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에너지가 40% 지분을 보유하고 원유를 생산하는 브라질 BMC-8 광구.
유가가 상투를 쥐고 추락한 지 오래지만 SK에너지 간부의 말투는 여전히 조심스럽다. 자체 분석으로도 ‘변수가 많긴 하나 향후 유가는 좀더 하락한 뒤 박스권을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지만, 유가가 오르면 매출이 늘게 돼 있는-그래서 남들이 어려울 때 내 형편은 피는-아이러니컬한 기업 특성 덕에 체질화된 습성이다.
SK에너지는 지난해 15조798억원의 수출액을 기록했다.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인 것은 물론, 수출 실적이 매출의 54.2%를 차지해 내수판매를 넘어선 것도 처음이다. 국내 기업 가운데 수출액 순위 4위에 해당하는데, 실상은 삼성전자(51조419억원)라는 독보적 1위를 저만치 앞에 두고 현대자동차(17조5665억원), LG전자(16조9815억원) 등과 치열한 2위전을 펼치는 형국이다. SK에너지는 올 상반기에만 11조6888억원의 수출 실적을 올려 ‘연간 20조원 수출’을 돌파할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부가가치 높은 경질유 수출량 40% 늘어
브라질 광구의 현장 인력들이 원유를 채굴하고 있다.
그 요인을 찾기 위해 SK에너지의 주요 사업영역을 꼼꼼히 살펴보면, ‘전략의 승리’라는 결론이 나온다. 거의 모든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고, 생산 및 개발설비 구축에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거대 장치산업을 영위하며, 생산품목에서 국내 대기업은 물론 세계 유수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전방위 한계상황’에선 용장(勇將)의 돌파력보다 지장(智將)의 용병술이 전세를 결판 짓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생각이 에너지다’가 이 회사의 모토다.
본업인 석유사업부터 들여다보자. 무엇보다 ‘실속 수출 전략’이 돋보인다. 2007년 석유사업 매출은 전년보다 11.1% 늘어난 데 비해 영업이익은 무려 85.8% 증가했다. 이는 강력한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지속하면서 부가가치가 높은 3대 경질유(휘발유, 등유, 경유) 수출량을 40% 이상 늘린 대신, 마진율이 낮은 중질유(벙커C유) 수출 비중을 85%로 낮춘 데 힘입은 바 크다. 각국의 유황 함량 규제에 대응해 탈황 제조시설을 본격 가동함으로써 저유황 제품 수출에 힘을 쏟은 것도 한몫했다. 일본과 중국 중심이던 수출시장 또한 2007년엔 인도네시아와 미국이 1, 2위를 차지하고 베트남과 유럽시장도 일본 수준의 수출물량을 올리는 등 다변화 전략이 결실을 맺고 있다. 이런 전략이 먹혀들면서 2008년 상반기에는 석유제품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92% 증가하는 놀라운 실적을 기록했다.
수출 위주이다 보니 환(換)리스크에도 크게 노출되지 않았다. SK에너지의 외화 순부채(부채-자산) 40억 달러 가운데 헤지를 해놓지 않은 31억 달러가 환율 변동에 노출돼 있어 1원이 등락하면 30억원 가까이가 왔다 갔다 하는 상황. 그러나 SK에너지 관계자는 “수출 비중이 50~60%에 이르러 자연적으로 환헤지가 이뤄지고 있는 데다, 올 3분기 들어서는 유가 하락폭이 환율 상승폭보다 커 환 충격을 크게 줄였다”며 안도했다.
‘미국에 한국 자동차 공장을 짓듯이/ 중국에 한국 휴대폰 공장을 짓듯이/ 영국에 한국 에어컨 공장을 짓듯이/ 우리는 유전을 지었습니다/ 석유가 나오는 곳 어디나 우리의 공장이란 생각으로….’
해외 유전 개발을 테마로 한 SK에너지의 광고 카피다. 지난해 선보인 광고 역시 ‘아무리 파도 기름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지구 반대편을 팠다’는 카피와 함께 SK에너지가 40% 지분을 갖고 석유를 생산하는 브라질 BMC-8 광구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처럼 석유개발사업은 기업 이미지 광고의 소재로도 쓰일 만큼 SK에너지가 명운을 걸고 총력을 기울이는 분야다. 매출액 대비 투자액이 100%에 가까울 정도. 올해에도 매출액과 맞먹을 6300억원을 투자비로 책정했다. ‘자원 독립국 전략’이라고 이름 붙일 만하다.
