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77

..

수입차 가격 8년 만에 내렸다

[조진혁의 Car Talk] 글로벌 경기침체, 법인 승용차 연두색 번호판 달게 한 영향

  • 조진혁 자유기고가

    입력2025-02-25 09: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볼보 프리미엄 전기 SUV EX30. [볼보 제공]

    볼보 프리미엄 전기 SUV EX30. [볼보 제공]

    경기침체 그늘이 자동차 시장에도 드리웠다. 특히 어두운 곳은 수입차 시장이다. 2016년 디젤게이트 이후 줄곧 이어지던 가격 오름세가 지난해 하락 반전했다. 디젤게이트는 폭스바겐이 질소산화물(NOx) 등 유해가스 배출량을 의도적으로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줬던 사건이다. 당시 디젤차 수요가 급감하면서 잠시 주춤하던 국내 수입차 가격은 곧 다시 상승 곡선을 그렸지만 지난해 처음 하락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 조사 전문기관 컨슈머인사이트에 따르면 2023년 7월~2024년 6월 수입 신차 가격은 7593만 원으로 전년보다 255만 원(3%) 낮아졌다. 차량용 반도체 품귀 사태가 빚어진 2021년 7월~2022년 6월 가격이 전년 대비 12% 상승한 것과 비교하면 변화 폭이 매우 크다.

    수입차와 국산차 가격 격차 감소

    수입차 가격 하락 배경에는 글로벌 경기침체가 있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소비도 위축되기 마련이다. 과거 사치품으로 여겨지던 고급 수입차마저 구매를 망설이는 품목에 포함된 것이다.

    국내 정책 변화도 수입차업계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정부는 지난해 1월부터 차량 가격 8000만 원 이상인 법인 소유 승용차에 연두색 번호판을 달게 했다. 탈세 방지, 법인 차량 사적 이용 억제 등이 목표다. 그 여파로 고가 수입차에 대한 소비자 선호가 줄었고, 매장을 찾는 소비자 발길이 뜸해지자 제조사들은 재고 부담을 덜고자 가격 경쟁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국내시장에 진출한 한 고급 수입차 브랜드는 자사 전기 스포츠카 구매자에게 정부 혜택을 포함해 최대 1130만 원 가격 인하 혜택을 제시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사례가 모여 수입차 가격 하락 양상이 나타난 것이다.

    국산차는 상황이 다르다. 수입차가 외부 충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반면, 국산차는 옵션 고급화, 대형차 및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선호 트렌드 확산, 제네시스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의 약진 등 다양한 요인 덕에 꾸준한 가격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5년간 수입차 가격이 24% 상승하는 동안 국산차 가격은 33% 올랐으며, 그 결과 국산차와 수입차의 가격 격차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이제 소비자들은 실질적인 가치와 혜택을 중시하고, 단순히 ‘해외 브랜드’라는 이유로 수입차에 프리미엄을 지불하려 하지 않는다고 풀이할 수 있다.

    BYD가 불러온 전기차 가격 하락 경쟁

    1월 16일 인천에서 열린 중국 전기차 브랜드 BYD 미디어 쇼케이스 행사에서 조인철 BYD코리아 승용부문 대표가 ‘아토 3’ 등 주력 차량을 소개하고 있다. [뉴시스]

    1월 16일 인천에서 열린 중국 전기차 브랜드 BYD 미디어 쇼케이스 행사에서 조인철 BYD코리아 승용부문 대표가 ‘아토 3’ 등 주력 차량을 소개하고 있다. [뉴시스]

    최근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눈에 띄는 또 한 가지 변화는 전기차 가격 인하다. 1월 중국 전기차 브랜드 BYD(비야디)가 3190만 원대 전기차 ‘아토 3’를 출시하며 국내 소비자를 공략하고 나선 게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아토 3는 정부 보조금을 받을 경우 2000만 원대 후반에 구매할 수 있어 ‘2000만 원대 전기차’로 불린다. 중국 브랜드의 저렴한 가격정책은 많은 이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결과적으로 전기차 시장 전반에 가격 재조정 바람을 일으켰다.

    현대자동차 전기차 아이오닉 5. [현대자동차 제공]

    현대자동차 전기차 아이오닉 5. [현대자동차 제공]

    ‌현대자동차는 ‘아이오닉 5’와 ‘아이오닉 6’ 일부 트림에 한해 300만~400만 원씩 할인 판매를 시작했다. 폭스바겐 SUV ‘ID.4’는 보조금을 받으면 3000만 원대 후반에 구매할 수 있다. 볼보도 최근 국내에 선보인 ‘EX30’ 판매가를 최대 330만 원까지 인하해 세계 모든 국가 중 가장 낮은 가격에 출고한다고 발표했다. 현재 실구매 가격을 3000만~4000만 원대로 책정한 국내외 전기차종은 10개가 넘는다. 특히 현대차·기아 전기차의 경우 가격 할인에 재고 할인, 정부 보조금 등을 더하면 기존 대비 최대 1000만 원까지 저렴하게 살 수 있다.

    폭스바겐 전기차 ID.4. [폭스바겐코리아 제공]

    폭스바겐 전기차 ID.4. [폭스바겐코리아 제공]

    ‌전기차 가격 인하 현상이 우연히 나타난 것은 아니다. 국내 전기차 산업은 기술 발전과 생산 효율성 개선, 정부의 다양한 보조금 정책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했지만, 소비자 다수는 당장 차를 바꿀 생각이 없어 보인다. 시장 조사기관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1월 국내 전기차 신규 등록 대수는 2378대로 전년 동월 대비 6% 감소했다. 지난해 12월과 비교하면 한 달 만에 69.6%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 통계를 봐도 1월 수입 전기차 판매는 635대에 그쳐 전년 동월 대비 22.7% 줄었다. 지난해 12월 대비 감소율은 72.6%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초기 구매 수요가 이미 채워졌고 대기 수요 또한 감소해 전기차 판매가 줄어들고 있다고 풀이한다.



    시장 동향 파악하고 합리적 소비할 때

    이제 소비자는 가격 대비 성능(가성비), 디자인, 안전성 등을 동시에 만족시킬 전기차를 찾고 있다. 그러나 전기차 가격은 기본적으로 내연기관차에 비해 비싸다. 충전 인프라가 제법 늘었지만 여전히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남아 있고, 안전성 우려도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여러 원인으로 전기차 판매 부진이 이어지자 수입 딜러사들은 가격 인하를 단행하고 있다. 자동차 구매 정보 플랫폼 겟차에 따르면 ‘iX’ 등 BMW 전기차는 최근 기존 대비 15% 낮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EQE’도 7% 할인 행사 중이다.

    고가 차량을 소유하는 것이 사회적 성공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제 소비자는 오직 사치만을 위해 지갑을 여는 데는 망설인다. 소비자가 현명한 선택을 한 결과는 가격 인하다. 불확실한 경제 전망, 소비심리 위축, 정책 변화라는 세 축이 맞물리면서 수입차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자동차 업체들은 앞으로 소비자 니즈와 경제 상황에 맞춰 더욱 유연한 가격정책을 펼쳐야 할 테고, 소비자는 새로운 흐름을 잘 파악해 합리적인 소비를 해야 할 것이다.

    *유튜브와 포털에서 각각 ‘매거진동아’와 ‘투벤저스’를 검색해 팔로잉하시면 기사 외에도 동영상 등 다채로운 투자 정보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