 그로스는 허드슨 강변을 달리며 주말을 시작했다. 한때 이곳은 부두 선원들과 그들을 유혹하는 매춘부들, 싸구려 술집의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우범지역이었지만 지금은 말끔히 단장됐다. 호텔을 나와 19세기 스페인풍의 카페 ‘시티 베이커리’에서 아침식사로 크루아상, 커피, 홍차, 샌드위치를 8달러50센트에 즐긴 그로스 부부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미술관은 입장료 대신 기부금을 받는다. 부부는 각각 2달러의 기부금을 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옥상에는 10월26일까지 ‘풍선 강아지(Balloon Dog)’ 등 제프 쿤스의 유쾌한 조형물 3점이 설치돼 미술관을 찾는 재미를 더해준다.
● 무제한 지하철 패스 | 뉴욕 지하철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펀 패스(fun pass)를 7달러50센트에 산 그로스 부부는 지하철을 타고 뉴욕의 인도인 거리 ‘커리 힐’로 이동했다. 렉싱턴 애버뉴 26번가와 30번가 사이의 이 거리에는 인도 식당들이 즐비한데, 그중 그로스 부부가 선택한 식당은 32년 역사를 자랑하는 ‘커리 인 어 허리(Curry in a Hurry)’. 두 사람이 먹은 카레, 난, 밥, 샐러드 가격은 팁을 포함해 21달러12센트였다. 이 정도 가격은 맨해튼에서 찾기 어려울 정도로 싼 수준이지만, 커리 힐에서는 1인당 10달러면 정통 인도 카레를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철저한 사전 준비와 클릭품은 필수
뉴욕 현대미술관은 매주 금요일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무료로 개방된다.
freetime.com) 같은 사이트에 들어가면 주말마다 뉴욕 각지에서 벌어지는 공짜 쇼, 공연, 가이드 투어 리스트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이날 그로스 부부는 2시에 센트럴파크에서 벌어진 ‘벨베데레 캐슬’ 투어, 3시에 웨스트 55번가에서 열린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 5시에 워싱턴 스퀘어에서 펼쳐진 서커스 쇼, 7시30분에 이스트 할렘에서 열린 플라멩코 쇼 등을 보느라 바빴다. 이것들은 모두 홍보를 위해 공짜로 열린 공연과 쇼였다.
● 레스토랑엔 와인을 가져가세요 | 저녁 시간, 택시를 타고 그리니치빌리지로 이동(택시 요금 10달러)한 그로스 부부는 ‘허드슨 강과 공원의 친구들’이란 모임이 공짜로 운영하는 허드슨 강 투어에 참가했다. ‘백경’의 작가 허먼 멜빌이 일하던 하수도 등 허드슨 강의 명소들을 구석구석 구경하니 늦은 저녁이다. 뉴욕 식당들의 저녁식사 가격은 점심식사보다 두 배 이상 비싸다. 그러나 이들 식당 중에는 B.Y.O.B(Bring Your Own Bottle), 즉 음료수나 술을 가져가도 되는 곳들이 있다. 이런 식당의 명단은 ‘엔와이매그닷컴’(nymag.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로스 부부가 찾은 곳은 소호의 분위기 좋은 캐리비언풍의 바 ‘이보와 룰루(Ivo · Lulu)’. 두 사람은 이날 저녁 최고로 많은 돈을 썼다. 식사비는 팁 포함 53달러. 그러나 7.58달러짜리 와인을 사들고 갔기 때문에 술은 따로 시키지 않았다.
● 요트는 단돈 5달러! | 다음 날인 일요일, 그로스 부부는 친구들과 만나 브루클린의 차이나타운으로 갔다. 이곳은 싸기로 유명한 맨해튼의 차이나타운 식당들보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손님을 불러모으고 있다. 딤섬 브런치를 1인당 11.75달러에 즐긴 그로스 부부는 브루클린의 요트 클럽에서 요트를 타고 시원한 에일맥주를 마시며 2박3일 뉴욕 여정을 마무리했다. 이 요트 클럽은 멤버십도 필요 없고, 단돈 5달러의 렌털 비용만 내면 된다. 맥주 값이 오히려 더 비싸다. 한 잔에 6달러.
충분히 먹고 마시고, 편안한 호텔에서 쉬었는데도 부부가 사흘간 쓴 돈은 537달러. 이 정도면 뉴욕은 충분히 ‘가난한 여행자의 천국’이 아닐까. 단, 철저한 사전 준비와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는 수고는 감안해야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