SK에너지 울산 콤플렉스 전경, 이명박 대통령이 최태원 SK 회장(맨 왼쪽) 등과 함께 9월3일 울산 SK에너지 제3고도화시설 준공식에 참석했다, SK에너지 신헌철 부회장, SK에너지 주유소는 한국생산성본부, 한국능률협회컨설팅 주관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주유소 부문 6년 연속 1위에 올랐다(왼쪽부터).
SK에너지가 석유개발사업에 뛰어든 것은 1982년. 대한석유공사(유공)가 1980년 (주)선경의 지분 인수로 선경그룹 일원이 된 지 2년 뒤였다(유공은 1998년 SK그룹의 CI 변경에 따라 SK주식회사로 사명을 바꿨고, 2007년 7월 지주회사·사업회사 분리를 통해 SK에너지로 거듭났다). 당시 최종현 회장은 2차 석유파동을 거치면서 “매년 이익의 15% 이상을 석유개발사업에 투자해야 하며, 실패하더라도 참여한 직원을 문책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했다.
그 첫 작품으로 1983년 인도네시아 카리문 광구에 3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하며 8개월간 8개의 탐사정을 시추했지만 미미한 유징을 발현하는 데 그쳤다. 결국 인도네시아 정부에 개발권을 반납했다. 84년에도 아프리카 모리타니아 광구 개발에 25%의 지분 투자를 했으나 유징을 발견하지 못하고 철수했다. 몇 차례의 실패를 거듭하다가 87년 12월, 40개월에 걸친 지난한 개발작업 끝에 예멘의 마리브 유전에서 하루 15만 배럴의 원유가 생산되기 시작해(하루 5000배럴 이상 생산되면 경제성을 인정받는다) 마침내 ‘대박’을 터뜨렸다. 88년 1월20일 마리브 유전 원유 1차 도입분 35만 배럴을 선적한 ‘Y위너호’가 울산항에 입항하면서 한국은 준(準)산유국 대열에 끼게 된다.
SK에너지는 현재 17개 국가, 32개 광구에서 지분 참여를 통해 탐사·개발·생산 활동을 벌이고 있다(표 참조). 2007년 말 현재 보유 원유 매장량은 5억 배럴 규모. 2015년까지는 10억 배럴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SK에너지 이만우 홍보담당 임원은 “2007년 말 ‘회사 내 회사(Company In Company)’를 의미하는 CIC 제도를 도입했으며 각 CIC가 자율적인 회사로 운영되고 있다. 거액의 투자비가 소요되는 석유개발사업 부문도 R·C
(Resource · Chemicals) CIC의 직속기구로 편입되면서 의사결정구조가 짧아져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며 반겼다.
SK에너지의 올 상반기 석유개발사업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50%쯤 늘어난 2116억원인데, 주목할 것은 석유개발사업의 영업이익률이 60%에 육박한다는 사실이다. 석유개발사업이 SK에너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에 불과하지만 영업이익은 13%에 달했다. SK에너지 석유개발사업 담당 간부는 “석유개발사업은 전형적인 고위험-고수익 사업이다. 한 개 광구에 소요되는 투자비가 수천억원이지만 개발에 성공할 확률은 10% 미만이다. 그러나 일단 개발하고 나면 투자비가 생산 기간에 상각을 통해 반영되고, 생산에 들어가는 운영비도 많지 않아 상대적 고유가에 힘입은 매출 및 영업이익률 극대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으로는 기술특화 전략을 꼽을 수 있다. 이는 당장 제품 경쟁력을 높여 시장점유율에서 우위에 서고 이것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이어가려는 기업에게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SK에너지는 휘발유 성능 개선을 비롯해 특수 엔진유, 고결정성 폴리프로필렌, 신소재 아스팔트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개발(R·D)을 추진하고 있다.
그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그룹3 윤활기유’. 윤활유는 기유(基油)와 첨가제로 구성되며, 기유는 윤활유의 80% 이상을 차지해 윤활유 품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원료다. 또 윤활유는 황 함유량, 점도지수 등에 따라 그룹1에서 그룹5까지 5단계로 나뉘는데, 단계가 높을수록 고급이다. SK에너지 류기수 기유사업팀장은 “1995년 울산에 제1윤활기유 공장을 준공했을 때만 해도 고급 윤활기유에 대한 세계 석유 메이저들의 관심은 미미했다. 그러나 윤활기유에도 브랜드가 필요하다는 전략에 따라 ‘유베이스(YuBase)’ 브랜드를 내걸고 고급 윤활기유 생산에 땀을 쏟으며 해외 판매망을 늘려간 결과, 지금은 SK에너지의 윤활기유가 세계시장 수요의 50% 이상을 채우는 글로벌 1위의 수출 효자상품으로 성장했다”며 뿌듯해했다.
