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코미디 ‘굿바이 걸(The Goodbye Girl)’은 만나는 남자마다 쉽게 이별(굿바이)을 당하는 34세의 전직 댄서이자 미혼모인 폴라의 성장기다. 원작은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갖춘 작가 닐 사이먼이 시나리오를 쓴 1977년 동명의 영화다. 개봉 당시 골든글로브 각본상과 작품상,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을 받았으며 닐 사이먼이 직접 뮤지컬로 각색해 1993년 브로드웨이 마퀴스 극장에서 초연됐다.
1927년 뉴욕 브롱스에서 태어난 닐 사이먼은 유년시절부터 경험했던 주변의 뉴요커들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즐겨 등장시킨다. 그는 고층빌딩이 즐비한 맨해튼의 생존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뉴요커들의 모습을 통해 그들의 일상적이고도 진지한 고민을 페이소스 있게 녹여낸다. 닐 사이먼은 평생 수많은 희곡과 시나리오를 썼지만 브로드웨이에서도 총 5편의 뮤지컬 대본을 썼다. ‘굿바이 걸’은 ‘리틀 미’(Little Me, 1962) ‘약속, 또 약속’(Promises, Promises, 1968) ‘스위트 채러티’(Sweet Charity, 1969) ‘듀엣’(They’re Playing Our Song, 1979)에 이은 최신 뮤지컬이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폴라와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리며 자신의 이름으로 세들어 살던 아파트에 자기 친구를 들인다. 이 바람에 폴라는 거리로 나앉게 될 상황에 처한다. 열두 살의 조숙한 딸 루시까지 딸린 폴라는 당장 갈 곳도 없고 현재 실직상태이기 때문에 돈도 없다. 결국 폴라는 시카고 출신의 연극배우이자 전 남자친구의 친구인 세입자 엘리엇과 특이한 동거를 한다. 처음에는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두 사람은 엘리엇이 뉴욕에 와서 처음 주연을 맡아 혹평받은 연극 ‘리처드 3세’ 공연 이후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어쩔 수 없는 동거인’에서 ‘진정한 사랑의 동반자’로 발전하게 된다.
‘굿바이 걸’에서 폴라의 캐릭터는 전직 카바레 댄서인 순둥이로 남자들에게 이용만 당하는 ‘스위트 채러티’의 여주인공 채러티의 애처로움, 그리고 과대망상을 가진 작사가지만 돈이 없어 친구의 무대의상을 빌려입고 나타나는 ‘듀엣’의 여주인공 소냐의 엉뚱함이 혼합돼 있다. 이렇듯 닐 사이먼 작품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소심한 여주인공들은 속사포 같은 대사를 통해 세상을 향한 자신의 불안감을 내보인다. ‘굿바이 걸’ 1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폴라와 엘리엇의 밀고 당기는 말싸움도 A의 은유와 B의 은유가 합해져 전혀 새로운 C를 낳는 닐 사이먼 특유의 위트다. 그리고 마빈 햄리시의 음악이 요즘 세상에서는 진부할 수도 있는 이러한 대화를 효과적으로 지탱하고 있다. ‘코러스 라인’의 작곡가이기도 한 그의 중독성 강한 멜로디는 맛깔스런 편곡에 힘입어 초연 15년이 지난 지금에도 신선함을 선사한다.
여주인공을 맡은 하희라는 목소리가 저음이다. 그래서 들뜬 폴라 역을 맡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오랜 연기생활에서 오는 여유로움으로 무대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일부 노래에서 호흡이 다소 거칠고 표정에서도 힘든 모습이 역력했지만, 완벽한 가사 전달과 정확한 음정은 그의 연습량을 가늠케 해주었다.
주인공 하희라와 정성화 가창·연기력 돋보여
엘리엇 역을 맡은 정성화는 이 작품의 뼈대를 세우고 있다. 방송국 공채 개그맨에서 뮤지컬 배우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 그는 이제 코믹뿐 아니라 변화무쌍한 카멜레온 같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극중 처음 부르는 ‘엘리엇 가필드의 집’에서 선보인 가창 실력도 실력이지만 닐 사이먼이 1960~70년대 뉴욕 오프-오프 브로드웨이 대안(代案)연극 운동의 이면인 실험지상주의를 풍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삽입한 극중극 ‘리처드 3세’ 장면에서 ‘남성인 리처드 3세를 연기하는 여성’이라는 모호한 캐릭터를 소화해낸 연기력도 뛰어났다.
