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쿄리에서 바라본 고쿄의 모습.
떠나고 싶다. 연말의 흥청거리는 술자리에서 휘적휘적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왕이면 아주 멀리, 아주 오랫동안. 집에 도착해 빈약한 통장 잔액을 확인해본 뒤 달력을 뒤적거렸다. 한 달 정도는 시간을 낼 수 있을 듯했다. 그런데 어디를 가지?
동남아시아의 어느 소박한 해변에서 호젓한 시간을 가져볼까? 인도 바라나시에서 한 달만 지내볼까? 그러다 생각해낸 곳이 히말라야였다. 겨울이라 히말라야는 비수기다. 그래서 떠나기로 했다.
네팔 카트만두에서 이륙한 25인승 경비행기 창밖으로는 히말라야가 마치 지평선을 가로지르는 하얀 띠처럼 보인다. 이것을 기점으로 해서 티베트와 네팔이 나뉜다. 아주 오래전, 중국 대륙과 인도의 대륙판이 부딪쳐 솟아오른 세계의 지붕. 지금도 안나푸르나에선 이따금 고생대의 화석이 발견되곤 한다. 바다에 살던 생물체의 화석이다.
이방인 욕심 절대금물 자연에 몸 맡겨야
확실히 해발 3000m 정도에서 출발하니 산 한복판으로 들어온 느낌이 든다. 그 속에 파묻혀 얼마가 될지는 모르지만 혼자 뚜벅대며 걸어갈 것이다. 나는 안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 미친 듯이 도시가 그리워지리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한 시간에 한 번씩 마을이 나타나고, 길도 소박한 분위기로 이어진다. ‘오늘은 어디까지 가겠다’는 일정은 없다. 가다가 지치면 하루 묵어간다는 심산이다. 마을은 정겹고 소박한데 막상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욕심 때문이다. 산에 왔으니 계획한 곳까지는 어떻게든 가겠다는 욕심.
해발 4000m를 넘어서자 풍경이 낯설어지기 시작한다. 해발 4000m 이상은 땅에 씨를 뿌려 무엇인가를 얻기가 힘든 높이다. 영어로 팀버라인(timberline)이라고 하던가? 트레일이 수목 한계선 사이로 나 있어 아래는 수목이 군데군데 보이고 위로는 황량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 사이로 마지막 마을 몇 곳이 군데군데 있다.
아득한 트레일을 혼자서 걷는 맛이 꽤 괜찮다. 간혹 바람소리에 야크 목에 단 종소리가 실려온다. 그 소리는 어느 산사 처마 끝의 풍경소리처럼 아늑하다. 잠시 길 위에 주저앉아 쉬노라면 내가 풍경 속의 작은 정물이라도 된 느낌이다.
1.네팔인들 뒤로 만년설이 보인다.<br>2. 히말랴야에서 내려오는 길에 만난 네팔인 가족.
내려오는 길은 편하고 부담이 없다. 그리고 그제야 마을이,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오래된 셀파 식당에 들러 우리의 막걸리와 비슷한 티베트인 술인 ‘창’을 시킨다. 끝물인지 술밥을 보자기에 넣고 짜서 한 양푼 그득 내온다. 시큼털털한 것이 이곳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주인과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가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지난주 이곳에서 네 사람이 고산증 때문에 사망했다는 것이다. 트레커 두 명과 현지인 두 명으로, 해발 5000m급까지 단 며칠 만에 올라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나와 잠깐 스친 사이였다. 나한테도 묻는다. 고산증이 없었느냐고. 나는 천성이 게을러 천천히 움직였기 때문에 문제는 없었다고 대답했다.
에베레스트 지역에서 가장 큰 마을인 남체의 저녁 풍경.
쇼펜하우어가 그랬나? 자연은 결코 인간에게 친근하지 않다고. 히말라야는 고개 숙인 자들에게 그 아득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때로 무례한 이들이겐 엄한 꾸짖음을 내리기도 한다. 주는 대로 마신 창 때문에 술기운이 오른다. 시간을 보니 아직 점심때도 안 되었지만 나는 결국 물어보고 말았다.
“아저씨, 방 있어요?”
내려오는 길에 마주한 마을들은 소박하고 예쁘다. 마을 사람들이 낯선 이방인에게도 쉽게 웃음을 보이는 것은, 거친 자연 앞에 삶의 터전을 만든 그들에게 히말라야가 내려준 선물인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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