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쇠고기 협상에 대한 국회청문회에서 국제수역사무국(OIE)은 한국정부의 수호신이었다. 모든 의혹과 질타에 대해 정부는 OIE를 바람막이로 삼았다. OIE가 없었으면 어떻게 피해갔을까 싶을 정도였다.
실제로 정부 관계자들은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안의 모든 근거를 OIE에서 찾았다.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기준을 완화한 이유를 OIE가 미국을 ‘통제된 위험국(Controlled risk country)’으로 분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30개월령 이하 쇠고기의 경우 편도와 회장원위부(소장 끝부분)를 뺀 모든 부위의 수입을 허용한 것도 OIE 규정에 따른 것이라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도대체 OIE가 어떤 곳이기에 정부는 이처럼 ‘맹신’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4월11일 열린 미국 쇠고기 수입조건 개정에 관한 한미 양국 고위급 전문가 협상에서 민동석 농림수산식품부 농업통상정책관(오른쪽)과 엘렌 텁스트라 미국 농업부 차관보가 악수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는 OIE는 1924년에 설립된 정부 간 협력기구다. 현재 회원국은 172개국으로, 우리나라는 1953년 11월 정식으로 가입했다. OIE는 4개의 지역위원회와 4개의 특별위원회, 4개 실무그룹에서 논의한 결과를 국제위원회(집행위원회)에서 심의 결정하는 구조로 운영되는데, 매년 5월에 정기적으로 회의를 연다. 광우병과 관련한 기준은 4개 특별위원회 중 하나인 ‘육상동물위생규약위원회(Code Commission)’ 소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농림수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 김창섭 동물방역팀장이 정부 대리인 자격으로 매년 참가하고 있다.
강문일 수의과학검역원장은 OIE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가 공식 인정한 동물질병에 관한 방역과 기준을 정하는 유일한 국제기구”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상길 농식품부 축산정책단장은 “각국의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객관적 국제기구”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국내 전문가들의 평가는 다르다. 우희종 서울대 교수(수의학과)는 “OIE는 의학, 수의학 등 질병이나 전염병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곳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특정위험물질(SRM)에 대한 규정이나 기준을 정할 수 있는 기구도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국가 간 동물교역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WTO와 관련된 통상조절기구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홍하일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대표는 “OIE의 각국 대표들만 보더라도 정부기관 종사자 중 수의정책을 총괄하는 사람이고, 이들이 산하 위원회에도 참여해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즉, 국가 간 전염성 질병 통제와 예방보다는 통상이익이 우선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OIE가 미국 등 6개 국가에 대해 ‘통제된 위험국가’로 예비판정을 내렸을 때 정부 자문위원회에 참여한 국내 전문가들이 이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지만, 정부는 OIE의 결정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단적인 예라는 지적이다.
홍 대표는 그 연장선에서 OIE, 특히 육상동물위생규약위원회가 세계 최대 쇠고기 수출국인 미국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나타냈다. 이 위원회의 위원장이 바로 미국 농무부 고위간부 출신인 알렉스 티에르만이기 때문이다. 티에르만은 WTO 위생검역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해 국제축산물 통상업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 농무부 출신이 육상동물위생규약위원장
그래서일까? OIE가 그동안 광우병 통제국가 등급기준으로 삼은 광우병 예찰기준은 물론 지난해 개정, 적용한 광우병(BSE) 위험등급은 미국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돼 있다.
OIE 광우병 예찰기준을 보면 소 사육두수 중 24개월령 이상 소 5만~100만두를 사육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6등급으로 세분화해 최소 22.5%, 최대 45%의 소에 대해 광우병 검사를 해야 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OIE는 소 사육두수 100만두 이상의 국가에 대해서는 최대 45만두만 검사하면 기준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정해놓았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24개월령 이상 소에 대해, 일본에서는 월령에 관계없이 모든 소에 대해 광우병 검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국가에 이 기준은 무의미하다.
광우병이 의심되는 ‘다우너’ 소. 국내 한우 중에도 발견되지만 제대로 광우병 검사가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OIE의 광우병 위험등급 개정에서도 미국은 최대 수혜를 입었다. 개정 전까지 광우병 위험등급은 청정국과 잠정청정국, 최소위험국, 중간위험국, 고위험국 등 5단계로 나뉘었다. 비교적 세분화된 이 기준으로 등급평가를 받은 국가는 8개국에 지나지 않는다. 호주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4개국이 최고 등급인 청정국가 지정을 받았고, 칠레 아이슬란드 파라과이 싱가포르 4개국이 잠정청정국 평가를 받았다.
OIE 회원국은 자국 내 광우병이 발생했을 때 자발적으로 OIE에 광우병 발생현황과 관련 정보를 제출해야 한다. OIE에서 이를 토대로 5월8일 발표한 전 세계 광우병 발생현황을 보면 개정 전 위험등급 평가를 받은 8개 국가에서는 그동안 광우병이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지난해 새롭게 개정된 위험등급에 따른 평가 결과에서도 8개 국가 중 5개 국가가 가장 안전하다는 ‘경미한 위험국(Negligible risk country)’으로 지정됐다. 문제는 등급을 3단계로 줄여 ‘경미한 위험국’이 아닌 나머지 국가를 ‘통제된 위험국’과 ‘미결정 위험국’으로만 나눌 수 있도록 제한한 데 있다.
결국 지난해 처음 위험등급 평가를 받은 미국과 캐나다 브라질 스위스 대만 등 5개 국가가 칠레와 함께 모두 같은 등급인 ‘통제된 위험국’으로 분류됐다. 칠레는 과거 기준으로 잠정청정국이었다. 광우병이 한 건도 발생하지 않은 국가(칠레 브라질 스위스 대만)와 광우병 발생 국가(미국 캐나다)가 뒤섞인 것이다. 캐나다는 지난해는 물론 올해 2월에도 한 건의 광우병 발생 사실이 보고된 바 있다.
OIE의 평가 결과대로라면, 그리고 OIE 기준에 따라 미국과 쇠고기 협상을 했다는 정부의 설명대로라면 우리나라는 미국은 물론 캐나다에서도 같은 조건으로 수입을 허용해야 할 상황인 셈이다.
“미국 ‘통제된 위험국’ 지위 바뀔 가능성 제로”
우 교수는 “개정된 평가기준대로라면 광우병이 발생한 나라는 모두 ‘통제된 위험국’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광우병이 발생했는데 통제하지 않을 나라가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우 교수는 “이는 곧 미국에서 앞으로 광우병에 걸린 소가 아무리 많이 발견되더라도 ‘통제된 위험국’ 지위에서 바뀔 가능성은 없다는 이야기”라고 꼬집었다.
올해 OIE 총회는 5월25일부터 30일까지 파리에서 열린다. 이번 총회에서 영국을 포함한 유럽 여러 나라가 광우병 위험등급 평가에 따른 등급판정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들 대다수 국가가 ‘통제된 위험국’ 지위를 확보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들이 미국과 동등한 조건으로 쇠고기 수입개방을 요구할 때, 과연 한국 정부는 어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로 방어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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