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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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21, 사우디아라비아 전투기 수주전 다크호스 부상

한국은 신시장 개척… 빈 살만 ‘무기 국산화’ 방침에도 부합

  •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입력2025-02-27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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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를 강타한 군비 경쟁은 중동에서도 격화되고 있다. 2023년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대규모 테러로 시작된 중동 위기는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는 물론, 레바논·시리아·예멘·이라크까지 확대됐다. 레바논 남부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고 시리아에선 정권이 교체됐다. 예멘 후티가 사실상 통제하는 이 지역 해상 교통로는 크게 위축됐다. 분쟁 위기는 이라크를 넘어 이란까지 전이됐다. 이스라엘은 사태 배후에 이란이 있다고 보고, 핵시설 공습과 레짐 체인지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군비 경쟁이 일어나면 당사국들은 가장 먼저 전투기를 찾는다. 역할이 제한적인 전투차량이나 화포 같은 무기체계와 달리, 전투기는 활용 범위가 굉장히 넓고 효과적인 전쟁 수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우디의 공군력 현대화 계획

    한국 KF-21 전투기. [방위사업청 제공]

    한국 KF-21 전투기. [방위사업청 제공]

    이처럼 전투기는 대단히 효과적인 무기이지만 갖고 싶다고 쉽게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현대 전투기에는 개발 국가와 기업의 최첨단 기술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만큼 수출 통제가 심하다. 공정이 대단히 복잡하고 어려운 만큼 제작에 시간도 오래 걸리고 가격도 비싸다. 어렵사리 전투기를 손에 넣는다고 끝이 아니다. 조종사와 정비사, 무장사 등 운용 요원을 육성하고 일정 수준 이상 가동률을 유지하기까지 2~3년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대다수 나라는 안보 위협이 식별되면 일찌감치 전투기 도입 계획을 수립하고 수년에 걸친 도입 준비 과정을 거친다. 지금 사우디아라비아가 바로 그 과정의 초입에 들어섰다.

    사우디는 장비 성능·수량만 놓고 보면 이스라엘과 함께 중동 최강 공군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4세대급 전투기 중에선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 F-15 계열 기종을 230여 대나 보유하고 있다. 유럽제 유로파이터 타이푼도 71대 갖고 있다. 이제는 노후 기종으로 평가되는 토네이도 전투기만 해도 80대 넘게 보유 중이다. 이마저도 중동 인접국의 주력 전투기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강력한 다목적 전투기다. 사우디는 이 토네이도 80대를 시작으로 F-15 계열 230여 대를 순차적으로 대체해 공군력을 현대화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이 같은 사우디의 공군력 현대화 계획은 잠재 도입 규모만 300대 이상이다. 무기 구매 계약을 체결할 때 가격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사우디의 특성상 세계 각국 전투기 메이커들이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지 방산 소식통들이 전하는 ‘접촉 중’인 메이커만 8곳으로 알려졌다. 우선 미국 보잉은 사우디에 F-15EX를 제안했다. 유럽에선 영국 BAE시스템스가 유로파이터 타이푼 트렌치 4를, 프랑스 다쏘가 라팔 스탠더드 F4 모델 판매를 추진 중이다. 러시아 수호이는 Su-57과 Su-75 모델을, 중국은 선양항공의 J-35와 청두항공의 J-10CE를 제안하고 있으며, 튀르키예항공우주산업(TAI)은 자체 개발 중인 ‘칸’ 공동개발을 타진하고 나섰다. 최근에는 대한민국의 한국항공우주산업(KAI)도 KF-21을 들고 이 경쟁에 참전했다. 사우디가 내심 원하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 록히드마틴 F-35A까지 포함하면 9개 업체, 10개 모델이 후보군으로 보인다.

