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수의대 이영순 교수(수의공중보건학)가 이번 AI 발생에 대한 대응책을 묻자마자 토로한 말이다. 이 교수는 AI 발생 초기 2~3일간 적극적으로 위험지역 범위를 넓혀 초동 방역을 하지 못한 것이 AI가 전국적으로 확산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고 지적한다.
4월1일 전북 김제에서 첫 발생 신고가 접수된 후 AI는 20일도 안 돼 인접지역인 정읍 순창 익산과 전남 나주 영암으로까지 순식간에 번졌다. 이후 경기 충청 강원 서울 대구 등지로 빠르게 확산됐다.
무엇보다 AI의 첫 발생지로 지목되는 김제 정읍에서부터 방역당국이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 고병원성 AI가 발생하기 전까지 농림수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 관계자들은 “폐사율이 낮고 산란율도 크게 떨어지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 고병원성 AI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고 했을 정도로 전국적인 확산에는 무게를 두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농식품부 등 관계부처는 AI 발생 신고 2~3일 후 저병원성이 아닌 고병원성 AI라는 정밀검사 결과가 나오자 부랴부랴 오염된 농장의 반경 500m 이내에 한해서만 닭과 오리 등 가금류를 살처분하는 데 급급했다.
김제의 양계농장에서는 이미 AI 발생 신고 사흘 전인 3월29일부터 닭이 폐사하기 시작했고, 정읍의 오리농장도 3월31일부터 오리가 죽어나갔다. 방역당국의 조치가 취해지기 이전 6~7일 동안 AI 바이러스가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방치했던 셈이다.
이 때문에 고병원성 AI로 확인된 직후나 그 이전부터 오염지역 반경 500m보다 훨씬 넓은 3km 이내까지 살처분을 시행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 교수는 특히 방역당국이 이번 AI가 기존 국내에서의 AI 발생 시점과 달리 기온이 높은 4월에 발병했다는 점을 간과하는 바람에 화를 자초한 면도 있다고 지적한다.
“2003년에서 2006년까지 AI가 발생했을 때도 단시일 안에 농장 주변 반경 3km까지 가금류를 살처분하고 전염을 막아 국제수역사무국(OIE)으로부터 AI 청정국으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이번 AI는 감염률이나 치사율이 높고, 인체감염 위험까지 있는 고병원성 바이러스임에도 20℃ 이상의 따뜻한 기온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전염성이 덜하다고 보고 살처분 범위를 최소화했다. 여기서부터 초동 대응에 실패한 것이다.”
서울대 수의대 김재홍 교수(조류질병학)도 조류 살처분 범위 결정과 위험·경계지역 이동통제 과정에서 방역당국이 안일하게 대응했다고 질타했다. 고병원성 AI가 발생하면 ‘가축전염병예방법’과 농식품부의 ‘가금 인플루엔자 방역 실시 요령’ 고시에 의거해 농식품부와 산하 국립수의과학검역원, 보건복지가족부 산하 질병관리본부, 각 시군구 등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가 방역태세에 돌입하도록 돼 있다.
“소규모 닭·오리 판매상의 이동제한 신속히 못 이뤄져”
지자체는 방역지역(오염, 위험, 경계지역)을 설정하고 이동제한과 오염지역 가축 살처분 등의 임무를 맡는다. 농식품부는 위험지역 내 가축 살처분 여부를 결정하면서 중앙통제관을 파견해 대응을 지휘한다. 수의과학검역원은 가금류 역학 정밀조사에 나서고 질병관리본부는 인체감염 대책반을 구성해 예방 및 사후관리 역할을 도맡는다.
결국 이번 AI 사태의 문제는 초기 대응에 있었다. 즉 오염지역을 넘어선 위험지역 내 살처분 범위 설정이 극히 제한적이었다는 것. 또한 소규모 닭, 오리 판매상의 이동제한이나 재래시장 통제가 신속히 행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의 설명이다.
“(방역당국에) 여러 차례 이야기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오염지역 반경 500m 이내에서만 살처분했는데, 어떤 근거로 그런 조치를 했는지는 몰라도 나는 ‘500m냐 3km냐’는 판단의 범위를 고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위험요소가 있다면 3km까지라도 살처분해야 했다. 게다가 3km에서 경계지역인 10km까지의 이동통제도 상당 부분 제대로 되지 않았다. 특히 소규모 중간 유통업자들을 철저하게 관리하지 못했다. 이들은 감염 농장에서 재래시장으로 닭과 오리를 공급했는데 방역기간에도 전혀 통제되지 않았다. 중국과 동남아에서도 재래시장에서부터 AI 바이러스 전이가 활발했던 것처럼 이번 경우도 중간상인들과 재래시장을 막지 못한 책임이 크다. 공문만 내려보낸다고 다 통제되는 게 아니다. 나도 경험했지만 실제 AI 발생 현장이 방치될 때가 많다.”
