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펄로 바이슨스의 최향남.
최향남은 말했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꼭 한 번 해외 무대에서 뛰고 싶다. 메이저리그면 가장 좋고, 그게 안 되면 일본 프로야구, 또 그마저 안 되면 이탈리아 세미 프로리그라도 좋다”고. “내가 어느 정도 되는 투수인지, 한번 부딪혀서 알아보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그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성실하고 인간성은 좋지만 엉뚱한 면이 있는 선수인지라 ‘그래, 생각으로야 무언들 못하겠나’ 하는 마음이었다.
그 후 최향남의 성적은 썩 좋지 못했다. 고질적인 어깨 부상에 시달리며 2003시즌을 끝으로 LG에서 방출됐고, 이듬해에는 대만 프로야구 진출을 시도하다가 시즌 중반 KIA 유니폼을 입었다.
버펄로의 확실한 선발투수
그런 와중에도 그는 해외 진출에 대한 꿈을 마음속 깊은 곳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때를 기다리면서 누구보다 성실하게 훈련하며 미래를 준비했다. 한겨울 찬바람이 부는 한강 둔치를 뛰었고, 강원도 산으로 극기훈련을 떠나기도 했다.
2005년 초 최향남은 입단 테스트를 받기 위해 생면부지의 미국 땅으로 혼자 날아갔다. 돌아온 것은 싸늘한 무관심뿐이었지만.
그래도 포기는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왔다. 최향남을 눈여겨보던 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가 테스트를 제의한 것. 최향남은 정규 시즌이 끝난 뒤인 2005년 10월 중순 혼자서 미국 플로리다로 날아가 비밀 테스트를 받은 결과 합격점을 받았다. 계약금과 연봉을 합쳐 10만 달러(약 9500만 원)의 조촐한 계약이었지만 그날 최향남은 “평생의 꿈을 이뤘다. 그토록 원하던 길을 가게 되었으니 난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며 기뻐했다.
그가 시즌을 시작한 곳은 마이너리그였다. 인지도도 없고, 연봉도 보잘것없던 그는 싱글A와 더블A 타자들을 상대로 공을 던져야 했다. 처음엔 주눅이 들었다. 중남미계 젊은 투수들은 150km가 넘는 강속구를 뿌려댔고, 거구인 타자들의 스윙에서는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바람 소리가 났다.
몇 차례의 호투를 보여준 뒤 트리플A 버펄로에 올라왔지만 경쟁은 더욱 심했다. 외로움을 느낄 틈도 없었다고 한다. 여기서 낙오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오로지 야구에만 집중했다. 통역도 없었고, 자동차도 없었다. 숙소와 운동장을 오가기에도 벅찼고, 경기는 끊임없이 열렸다.
워낙 정신없이 생활하다 보니 한국 음식이 그립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유학생이 경기장에서 건네준 김치를 받아와 호텔방에서 혼자 한국식 식사를 했다. 그는 “햇반에 반찬이라고는 김치와 김 두 가지였는데 내 평생 그렇게 맛있게 먹어보기는 처음이었다”며 웃었다.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최향남이었지만 그의 야구에 대한 열정에 동료 선수들은 하나 둘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열 살 이상 어린 선수들에게도 그는 먼저 고개를 숙였고, 언젠가부터 동료들은 그를 팀메이트로 인정했다. 최향남은 “나이는 내가 많지만 메이저리그에서 내려온 선수들에게 종종 밥을 얻어먹는다”고 했다.
무모한 도전 아닌 ‘무한 도전’
야구에도 점점 자신이 생겼다. 한국에서 12승을 거둘 당시와 비슷한 구위가 돌아왔고, 타자를 상대하는 요령도 생겼다. 버펄로에서 시작은 중간계투였으나 어느덧 확실한 선발투수로 자리를 잡았다. 야구를 잘하니까 구단의 대접도 달라졌다. 구단은 최향남을 위해 통역을 구해줬다. 휴대전화도 제공했다. 최향남은 전반기를 5승5패에 평균 자책 2.69라는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했다.
현재 최향남은 석연찮은 이유로 부상자 명단에 올라 있다. 마이너리그로 내려온 외야수 프랭클린 구티에레스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구단이 최향남을 부상자 명단에 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많은 시련을 인내하며 꿈을 좇는 최향남은 기다림을 즐기고 있다고 말한다.
“메이저리그에 올라가는 것이 최선이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미국에 와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9월2일 40명으로 빅리그 등록 선수가 늘어날 때 승격을 목표로 후반기에도 열심히 하겠다.”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서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무모한 도전’ 같았던 최향남의 ‘무한 도전’은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지도 모른다. 9월2일이건 그 이전이건, 최향남이 메이저리그의 호출을 받는 순간 많은 팬들이 기대하는 한 편의 드라마가 완성된다.
최향남의 꿈은 그 자신의 것만이 아니다. 그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 역시 용기와 힘을 얻게 된다. 그의 꿈이 반드시 현실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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