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영 신영증권 연금사업부 이사. [조영철 기자]
2005년 12월부터 시행된 퇴직연금제도는 기업이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퇴직금 재원을 외부 금융기관(퇴직연금사업자)에 적립하고, 이를 기업 또는 근로자가 운용하며, 근로자 퇴직 시 적립된 퇴직급여를 연금 혹은 일시금으로 지급함으로써 퇴직 후 근로자의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하지만 2021년 말 기준 296조 원에 이르는 퇴직연금 적립금의 86.4%가 원리금보장형 상품으로 운용되며 수익률이 1%대에 그치자 지난해 7월 수익률 개선을 위해 디폴트옵션이 도입됐다. 디폴트옵션은 1년간 유예 기간을 거쳐 올해 7월 12일부터 본격 적용된다.
이에 따라 회사가 운용 방법을 결정하는 확정급여(DB)형을 제외하고 근로자가 운용하는 확정기여(DC)형과 개인형 퇴직연금(IRP)은 가입자가 별도로 지시하지 않더라도 사전에 지정한 방법으로 운용된다.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으로 기대되는 수익률은 5~7%이지만 민주영 신영증권 연금사업부 이사는 “디폴트옵션이 시행돼도 그 정도 수익률을 거두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민 이사는 키움투자자산운용 퇴직연금 담당 이사,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하나은행 퇴직연금부 자산운용전문역 등을 역임한 퇴직연금 전문가다.
수익률 개선 위한 ‘디폴트옵션’ 7월 12일부터 적용
디폴트옵션이 도입돼도 수익률 개선이 쉽지 않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최근 퇴직연금을 DB형에서 DC형으로 전환하는 이가 늘고 있지만, 실제로 근로자 대부분에게 유리한 것은 DB형이다(표 참조). 많은 금융회사가 퇴직 전 마지막 3개월 평균 월급에 근속연수를 곱해 회사가 퇴직금을 주는 DB형보다 근로자가 회사로부터 매달 일정 금액의 퇴직금을 선지급받아 운용하는 DC형의 수익이 더 높다고 말하지만, 현실적으로 투자 전문가가 아닌 이상 급여 상승률만큼 수익을 내긴 어렵다. 만약 급여가 계속 오르는 경우라면 임금피크제 돌입 전까지 DB형을 유지하는 편이 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DB형보다 DC형을 권장하는 분위기다.
“현대 사회 분위기가 스스로 제 살길을 찾는 ‘각자도생(各自圖生)’ 흐름으로 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기업 입장에서 퇴직금은 부채다. 근로자가 퇴직하면 내줘야 하는 빚인데, 시간이 흐를수록 규모가 커지고 운용 부담도 커지니 근로자가 운용 책임을 가져가겠다고 하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런 상황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DB형은 우리와 다르다. 한국은 근로자가 퇴직할 경우 일시불로 퇴직금을 주면 끝나지만, 미국 회사들은 연금 가입자가 죽을 때까지 퇴직금을 연금으로 지급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미국이 ‘연금’이라는 목적에 더 맞는 형태다. 문제는 수명이 길어지면서 ‘퇴직연금 때문에 회사가 망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상황이라 많은 사람이 DC형인 ‘401k’(미국 DC형 퇴직연금)로 옮겨가게 됐다. 한국은 아직 그 정도 수준은 아니지만 기업의 운용 규모가 커지면서 그런 흐름이 생겨난 것은 사실이다.”
디폴트옵션에 담긴 상품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됐나.
“금융회사들은 보통 10년간의 투자 성과 데이터를 갖고 시뮬레이션을 해 투자 포트폴리오를 만든다. 주식과 채권 등 주요 투자자산의 적절한 배분을 통해 위험은 높지만 수익이 많은 경우, 수익은 적지만 위험이 낮은 경우 등을 제안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참고자료일 뿐, 과거가 반드시 미래에 반복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투자 방법을 선택하기 전 먼저 자신의 투자 목표와 성향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보통 많은 사람이 투자를 하면 손실을 경험하는데, 그것이 플러스로 돌아설 때까지 충분히 기다릴 수 있는지 미리 생각해야 한다. 만약 손실이 조금만 나도 스트레스를 받는 성향이라면 안전자산 비율을 최대한 높인 상품을 선택해야 한다.”
투자자들이 통상적으로 투자할 때 손실부터 경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투자에 나설 때는 그 자산 가격이 좋을 때다. 주식투자만 봐도 주가가 한창 오를 때 투자에 나서지 않나. 금융회사가 추천하는 펀드도 마찬가지인데, 보통은 최근 6개월 혹은 1년 성과가 좋은 상품을 추천한 결과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뛰어들면 일단 그 자산은 마이너스로 갈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투자를 해 수익이 나려면 장기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또 한 자산에만 투자해 손실 폭이 커지고 손실 구간이 길어지면 심리적으로 힘들 수 있으니 분산투자를 해야 한다.”