    사우디 정부는 아직 전투기 도입 사업과 관련해 공식 발표를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각 업체의 물밑 경쟁은 뜨겁다. 각국에서 저마다 “사우디와 전투기 도입 협상이 상당 수준까지 진척됐다”는 보도가 쏟아지는 이유다. 먼저 경쟁 포문을 연 쪽은 중국이다. 중국은 2023년 8월 사우디와 J-35(당시 명칭은 FC-31) 판매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곧이어 프랑스 다쏘가 현지 일간지에 ‘라팔 54대+200대 계약설’을 흘렸다. 지난해 1월에는 영국 BAE시스템스가 유로파이터 타이푼 수십 대 추가 수출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미국 보잉이 “사우디에 F-15EX를 수출할 가능성이 크다”는 입장을, 다시 며칠 후에는 러시아 국영 무기수출 기업이 “Su-57E와 Su-75 등 전투기가 사우디에 수출될 수 있다”고 밝혔다.

    사우디 전투기 사업 수주 물밑 경쟁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2월 국내 언론에도 KF-21의 사우디 수출 가능성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중동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신원식 당시 국방부 장관이 “사우디가 한국의 6세대 전투기 개발 계획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밝힌 뒤 후속 보도가 쏟아진 것이다. 또한 최근에는 튀르키예 TAI가 “자사의 5세대 전투기 개발 사업인 TFX 칸 프로그램에 사우디가 참여해 공동개발·생산 형식으로 100여 대가 수출될 것”이라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저마다 사우디 수출을 자신하는 전투기 메이커의 주장 중 어느 쪽 말이 맞는 것일까.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뉴시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뉴시스]

    ‌현재 사우디의 사실상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미스터 에브리싱’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오래전부터 미국제 F-35A 도입을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F-35는 미국의 최신 항공과학기술이 집약된 최첨단 전투기다. 그만큼 수출 통제가 엄격하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이스라엘 입장을 고려해 사우디에 최신 전투기를 팔지 않는 정책을 고수했다. 이스라엘이 미 공군 사양과 동등하거나 더 개량된 F-15C/D 모델을 도입할 때 사우디는 대(對)이스라엘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조건을 덧붙이고서야 F-15C/D를 받았다. 그마저도 레이더와 전자장비 성능 일부가 다운그레이드된 모델이었다. 그 후 이스라엘이 강력한 지상 타격 능력을 갖춘 F-15E를 F-15I라는 명칭으로 업그레이드해 도입할 때도 ‘사우디 격하’는 재연됐다. 사우디는 레이더의 지상 표적 식별·타격 능력 일부를 삭제당한 F-15S를 받는 데 만족해야 했다. 당시 미국은 사우디 수출용 전투기의 전투행동반경이 이스라엘에 미치지 못하도록 컨포멀 연료 탱크를 제거하려 했다가 강력한 항의를 받고 철회한 바 있다.

    그런데 F-35는 모든 기체가 표준화돼 생산되는 탓에 다운그레이드 버전을 만들 수 없다. 휴대전화의 운영체계(OS)와 애플리케이션이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되는 것처럼 F-35의 자율군수정보체계(ALIS)도 메인 클라우드와 연결돼 시스템 관리 및 최신화가 이뤄진다. 모든 기체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항상 같은 수준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사우디가 F-35를 도입할 경우 예전처럼 다운그레이드 기체를 따로 만들어 공급하는 게 어렵다는 얘기다. ‘완벽한 친미(親美) 국가’라고 장담할 수 없는 사우디에 미 공군과 동일한 사양의 F-35를 공급하는 것은 미국으로선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 F-35 전투기. [GETTYIMAGES]

    미국 F-35 전투기. [GETTYIMAGES]

    사우디, 신예 전투기 찾아 삼만리

    빈 살만 왕세자가 강조하는 무기 국산화 원칙도 F-35의 사우디 판매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2030년까지 무기 구매 예산의 50%를 국산 장비 구매에 사용한다는 대원칙을 세우고 군사산업총국(GAMI)과 사우디아라비아군사산업(SAMI)을 설립했다. 문제는 F-35의 경우 JSF(합동타격전투기) 프로그램 초기 단계부터 투자한 파트너 국가들에 이미 일감이 분배돼 있어 사우디가 끼어들 틈이 없다는 점이다.