SK에너지는 정유공장을 운영하면서 축적한 노하우를 상품화하는 새로운 시장도 개척했다. 1998년 공장운영 기술을 대만과 가나 업체에 판매했고, 2002년에는 중국 기업과 기술판매 계약을 맺었다. 2005년 BTX·LPG 생산 촉매, 공정기술을 프랑스 업체에 팔아 로열티 수입을 올렸으며, 2006년부터는 인도네시아 국영 석유회사 페르타미나사(社)의 6개 정유공장의 운영 효율화를 위해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SK에너지 기술사업부 김광복 해외기술개발그룹 부장은 “45년간의 공장 운영 경험,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경쟁력과 전문인력, 광범위한 기술자료 데이터베이스 등 사내 무형자산을 활용해 수백억원대 매출을 올림으로써 기술사업이 지속적, 안정적 수익 모델로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소연료전지 등 차세대 에너지 연구 역량 집중
석유자원이 고갈돼가고 환경오염과 지구온난화가 글로벌 이슈로 부각된 현실에서 국내 최대 에너지 회사가 언제까지고 석유 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사업에 매달려 있을 수만은 없다. SK에너지는 그 해법을 기대하며 수소연료전지, 하이브리드 자동차용 배터리 시스템, 천연가스를 이용한 디메틸에테르(DME·Di-methyl Ether) 상용화 기술 개발 등에 대한 연구 역량을 키우고 있다.
수소연료전지의 경우 수소를 만드는 연료처리장치 분야에서는 독보적 입지를 다진 것으로 알려졌다. SK에너지 연구지원팀 김석원 부장은 “정유공정에서 축적된 촉매기술 등을 기반으로 1990년대 초부터 천연가스와 메탄올을 원료로 하는 고순도 수소 제조장치를 연구해왔으며, 그 성과를 바탕으로 국책사업에 참여해 사업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또 정부의 ‘수소 스테이션 국산화 기술개발’ 사업의 주관기관으로 선정돼 수소 스테이션 개발도 수행 중”이라고 밝혔다. 수소 스테이션은 주유소나 가스충전소에서 석유와 LPG를 충전하듯 수소연료전지 자동차의 연료인 수소를 충전할 수 있는 충전소.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고성능 충전 배터리와 엔진이 함께 설치돼 주행 중 잉여 에너지를 배터리에 저장하고 필요할 때 방출하는 기술이 적용된 차를 가리킨다. SK에너지는 지난 10여 년간 배터리 연구를 수행하면서 확보한 전지 관련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최신 기술 보유업체 등과 함께 하이브리드 자동차용 차세대 배터리 시스템 공동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SK에너지 실적 추이 | |||||
구분 | 2004년 | 2005년 | 2006년 | 2007년 | 2008년 상반기 |
매출 | 17조4061억 | 21조9146억 | 23조6515억 | 27조7884억 | 21조5590억 |
영업이익 | 1조6205억 | 1조2049억 | 1조1654억 | 1조4795억 | 9315억 |
순이익 | 1조6407억 | 1조6865억 | 1조3940억 | 1조2257억 | 5023억 |
수출액 | 8조1082억 | 10조6889억 | 11조4542억 | 15조798억 | 11조6888억 |
매출 중 수출 비중 | 46.6% | 48.8% | 48.4% | 54.2% | 54.2% |
SK에너지 해외 석유개발 현황 | |
생산 | 이집트 Zaafarana(25.0) 페루 Block8(8.33), Block88(17.6) 코트디부아르 CI-11(12.96) 리비아 NC174(8.33) 베트남 15-1(9.0) 인도네시아 Banko(25.0) 브라질 BMC-8(40.0) 영국 Captain(0.768) 알제리 Issaouane(8.5) |
개발 | 페루 Block56(17.6) |
탐사 | 적도기니 Area C(6.11), Area D(9.4) 코트디부아르 CI-01(15.0) 인도네시아 NE Madura I(30.0) 호주 WA34R(10.0) 브라질 BMC-30(20.0)러시아 W.Kamchatka(4.0) 마다가스카르 Majunga(10.0) 영국 9/2b(30.0), 3/27a(30.0), 9/11c(40.0), 8/25a(40.0) 카자흐스탄 Zhambyl(6.75%) 베트남 15-1/05(25.0%), 123(20.0) 페루 Z-46(100.0) 이라크 Bazian(19.0) 콜롬비아 5(28.6) |
2008년 9월 현재(괄호 안은 SK에너지 보유 지분/ 단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