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임모 씨가 박 중위와 나눈 대화 녹취록. 박 중위가 인사청탁 로비를 벌인 정황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한 달여 지난 7월 말 군 검찰은 박 중위의 조기전역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억대의 돈을 받아 챙긴 혐의로 육군 인사사령부 박모(37) 소령을 구속했다. 구속 당시 박 소령의 혐의는 특가법상 뇌물죄. 3사 출신으로 2006년 임관한 박 중위의 의무복무 기간은 2012년까지였다.
하지만 박 소령이 실제로 인사청탁 로비를 한 정황은 드러나지 않았다. 사건 직후 군은 “현재까지 박 중위가 다른 군 관계자들에게 로비한 정황은 포착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군 검찰은 박 소령을 상대로 가로챈 현금의 사용처를 파악하는 한편, 박 중위의 계좌를 계속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사건과 관련해 금융사기 피해자인 전·현직 군 관계자 사이에서는 “실제로 군 최고 수뇌부를 상대로 한 인사청탁 로비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와 관심을 끈다. 과연 로비가 있었던 것일까.
‘주간동아’는 최근 국정감사(이하 국감) 과정에서 드러난 이 사건의 각종 의혹을 추적함과 동시에 조기전역 청탁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을 차례로 접촉했다.
먼저 올해 초부터 피의자 박 중위와 함께 중간모집책으로 활동했던 예비역 장교 임모(33) 씨는 청탁과 관련해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박 중위 평소 군 수뇌부 이름 들먹이며 전역 자신”
“지난해 말 박 중위를 처음 만나 직접 투자하고 투자자를 모을 때부터 박 중위는 자신이 조만간 조기전역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밝혔다. 박 중위는 박 소령이 (군 최고 수뇌부) ○○○ ○○에게 로비해 이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믿고 있는 듯했다. 박 중위는 자신의 조기전역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박 소령의 고향에 찾아가 박 소령 측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군 고위 관계자를 만나 이 문제를 논의했다는 말도 한 적이 있다.”
임씨는 그 증거라며 최근 기자에게 올해 1월26일 작성했다는 녹취록을 내밀었다. 다음은 녹취록 내용 가운데 일부.
박 중위 : 제가 지금 전역 문제로 일요일 날, 아 토요일인가? 핵심 관계자를 만났거든요. 그분이 ○○, 지금 현재 (군 최고 수뇌부) ○○○ ○○ 바로 엄청 친하신 고향 분, 아니 아니 그분이 지금 일단은 컨택할 거예요. 지금, 설날 전까지 결과가 … 결과가 나올 거예요. 그분이 본인이 해주겠다고 바로 결재를 한 거죠. (중략) 그분이 법 쪽에 최고 수장이라, 그 다음에 (군 최고 수뇌부) ○○○ ○○이랑 두 분을 바로 측근에 두고 있는 분이거든요. 그래서 그분 말이면 안 될 게 없어요. 법적인 문제도. 그래서 3월 안으로 분명히 저는 전역할 거예요, 어떤 식으로든. 그래서 혹시 만약에 안 된다 그러면 선배님한테….
임○○ : 그래, 괜찮으면 하는 거지.
또 다른 피해자 김모 씨도 기자에게 건네준 내용증명을 통해 인사청탁 가능성을 언급했다. 올해 5월 박 중위의 사무실에서 그와 동업자들을 만났다는 김씨는 “박 중위가 자신이 쉽게 전역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고, 내가 이를 의아해하자 자신을 봐주는 군내 배경이 있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청탁과 관련해서는 박 중위가 그 대가로 박 소령에게 1억원을 건넨 것으로 군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주간동아’가 입수한 박 중위의 계좌에 따르면, 올해 2월 박 중위의 계좌에서 두 차례에 걸쳐 박 소령 아들의 계좌로 1억원이 이체된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인사청탁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박 소령이 받은 돈의 행방이 핵심. 하지만 군 검찰은 국감 요구 자료 답변 등을 통해 박 소령을 지난 8월11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등에 관한 법률 위반(알선수재) 및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밝혔으나, 돈의 행방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첩보 입수하고도 위법성 판단 못해
군의 안일한 대응도 도마에 오를 만하다. 사건이 불거진 직후 육군 고등검찰부는 4월경 박 중위의 사기행각 첩보를 입수하고 내사에 착수해 그 전모를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군은 이미 지난해 10월 이 사건과 관련한 첩보를 입수했던 것으로 국감에서 드러났다.
이주영 의원(한나라당)은 “기무사가 지난해 10월4일 ‘현역 간부 30여 명이 총 10억~15억원(개인별 500만원에서 2억원)을 박 중위에게 투자했다는 사실을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보고받은 3군사령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즉, 사건 첩보에 관한 군내 연락 및 보고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육군은 첩보를 입수한 4월보다 3개월 전인 1월에 이미 헌병을 통해 박 중위의 주식투자 첩보를 인지하고 문제점을 확인했으나 그때는 위법성 판단을 전혀 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만일 지난해 10월 첩보가 보고된 직후 군이 적극적으로 사태 해결에 나섰다면 피해액은 크게 줄어들 수 있었다. 실제로 육군본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사기사건 피해액은 군이 첩보를 입수한 지난해 10월 이후 급격히 늘었다. 사기 투자금을 받기 시작한 지난해 3월부터 10월까지의 피해액이 28억~29억원인 데 반해, 같은 해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의 피해액은 370억원에 달했다.
심지어 박 중위가 구속된 5월28일 이후에도 5000만원, 3000만원, 1000만원 식으로 수억원의 돈이 박 중위의 계좌에 투자금 명목으로 입금됐다. 국감에서는 “사건의 심각성이 인식된 올 4월 이후에라도 관련 계좌를 폐쇄하는 등 조치를 취했다면 피해가 줄었을 것”이라는 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이 밖에도 군 수사당국은 수사과정에서 박 중위와 공모한 핵심 용의자로 해외 도피한 인터넷 금융 다단계 관계자 2명에 대해서는 수배령조차 내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박 중위의 계좌에서 뭉칫돈으로 인출된 자금의 행방도 현재로선 오리무중이다. 그의 계좌에선 2007년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수취인 정보를 알 수 없는 수억원대 뭉칫돈이 여러 차례 빠져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박 중위 사건과 관련해 불거지고 있는 추가 의혹에 대해 육군 고등검찰부 관계자들은 구체적인 답변이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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