    중동 패권국을 지향하는 사우디로선 주변국의 공군력을 압도할 수 있는 5~6세대급 전투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 때문에 사우디는 영국·일본·이탈리아가 주도하는 6세대 전투기 개발 사업인 GCAP(글로벌 전투환경 프로그램) 참여를 추진했지만 일본의 거센 반발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GCAP 참여가 어려워지자 사우디는 플랜B를 찾기 시작했다. 중국의 J-35, 튀르키예의 TFX 칸 공동개발·생산 협력을 논의한 것이다. 사우디가 J-35에 관심을 가진 시기는 빈 살만 왕세자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던 때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을 들춰내 빈 살만 왕세자의 심기를 건드렸다. 제이크 설리번 당시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이 리야드에서 빈 살만 왕세자와 만나 고성을 지르며 싸울 정도로 양국 관계는 파탄 직전이었다. 그런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고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자 사우디는 J-35 카드를 완전히 접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를 매개로 빈 살만 왕세자와 관계가 돈독하기 때문이다.

    당초 사우디가 또 다른 대안이라고 본 TFX 칸은 시험비행에 성공했음에도 튀르키예에서도 회의론이 적잖은 기종이다. 개발 업체는 이 기종이 F-15처럼 엔진 2개를 사용하는 대형 전투기라고 주장하지만 최대이륙중량은 중형 전투기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따라 연료·무장 탑재량이 매우 적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이 TFX 칸에 F100 계열 엔진 사용 승인을 내주지 않는 점도 악재다.

    한국산 KF-21은 높은 성능을 갖춘 것은 물론, 빈 살만 왕세자가 추구하는 무기 국산화 원칙에도 부합하는 대안이다. 2028년 등장하는 블록 2 모델은 앞서 언급한 라팔이나 유로파이터, F-15EX 등 4.5세대 전투기와 비교해도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성능을 갖춘 4.5세대+급 전투기로 전망된다. 공대공·공대지·공대함 작전 능력을 모두 갖춘 데다, 다른 4.5세대 전투기보다 레이더 반사 면적이 적어 생존성도 뛰어난 모델이다. 현재 이를 기반으로 5.5세대+급 성능을 목표로 하는 블록 3 버전, 일명 KF-21EX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폴란드 국영 방산기업 PGZ그룹도 이 프로그램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 여기에 사우디까지 참여한다면 GCAP에 대응할 수 있는 대형 글로벌 전투기 개발 사업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KF-21EX는 블록 2에 없는 내부 무장창을 새로 설치하고 외부 돌출 센서들을 내부에 매립할 계획이다. 그 덕에 스텔스 성능을 더욱 강화한 외형을 갖출 것으로 기대된다. 이 같은 설계가 현실화되면 상황 인식과 데이터 융합 능력이 크게 높아지고 무인기와의 협동 작전도 가능해진다. 현재로선 개발비 부담과 각종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5.5세대+급 성능을 목표로 삼았지만 사우디가 참여해 ‘오일머니’를 지원한다면 6세대 수준의 성능 구현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계약 성사되면 최대 58조 원 규모 전망

    사우디 입장에서 KF-21은 정치적으로도 좋은 선택지다. 미국과 이스라엘로선 F-35와 같은 모델을 사우디에 판매한다는 부담을 덜 수 있어 좋다. 사우디는 F-35에 밀리지 않는 성능을 갖춘 전투기를 그것도 국내 생산으로 조달 가능해 만족스러울 수 있다. 양측이 윈윈(win-win)하는 묘안인 것이다. 한국도 덩달아 이득을 볼 수 있다. 우선 KF-21EX 개발비 부담을 덜고 더 높은 목표 성능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하다. 전투기 수출이 성사되면 경제적 이익은 물론, 새로운 시장 개척도 용이해진다. KF-21에는 미국제 부품이 상당수 포함되기에 이를 강조하면 “사우디와의 거래가 미국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대미 협상용 명분도 얻을 수 있다.

    사우디의 신형 전투기 소요는 수백 대에 달한다. 게다가 사우디는 전투기 구매에서 항상 과감한 ‘풀옵션’ 웃돈 구매를 했다. KF-21 수출 계약이 성사되면 그 규모는 300억~400억 달러(약 43조2700억∼57조7000억 원)를 가볍게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산 전투기에 대한 사우디의 높은 관심이 실제 계약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