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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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 AI 거인으로 이끌 ‘유리 기판’ 첨단기술

유기 기판 대비 전력 소모 30% 적어… 데이터 처리 속도는 40% 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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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현 테크라이터

    yhmoon93@donga.com

    입력2025-02-26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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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의 D램과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덕분에 한국은 인공지능(AI) 시대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확보했다. AI 시스템을 운영하려면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가 필수적이고, CPU와 GPU를 작동하기 위해서는 D램, HBM 같은 메모리 반도체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이 단일 상품에만 의존하면 성장을 지속할 수 없다. 성공한 기존 사업을 바탕으로 인접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엔비디아,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기존 반도체 사업의 성공을 발판 삼아 신규 기술개발에 투자하는 이유다.


    데이터의 도로, 기판

    SKC 유리 기판. [SKC 제공]

    SKC 유리 기판. [SKC 제공]

    메모리 반도체를 이을 차세대 기술로 유리 기판이 부상하고 있다. 기판이란 CPU, GPU, 메모리 등 반도체들을 물리적으로 연결하고 전기적 신호를 전달하는 핵심 부품이다. 반도체 간 데이터를 원활하게 이동시키는 도로 역할을 하는 동시에 반도체에 전력을 공급하는 전력망 역할도 수행한다.

    기존 반도체 패키징에서는 탄소를 기반으로 한 플라스틱 계열 소재 유기 기판이 사용됐다. 유기 기판은 오랜 기간 반도체 패키징의 기본 소재로 활용됐지만, 최근 고성능 반도체 사용이 늘면서 유기 기판의 치명적인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우선 데이터 전송 시 신호가 약해지고 오류가 자주 발생한다. 또 GPU를 구동할 때 발생하는 열 때문에 기판이 물리적으로 변형되고 반도체 간 연결이 쉽게 끊긴다. 더 나아가 최신 반도체는 굵기가 2㎛(마이크로미터) 이하인 초미세 배선으로 연결되는데, 유기 기판에는 이렇게 가느다란 배선을 새기기가 어렵다. 반도체에 전력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전력 손실이 커 AI 구동 과정에 수백W(와트) 전력이 소모된다는 점도 문제다. 이에 현재는 실리콘 기판이 유기 기판의 대안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실리콘 기판은 열에 의한 변형이 유기 기판보다 적고 신호가 약해지는 현상도 덜 발생하며 초미세 배선도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하지만 실리콘 기판은 크기를 확장하는 데 한계가 있고 제조 비용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차세대 유리 기판은 실리콘 기판의 한계마저 극복할 수 있다. 유기 기판 대비 전력 소모는 30%나 적고 데이터 처리 속도는 40% 빠르다. 기존 유기 기판이 데이터가 이동하는 국도였다면 유리 기판은 고속도로에 비유할 수 있다. 유리라는 소재의 특성상 열에 의한 휨 현상이 매우 적은 것도 장점이다. 다만 유리 기판은 아직 양산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 공정 과정에서 깨지기 쉽고 대량생산을 위해서는 공정을 최적화해야 한다는 여러 기술적 도전이 남아 있다.

    반도체 성능 극대화하는 유리 기판

    SKC, LG이노텍, 삼성전기 로고(왼쪽부터). [SKC 제공, LG이노텍 제공, 삼성전기 제공]

    SKC, LG이노텍, 삼성전기 로고(왼쪽부터). [SKC 제공, LG이노텍 제공, 삼성전기 제공]

    현재 SKC, 삼성전기, LG이노텍 등 여러 한국 기업이 유리 기판 상용화를 위한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미국 기업 인텔과 코닝, 일본 기업 다이니폰인쇄와 이비덴 등도 일찍이 유리 기판 연구개발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마켓츠앤드마켓츠에 따르면 유리 기판 시장 규모는 2023년 71억 달러(약 10조2000억 원)에서 2028년 84억 달러(약 12조1000억 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유리 기판의 시장 규모와 수익성은 반도체에 비해 크지 않다. 하지만 유리 기판의 전략적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유리 기판은 단순히 반도체를 연결하는 부품이 아니라, 반도체 성능을 극대화하는 핵심 기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기업들은 유리 기판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기업들은 메모리 반도체 기술력과 첨단 소재 가공 능력을 접목해 유리 기판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유리 기판 개발을 발판으로 신경망처리장치(NPU), 전력 반도체 등 시스템 반도체 개발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유리 기판 시장에서 선두적인 기술을 확보한다면 한국 기업들은 AI 시대 거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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