은퇴 후 필요 자금 미리 정리해두면 두려움 줄어
보통 한국인은 한 직장에서 20년간 일하고 1억 원가량 퇴직금을 받는다고 한다. 그 정도 돈으로 노후 대비가 될 것 같지 않은데, 퇴직연금이 왜 필요할까.“개개인에 따라 퇴직금(퇴직연금)이 많고 적을 수는 있지만 오너가 아닌 이상 언젠가는 퇴직해야 하고, 정기적인 소득이 끊기는 시기를 맞게 된다. 그때 필요한 생활비, 의료비를 마련하려면 젊을 때부터 자산을 불려 일정 수준의 현금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연금은 그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한때 은퇴를 앞둔 분들 사이에서 금융회사 마케팅의 영향으로 ‘은퇴자금 10억 원’이 공식처럼 회자됐지만 현실적으로 그 정도까지는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은퇴 후 안정된 생활을 위해 필요한 돈은 얼마일까.
“개인이 처한 상황과 성향에 따라 다를 것으로 짐작된다. 외국계 IT(정보기술) 기업에 다니던 지인이 있는데, 나중에 필요한 돈을 막연히 생각해 두려워하지 말고 실제 엑셀에 정리해보면 생각만큼 큰돈이 필요치 않더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퇴직금 3억 원을 보험사의 즉시납연금에 넣어 평생 월 90만 원을 받을 경우 매달 부족한 70만 원 정도만 추가로 벌면 되고, 몇 년 후 국민연금이 나오면 그 부담마저 덜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말이다. 대개는 월 200만 원만 있으면 풍족하진 않아도 별 무리 없이 생활할 수 있다고 보는데 우리에게는 국민연금, 주택연금, 퇴직연금, 즉시납연금 같은 여러 안전장치가 있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에 다닐 때 케이스 스터디를 많이 했는데, 퇴직하고 나면 점점 가난해지는 것은 사실이기에 소비 패턴, 마음가짐을 바꿔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과 한국의 디폴트옵션이 다르다고 하는데.
“퇴직연금 운용 수익률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문가가 근로자 성향에 맞게 포트폴리오를 짜 자산시장 흐름에 맞게 변화를 주면서 관리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보니 위험과 수익에 따른 여러 포트폴리오를 주고 선택하게 하는데 미국은 한국처럼 근로자가 사전에 지정하지 않는다. 미국은 401k에 가입한 근로자가 별도로 운용 지시를 하지 않으면 금융회사가 사전에 지정한 TDF나 자산배분펀드 등에 들어가도록 돼 있다. 그리고 손실이 나더라도 금융회사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은 손실이 날 경우 분쟁 소지가 있어 근로자가 운용 방법을 사전에 지정하게 돼 있다.”
TDF나 TIF 장기투자하면 4~5% 수익률
디폴트옵션 선택으로 수익률을 높이는 방법은 무엇인가.“금융시장에서 20년 넘게 일하며 지켜본 결과, 고수익을 내는 사람은 100명 중 1~2명이다. 금융회사에 다니는 직원들의 수익률조차 높지 않다. 손실 구간을 참지 못하고 자주 사고팔면 수익률이 높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수수료 때문에 수익률이 더 떨어질 수 있다. 디폴트옵션 상품으로 많이 제안되는 TDF나 TIF는 베스트는 아니지만 차선책은 되는 상품들인데, 수출 의존도가 높아 손익 변동성이 큰 한국보다 안정적인 투자 환경을 가진 미국에서도 장기투자 성과가 4~5% 정도다. 모든 투자는 공부하고 경험한 만큼 수익이 늘어난다. 사람이 성장하듯이, 투자도 위험자산 비율을 서서히 높여가는 것이 맞다. 그리고 또 하나, 아무리 수익을 낸다 한들 원금을 불리는 것만큼 늘어나지는 않는다. 가능하면 일하는 시기를 늘려 원금을 최대한 불리는 것이 최선이다.”
참고로, TDF(Target Date Fund)는 투자자가 은퇴 준비 자금 마련 등 목표 시점이 특정한 펀드에 투자하면 운용 기간에 자동으로 위험자산과 안전자산 비중을 조절하는 상품으로, 퇴직연금을 불려가는 과정에서 활용된다. TIF(Target Income Fund)는 현금흐름에 중점을 둔 상품으로, 투자자의 기초자산을 다 소진하지 않으면서 채권, 배당주, 부동산 투자 등으로 벌어들인 인컴 수익을 통해 안정적인 연금 솔루션을 제공하기에 은퇴 후 활용 상품으로 추천된다.
퇴직연금을 연금이 아닌 일시불 형태로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사실이다. 연금으로 수령하면 퇴직금 관련 세금을 깎아주고 연금소득세도 저율과세 되지만 퇴직자의 89%가 일시불로 찾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 대부분이 주택 마련 등의 이유로 퇴직금을 중도 인출해 마지막에 남은 돈이 2000만~3000만 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이지만 오히려 퇴직목돈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다. 그래서 고용노동부 등을 중심으로 중도 인출 금지 논의가 진행 중인데 아직까지는 반대 여론에 막혀 있는 상황이다.”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한경 기자입니다. 관심 분야인 거시경제, 부동산, 재테크 등에 관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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