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차 초등학교 교사이자 교원단체 ‘실천교육교사모임’ 회장인 천경호 교사가 ‘대전 초등생 살해 사건’ 이후 학교 현장을 두고 한 말이다. 2월 10일 대전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이 교사에게 살해됐다. 사건 발생 직후 천 씨는 가해자가 외부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다시 뉴스를 찬찬히 읽으며 가해자가 교사라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천 씨는 교사이면서 두 아이를 키우는 부모이기도 하다. 피해자 김하늘 양이 떠나고 열흘이 지난 지금도 그는 관련 뉴스를 제대로 읽지 못한다. 기자가 ‘김하늘 양’ 사건에 관해 묻자, 그의 눈가가 붉어졌다. 서이초 사건(2023년 7월 서이초 교사가 교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 고인이 학부모로부터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는 의혹이 있었다) 이후 교사의 정신건강 문제는 사회적 문제로 자리 잡았다. 2년이 지난 지금 학교 현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천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20년째 교직 생활을 하고 있는 천경호 교사. [천경호 제공]](https://dimg.donga.com/ugc/CDB/WEEKLY/Article/67/b7/e2/82/67b7e2820076d2738276.jpg)
20년째 교직 생활을 하고 있는 천경호 교사. [천경호 제공]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교사
충격적인 사건에도 교문은 열린다. 3월 4일은 전국 6000여 개 초등학교 개학날이다. 새 학기 담임 소개서를 쓰고 있는 천 씨는 평소와 달리 걱정이 앞선다. 이번 사건으로 학부모의 시선이 교사들에게 더욱 날카로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동료 교사들도 “너희 선생님 요즘 표정은 어때?” “까칠하진 않아?” 같은 질문이 가정에서 오가지 않을까 우려한다.
천 씨 주변에도 변화가 생겼다. 우울증이 있는 한 동료 교사는 잠재적 가해자처럼 여겨지는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교단을 떠났고, 다른 동료 교사도 우울증이 있는 자신을 학부모들이 어떻게 볼지 두려움이 크다고 털어놓았다. 학교가 위축된 상황에서 신학기를 맞으면 교육 활동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천 씨는 “아이들과 친밀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시기에 담임이 우울증을 앓는다는 소문이 퍼지면 라포(rapport·친분)를 쌓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20년 차 교사인 천 씨는 동료들의 정신건강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낀다. 그는 자신을 ‘5분 대기조’라고 설명했다. 교사는 예측 불가능한 아이 약 20명과 그 뒤에 있는 학부모 40명을 1년 내내 상대하고, 아이들 행동에 대해 ‘직을 걸고’ 책임져야 한다. 아이들도 그런 점을 잘 안다. 당장 그도 매년 학생들로부터 “선생님, 이거 아동학대예요”라는 말을 듣곤 한다. 실제로 한 동료 교사는 방학 중 학생에게 전화로 안부를 물었다가 아동학대 신고를 당했다. 천 씨는 “예전에는 기사로 나올 일도 이젠 안 나온다”며 “그만큼 이런 일이 흔해졌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교사들은 스트레스 상황에 자주 노출되지만, 이를 나누거나 풀 기회는 적다. 쉬는 시간에도 각자 반에 머무는 초등학교 교사 특성상 동료들과 교류할 시간이 부족하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교사가 생긴다. 천 씨는 한 젊은 교사를 떠올렸다. 성격이 밝은 교사였지만 1년간 학교에서 보이지 않아 자초지종을 들으니 우울증으로 휴직계를 냈다는 것이었다. 동료 교사가 위험 신호를 보냈을 때 적절한 조치를 받은 사례가 있느냐는 질문에 천 씨는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결국 돌아오지 않는 교사도 늘었다. 재직 기간 5년 미만 저연차 교사의 중도 이탈 비율은 2021년 39.7%, 2022년 48.6%, 2023년 59.1%로 계속 증가했다.
‘어쩌다’ 교사도 살아남으려면
정치권과 학교 현장에서는 ‘하늘이법’을 대안으로 논의하고 있다. 교육공무원 질병휴직위원회를 의무화하고 학생·동료 교사·가족이 위원회에 참여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천 씨는 이 같은 위원회 구성으로는 정말 위급한 교사를 보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원의 정신질환 원인 중 비중이 가장 큰 것은 학생”이라며 “학업 성취가 떨어지거나 친구 관계로 교사에게 지적을 받으면 해당 학생은 객관적인 판단이 흐려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비전문가 판단에 맡기기보다 전문가들이 교차 검증하는 방안이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이다.
천 씨는 좀 더 근본적으로 교사의 정신건강을 지키려면 교사 간 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천 씨는 코로나19가 유행하던 2021년 무렵 같은 학교 교사들과 1년간 모임을 가진 적이 있다. 시작은 택배 배달이었다. 교무부장이던 그는 동료 교사들에게 온 택배를 각 반을 돌며 건네면서 어려운 점이 있는지 물었다. 그 과정에서 교사들이 서로 모여 얘기할 필요성을 느꼈다. 천 씨는 퇴근 후 교장부터 초임 교사까지 열댓 명을 불러모았다. 선후배 교사끼리 고충을 나누고 해결책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각자 왜 교사가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천 씨는 “처음부터 교사가 꿈이던 사람은 드물었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어떤 교사가 되고 싶은지는 비슷했다. 아이들을 잘 교육시키는 교사, 아이들의 이야기를 잘 듣는 교사…. 학생을 괴롭히려는 교사는 한 명도 없었다. 천 씨는 이런 모임이 교사들이 고립되는 시간을 줄인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울증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이라며 “이 모임을 통해 교사들이 자신의 일상과 교육에 대한 가치를 되새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교육 질도 향상됐다. 실제로 천 씨가 재직하던 학교는 경기 성남에서 가장 먼저 원격수업 기구를 도입하고 비대면 줌 수업을 실시했다. 원활한 교류가 신속한 대응으로 이어진 사례다.
천 씨는 올해 4학년 담임을 맡았다. 매 학기 첫날엔 학생들에게 자신의 꿈을 얘기한다. “언제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안심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묻는다. “그런 사회를 만들려면 누가 먼저 훌륭해야 할까.” 아이들은 답한다. “우리들이요!” 그는 빙그레 웃으며 답한다. “1년 동안 열심히 가르칠 테니, 도와달라.”
윤채원 기자
ycw@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윤채원 기자입니다. 눈 크게 뜨고 발로 뛰면서 취재하겠습니다.
‘박근혜 탄핵’에도 영업했던 재동주유소… “폐쇄 검토”
요즘 소비시장은 ‘구매’ 대신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