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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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킹, 한국에선 왜 찬밥일까

  • 출판 칼럼니스트

    입력2006-07-31 09: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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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러 킹, 한국에선 왜 찬밥일까
    호러 킹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스티븐 킹에게 예외적인 책이 한 권 있다. 바로 ‘유혹하는 글쓰기’다. 킹의 소설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으면서 킹이 글쓰기에 관해 쓴 ‘유혹하는 글쓰기’를 경배해마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다. 킹이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을 ‘유혹하는 글쓰기’를 통해 절감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작문법에 관한 책이 흥미로워봤자 얼마나 흥미로울 것인가. 하지만 킹은 이 점에서 우리를 녹다운 시킨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수많은 부사로 뒤덮여 있다’거나 ‘지금 이 시점에서 (at this point in time) 따위의 뻔한 문장을 쓰는 사람은 저녁도 먹이지 말고 그냥 재워야 한다’는 식의 유머러스한 충고를 작문법 책에 쓰는 사람이 바로 킹이다.

    하지만 킹의 호러 소설은 오랫동안 국내에서 찬밥 신세다. 전 세계 3억 독자가 스티븐 킹에게 열광했다는 사실이 무색할 지경이다. 킹이 매우 미국적인 작가이며 도입부가 장황하고 책이 두껍다는 점이 일단 독서를 가로막는다. 여기에 킹에 대한 독자의 인식도 크게 작용한다. 킹의 작품이 국내에 처음 출간된 것은 1990년대 초반이었다. 당시 킹의 작품은 싸구려 호러물로 포장돼 소개됐다. 이후 킹의 작품은 출판사들을 전전하며 싸구려 호러물이라는 이미지를 면면히 이어왔다. 그러다 보니 몇 년 전부터 킹의 전집이 양장으로 묶여 고급스럽게 출시되고 있지만 기존의 이미지를 뒤엎기에는 역부족이다. 여전히 독자들에게 킹은 불쾌하고 저급한 호러 작가일 뿐이다. 소수의 마니아 독자들과 여름시장에 기대고 있지만 판매부수는 2000~3000부 정도가 고작이다.

    킹의 소설은 단순한 엽기 공포물이 아니다. 킹이 공포소설을 통해 말하려는 건 흡혈귀나 늑대인간이 아니다. 킹이 생각하기에 정말로 무서운 것은 사랑받지 못한 채 늙어 죽거나 혹은 가까운 가족이나 연인이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다. 킹은 사람들 저마다 지닌 공포를 소설에서 보여주는 중이다. 물론 킹 역시 나름의 공포가 있어 보인다. 하나는 기독교적인 죄의식과 유년의 공포다.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킹이 아주 어렸을 때 담배를 사러 간다며 집을 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정통 소설 작가라기보다 추리소설 등에 주력하는 대중소설 작가라는 점인 듯하다. 굳이 리처드 바크먼이라는 필명으로 대중소설을 발표한 점이나, ‘미저리’ ‘다크 하프’ ‘자루 속의 뼈’ 등 작가로서 자의식을 보여주는 소설을 여럿 발표한 이유도 여기서 비롯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공포·추리소설은 고딕소설의 전통을 이어받은 포스트모던한 장르다. 무엇보다 근대소설이 잃어버린 이야기의 재미를 간직하고 있다. 어릴 때 추리소설을 읽다가 독서의 재미를 알게 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여름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스티븐 킹의 소설과 함께라면 여름이 심심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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