조연 중에서는 아파트 관리인 가필드 아내를 연기한 최나래의 능청스러운 이혼녀 역이 인상적이었다. 나이에 비해 사려 깊은 딸 낸시를 연기한 이지민의 연기도 좋았다. 다만 감초 구실을 하는 앙상블들이 인상적이지 못한 점은 아쉽다. 객석 앞쪽에서만 머무는 답답한 음향과 빈곤한 무대배치 역시 부족함을 드러냈다. 특히 버티컬 블라인드를 활용한 장면전환은 공간을 단순하게 실내와 실외로 구분할 뿐, 효과적인 재배치가 불가능한 구조였다. 이는 공연장(백암아트홀)의 태생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
원작이 미국식 유머코드로 무장돼 있어 번역과정에서 어색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한국적인 위트를 찾으려는 제작진의 노력도 엿보인다. 극중극 ‘리처드 3세’에 대한 신문 평론에서 “, 새장 속의 광인들, (La Cage aux Folles)이 존 웨인 드라마를 만났다”는 표현을 “헤드윅이 람보 시리즈와 만났다” 같은 한국식 표현으로 바꾼 것이나 엘리엇과 폴라가 옥상에서 데이트하며 부르는 ‘폴라(즉흥 러브송)’의 가사에서 폴라, 콜라, 올라 등과 같이 한국식 운율을 맞춘 것은 소소한 재미를 선사한다.
이 작품의 주제는 세상이 아무리 절망에 빠졌다 해도 결국 사랑이 우리를 이끌어준다는 것이다. 다섯 명의 남자들에게 버림받으며 가슴이 멍든 폴라, ‘나에게 아빠는 생물학적인 아빠밖에 없어요’라며 냉정하게 말하는 루시를 하나로 잇는 것은 두 모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엘리엇의 한마디다. 이 사랑을 통해 작가는 힘든 현실 속에서도 파릇파릇 돋아나는 봄날의 새싹 같은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공연은 6월15일까지 삼성동 백암아트홀(02-501-7888)에서 열린다.
1927년 뉴욕 브롱스에서 태어난 닐 사이먼은 유년시절부터 경험했던 주변의 뉴요커들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즐겨 등장시킨다. 그는 고층빌딩이 즐비한 맨해튼의 생존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뉴요커들의 모습을 통해 그들의 일상적이고도 진지한 고민을 페이소스 있게 녹여낸다. 닐 사이먼은 평생 수많은 희곡과 시나리오를 썼지만 브로드웨이에서도 총 5편의 뮤지컬 대본을 썼다. ‘굿바이 걸’은 ‘리틀 미’(Little Me, 1962) ‘약속, 또 약속’(Promises, Promises, 1968) ‘스위트 채러티’(Sweet Charity, 1969) ‘듀엣’(They’re Playing Our Song, 1979)에 이은 최신 뮤지컬이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폴라와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리며 자신의 이름으로 세들어 살던 아파트에 자기 친구를 들인다. 이 바람에 폴라는 거리로 나앉게 될 상황에 처한다. 열두 살의 조숙한 딸 루시까지 딸린 폴라는 당장 갈 곳도 없고 현재 실직상태이기 때문에 돈도 없다. 결국 폴라는 시카고 출신의 연극배우이자 전 남자친구의 친구인 세입자 엘리엇과 특이한 동거를 한다. 처음에는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두 사람은 엘리엇이 뉴욕에 와서 처음 주연을 맡아 혹평받은 연극 ‘리처드 3세’ 공연 이후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어쩔 수 없는 동거인’에서 ‘진정한 사랑의 동반자’로 발전하게 된다.
