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 100년 이상의 금강송이 늘어서 있는 구룡령 옛길.
반면 양양과 홍천 사이의 백두대간을 가로지르는 구룡령 옛길(명승 제29호)은 일제강점기에 지금의 구룡령 신작로가 개설된 뒤부터 최근까지 사람의 발길이 뚝 끊겼다. 그 덕택에 지금까지도 옛적의 자연미와 운치가 거의 완벽하게 보존돼 있다. 사실 우리 땅에서는 안 가본 데가 없다고 자부하던 나도 지난해 가을 우연히 구룡령휴게소에 들렀다가 구룡령 옛길이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그리고 반년쯤 더 지난 올 봄에야 비로소 그 길을 밟아보게 되었다.
4월 말, 처음 찾은 구룡령 옛길의 아름다움과 운치는 기대치를 훨씬 뛰어넘었다. 첩첩산중의 옛길답게 길은 구불거림과 오르내림이 물길처럼 자연스럽고, 길을 에워싼 숲은 전인미답의 처녀림처럼 울울창창했다. 갈천마을에서 구룡령 옛길의 정상까지 왕복 6km 구간을 약 4시간에 걸쳐 오르내리는 동안 일행은 “우~ 아” “좋다!”라는 탄성을 끊임없이 쏟아냈다. 게다가 이따금씩 불어오는 산바람과 쉼 없이 들려오는 새소리는 온몸 구석구석에 쌓인 속세의 때를 말끔히 씻어내는 듯했다. 첫 만남의 감동과 설렘의 기억이 채 사그라지기도 전인 5월 초 또다시 구룡령 옛길을 찾았다.
구룡령 옛길을 좀더 쉽고 편안하게 섭렵하려면 현재 56번 국도가 지나는 구룡령 정상(해발 1013m)을 기점으로 삼는 것이 좋다. 본래 지명이 ‘장구목’이었다는 구룡령 정상에서 출발하면, 초반의 가파른 오르막길을 10여 분에 걸쳐 통과한 뒤로는 줄곧 완만한 내리막길과 평탄한 능선길만 걷게 된다. 전반적으로 길이 뚜렷하고 산세가 완만해 예닐곱 살 된 어린아이들도 무리 없이 걸을 수 있다. 초반의 오르막길도 꿩의바람꽃, 한계령풀, 현호색, 박새, 큰개별꽃, 얼레지, 피나물 등이 연신 피고 지는 산상화원을 가로지르기 때문에 피곤하다는 느낌은 그리 들지 않는다. 더욱이 백두대간의 능선길로 올라선 뒤에는 빽빽한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드러난 설악산의 웅자(雄姿)를 조망하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날아갈 듯 가뿐해진다.
비교적 가파른 경사길 우람한 노송 반겨
구룡령 정상에서 화려한 꽃길과 조붓한 능선길을 30분쯤 걸으면 구룡령 옛길의 정상에 당도한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귀틀집으로 지어진 주막과 산신당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명승으로 지정된 구룡령 옛길의 양양 구간이 시작된다. 그리고 직진하면 갈전곡봉(1157m), 조침령(760m), 점봉산(1424m) 등을 거쳐 설악산 대청봉(1708m)까지 내달리는 백두대간의 마루금이 장대하게 이어진다. 왼쪽 길은 구룡령 옛길의 홍천 방면 종점인 내면 명개리의 명지거리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방치돼온 탓에 길을 찾기가 어렵다.
구룡령 옛길은 비교적 경사가 가파르다. 하지만 몸으로 느끼는 경사도는 실제보다 훨씬 완만하다. 춤추듯이 경쾌하고 자연스럽게 구불거리며 고도차이를 극복하기 때문이다.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이 길에서 힘을 아끼며 험산준령을 넘나들었던 우리 선인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듯하다. 더구나 이 옛길은 꿈결처럼 아름다운 꽃길, 푹신한 감촉이 느껴지는 낙엽길, 사각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은 산죽길, 청신한 솔 향기로 가득한 솔숲길을 차례대로 지나는 덕택에 풍정(風情)도 매우 다채롭다.
반세기 전까지도 노새와 말들이 줄지어 넘나들고, 연지곤지 곱게 찍은 새색시가 가마를 타고 넘던 구룡령 옛길에는 오랜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옛길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산비탈에는 일제강점기 철광석을 채굴했던 갱도가 3개소 있다. 그리고 옛길 옆의 우뚝한 언덕배기에는 당시 철광석을 운반하기 위해 가설한 삭도(索道) 승강장의 콘크리트 잔해와 녹슨 강철케이블이 수백m나 고스란히 남아 있다.
구룡령 옛길 정상과 갈천마을의 딱 중간에 자리한 ‘솔반쟁이’ 주변에는 1980년대 후반 경복궁 복원공사 때 재목으로 잘려나간 노송들의 그루터기가 흩어져 있다. 이곳에 자생하던 수령 100년 이상의 금강송 40여 그루가 경복궁 대들보와 기둥의 재목으로 베어졌다고 한다. 지금도 갈천마을과 가까운 옛길의 아래쪽 길가에는 어른 둘이 껴안아도 모자랄 만큼 우람한 금강송이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서 있다. 신목(神木) 같은 형용의 금강송이 있는가 하면, 뿌리를 반쯤 드러낸 채 늠름하게 서 있는 노송도 있다. 이처럼 기품 있고 준수한 소나무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구룡령 옛길은 꼭 한 번쯤 찾아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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