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건천면 박동배 씨 축사에서 볏짚을 먹고 있는 한우.
5월14일 오전 경북 포항시 신광면 기일리 비포장도로에서 만난 전국한우협회 포항시지부 김선칠(58) 지부장은 소 브루셀라병 방역에 한창이었다. 매주 한 번 1t 방역차량을 타고 신광면 일대 축산농가를 돌며 소독작업을 하는데, 14일이 그날이란다. 신광면은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마을 덕성리와 불과 2, 3km 떨어진 이웃 마을.
취재차량으로 뒤따르며 마을 곳곳 축사를 둘러본 뒤 한 양계농장에 들렀다. “영천에 이어 경산에서도 조류 인플루엔자(AI)가 확인됐다고 하네. 이거 뭐, 일이 손에 잡혀야지예.”
“지난해 520만원 하던 임신우 지금은 300만원도 못 받아”
달걀 포장작업을 하던 최규덕(51) 씨는 AI가 닥치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달걀 값 얘기가 나오자 바닥에 쪼그리고 앉는다. 개당 107원이던 달걀이 요즘 103원으로 떨어져 하루 420판(달걀 1만2600개) 출하하면 5만원 이상 수익이 줄었다는 그의 하소연에 김 지부장은 “소도 마찬가지 아이가”라며 위로했다. 최씨는 월 2400만원인 사료 값이라도 나올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이래 (소를) 키우면 뭐 합니까.”
소독작업을 마치고 신광면사무소에 도착해 소독기기를 내려놓던 김 지부장이 옷을 툴툴 털며 한마디 한다. 잠시 후 마을별로 소독작업을 끝낸 차량 3대가 도착하자 10여 명이 내렸다. 김 지부장은 축산 정보를 주고받는 신광한우연구회(회장 최생환) 회원들이라고 했다. 면사무소 앞 식당에 모인 회원들은 눈인사를 하고는 이내 숟가락 들기에 바빴다. “요즘 농번기라….” 분위기를 물었다.
“파산하느냐 마느냐인데요. (쇠고기 수입) 협상 이후 한우 한 마리 값이 180만원 떨어졌습니다. 사료 값은 지난해 5000~6000원 하던 게 지금 1만원입니다. 키우는 만큼 손해죠.”
한우 132마리를 사육한다는 김 지부장의 말이 끝나자 곳곳에서 한마디씩 거든다. “나는 340~350만원 하던 암송아지 한 마리를 160만원에 팔았다니까.” “16개월짜리 임신우(임신한 소)는 지난해 520만원 했는데 지금은 300만원도 못 받습니다.”
이동활 회원의 설명은 구체적이었다. “하루 소 한 마리에 들어가는 배합사료 8kg 값은 3200원, 볏짚은 2kg에 600원이에요. 한 마리당 월평균 12만원 정도죠. 100마리 키우면 월 1200만원입니다. 거기에 축사 감가상각비와 운영비까지 더하면….”
130마리를 키워 평균 8억원 하던 자산가치가 ‘쇠고기 파동’으로 4억원이 됐다며 울분을 토했다.
포항시 신광면 최규덕 씨의 양계농장. 최씨는 AI 확산 여파로 달걀 소비가 15% 줄었다고 했다.
회원들은 소 4, 5마리를 키우던 축사에서 7, 8마리를 키우거나 사료 값을 줄이려고 직접 청보리나 옥수수 등 조사료를 재배하는 식의 ‘고육지책’도 짜냈다고 했다.
최근 정부 지원책에 대해 ‘쇠고기 수입을 위해 (축산농가에) 사탕 물려놓은 것’ ‘독약’이라는 반응이 나오더니, 식사가 끝날 무렵 ‘포커스’는 이명박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김 지부장은 “(미국산 쇠고기를) ‘안 먹으면 될 거 아니냐’고 하셨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한우도 안 먹게 됐다”면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지. (이 대통령을) 불신하는 사람이 많아졌어”라고 말했다. 한 회원은 “우리도 (미국에) 상품을 팔아야 하니까 이해는 합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나서서 ‘미국산 쇠고기 좋다’고 하는데, 이해가 안 돼요”라고 했다. 이동활 회원이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농업 최고경영자(CEO)’ 육성 운운하는데, 여기 있는 사람 모두 2억원 이상의 1인 CEO다. 생산비 보존이 안 돼 이러는 거 아니냐”며 언성을 높이자 다른 회원들은 “대통령이라도 (정 장관을) 말렸어야지”라고 거들었다. 시골 식당에서 열린 ‘축산농민들과의 대화’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중간상 배 채우는 유통구조부터 바꿔야”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한우 사육두수가 가장 많다는 인근 경주도 마찬가지였다. 전날 경주시 건천면 축사에서 만난 한정우(48), 박동배(42) 씨는 “(쇠고기) 수입은 예상했지만 이렇게 기습적일 줄 몰랐다. 미리 알았으면 빨리 처분이라도 했을 거 아니냐”며 허탈해했다. 한씨는 “나도 (이 대통령을) 찍었지만 자꾸 농촌을 배제하는 정책만 나온다”고 말했고, 박씨는“소 한 마리가 600만원에 팔리면 중간상인은 1200만원, 식당은 2400만원짜리로 만드는 유통구조부터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