‘굿바이 걸’에서 폴라의 캐릭터는 전직 카바레 댄서인 순둥이로 남자들에게 이용만 당하는 ‘스위트 채러티’의 여주인공 채러티의 애처로움, 그리고 과대망상을 가진 작사가지만 돈이 없어 친구의 무대의상을 빌려입고 나타나는 ‘듀엣’의 여주인공 소냐의 엉뚱함이 혼합돼 있다. 이렇듯 닐 사이먼 작품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소심한 여주인공들은 속사포 같은 대사를 통해 세상을 향한 자신의 불안감을 내보인다. ‘굿바이 걸’ 1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폴라와 엘리엇의 밀고 당기는 말싸움도 A의 은유와 B의 은유가 합해져 전혀 새로운 C를 낳는 닐 사이먼 특유의 위트다. 그리고 마빈 햄리시의 음악이 요즘 세상에서는 진부할 수도 있는 이러한 대화를 효과적으로 지탱하고 있다. ‘코러스 라인’의 작곡가이기도 한 그의 중독성 강한 멜로디는 맛깔스런 편곡에 힘입어 초연 15년이 지난 지금에도 신선함을 선사한다.
여주인공을 맡은 하희라는 목소리가 저음이다. 그래서 들뜬 폴라 역을 맡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오랜 연기생활에서 오는 여유로움으로 무대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일부 노래에서 호흡이 다소 거칠고 표정에서도 힘든 모습이 역력했지만, 완벽한 가사 전달과 정확한 음정은 그의 연습량을 가늠케 해주었다.
주인공 하희라와 정성화 가창·연기력 돋보여
엘리엇 역을 맡은 정성화는 이 작품의 뼈대를 세우고 있다. 방송국 공채 개그맨에서 뮤지컬 배우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 그는 이제 코믹뿐 아니라 변화무쌍한 카멜레온 같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극중 처음 부르는 ‘엘리엇 가필드의 집’에서 선보인 가창 실력도 실력이지만 닐 사이먼이 1960~70년대 뉴욕 오프-오프 브로드웨이 대안(代案)연극 운동의 이면인 실험지상주의를 풍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삽입한 극중극 ‘리처드 3세’ 장면에서 ‘남성인 리처드 3세를 연기하는 여성’이라는 모호한 캐릭터를 소화해낸 연기력도 뛰어났다.
조연 중에서는 아파트 관리인 가필드 아내를 연기한 최나래의 능청스러운 이혼녀 역이 인상적이었다. 나이에 비해 사려 깊은 딸 낸시를 연기한 이지민의 연기도 좋았다. 다만 감초 구실을 하는 앙상블들이 인상적이지 못한 점은 아쉽다. 객석 앞쪽에서만 머무는 답답한 음향과 빈곤한 무대배치 역시 부족함을 드러냈다. 특히 버티컬 블라인드를 활용한 장면전환은 공간을 단순하게 실내와 실외로 구분할 뿐, 효과적인 재배치가 불가능한 구조였다. 이는 공연장(백암아트홀)의 태생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
원작이 미국식 유머코드로 무장돼 있어 번역과정에서 어색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한국적인 위트를 찾으려는 제작진의 노력도 엿보인다. 극중극 ‘리처드 3세’에 대한 신문 평론에서 “, 새장 속의 광인들, (La Cage aux Folles)이 존 웨인 드라마를 만났다”는 표현을 “헤드윅이 람보 시리즈와 만났다” 같은 한국식 표현으로 바꾼 것이나 엘리엇과 폴라가 옥상에서 데이트하며 부르는 ‘폴라(즉흥 러브송)’의 가사에서 폴라, 콜라, 올라 등과 같이 한국식 운율을 맞춘 것은 소소한 재미를 선사한다.
이 작품의 주제는 세상이 아무리 절망에 빠졌다 해도 결국 사랑이 우리를 이끌어준다는 것이다. 다섯 명의 남자들에게 버림받으며 가슴이 멍든 폴라, ‘나에게 아빠는 생물학적인 아빠밖에 없어요’라며 냉정하게 말하는 루시를 하나로 잇는 것은 두 모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엘리엇의 한마디다. 이 사랑을 통해 작가는 힘든 현실 속에서도 파릇파릇 돋아나는 봄날의 새싹 같은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공연은 6월15일까지 삼성동 백암아트홀(02-501-7888)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