초동 방역, 특히 살처분 범위 지적에 대해 주무부처인 농식품부는 방역지역 설정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농식품부 축산물위생팀 김준걸 주무관은 “AI 발생 시 오염지역에서 3km 범위까지의 살처분 여부는 수의과학검역원장이 건의해 장관이 결정하도록 규정돼 있다”면서 “이번 500m 살처분 결정은 정밀검사 결과는 물론, 오염지역의 상황과 여건 등을 최대한 고려해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5월12일 서울 송파구 장지동에서 살처분한 가금류의 매립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4월1일 AI 발생 신고가 접수됐고 다음 날 수의과학검역원에서 ‘H5N1형 같다’는 중간결과를 내놓았다. 4월3일 곧바로 장관 협의체인 가축방역협의회를 열었다. 교수 등 전문가들이 자문위원으로 있는데, 회의를 해보니 여건을 고려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500m 이내에서만 살처분하고 3km까지는 이동통제한 뒤 더 큰 문제가 생기면 살처분 범위를 확대하자는 결정이 났다. AI 첫 발생 농장은 다른 농장 단지에서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건물 한 동에만 폐사 사례가 있었다. 일단 신고가 빠르지 않았느냐는 문제제기가 있었고, 3km 살처분은 두고 보자는 자문위원들의 의견이 반영됐다. 그러나 그날 고병원성 AI 발생 의심 신고가 추가로 들어왔다. 4월10일 다시 (협의회를) 개최해 향후 발생 시엔 오염지역 10km 이내까지 살처분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육용 오리 발병 위험성 알고도 무시
이번 고병원성 AI 발생의 확산 과정에서 눈에 띄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대규모로 사육되는 육용(고기용) 오리가 집단 폐사했다는 점이다. 닭은 AI에 감염되면 곧 폐사한다. 임상검사만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오리 중 종자오리(알을 낳는 오리)의 경우도 감염 시 산란율이 떨어져 감염 확인이 쉽다.
그러나 육용 오리는 다르다. AI에 감염돼도 특별한 임상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항체도 감염 2주가 지나야 형성된다. 육용 오리는 대체로 부화한 지 40일 정도 지나 도축된다. 그렇다면 AI 감염 후 항체가 생기기 전에 도축돼 중간상인들을 통해 재래시장 등으로 팔려나간 경우도 적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상 육용 오리가 AI의 전국적 확산을 초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도 볼 수 있는 셈이다.
감염 전파 위험성이 높은 육용 오리 방역체계는 그야말로 구멍이 뻥 뚫려 있는 실정이다. 농식품부가 2004년 ‘가금 인플루엔자 방역 강화 대책’을 수립하면서 육용 오리 전염의 중요성을 인지했는데도 기존 혈청검사 등의 방법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오리의 경우 항체검사만으로는 감염 여부를 알 수 없어 항원검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럼에도 아직 일부에 대해서만 항체검사를 실시하는 수준이다. 충남대 수의대 서상희 교수(수의면역학)는 “(육용) 오리 항체검사는 백날 해봐야 소용없다”고 못박으며 위험성을 경고했다.
여기에다 농식품부는 지난해 전국 육용 오리 농장을 대상으로 항원검사를 실시해 일부 농장에서 AI 감염 사실까지 확인했음에도 별다른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염병 방역관리 실태에 대한 감사원 처분 보고 결과(2008년 1월)에 따르면, 농식품부는 지난해 3월 산하 가축방역협의회에서 오리에 대한 항원·항체 검사 건의를 받았다.
서울에서 AI가 발생하자 서울시와 농식품부는 가금류 살처분을 놓고 마찰을 빚었다.
이후 전국 269개 육용 오리 농장의 오리에 대해 항원·항체 검사를 실시했고, 이중 22개 농장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손을 놓고 있었던 셈이 됐다.
이에 농식품부 측은 육용 오리 전체에 대한 항원검사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농식품부 한 관계자는 “감사원에서 지적하기는 했으나 오리의 경우 40일 길러 도축하는데 바이러스 검사에만 2주가 걸린다. 더 세부적인 혈액검사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번 AI 확산 과정에서 중앙 방역기관과 지자체, 방역조직 간의 통제 및 공조 시스템도 부실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자체들은 방역지역 설정과 이동제한 조치 단계에서 경험과 전문성 부족을 드러냈다.
서 교수는 “예를 들면 각 도에는 가축위생본부가 있는데 신속하게 감염 여부를 알 수 있는 간이 진단능력을 갖춘 곳이 거의 없다”면서 “수의과학검역원장에게도 강조한 바 있지만 바이러스 전파 여부는 일선지역 방역기관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AI 발생 현장을 수없이 경험했다는 서 교수는 전문성 부족의 예를 들면서 감염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가금류를 포획, 운반하는 방법부터 허술하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보통 감염 샘플을 운반할 때는 밀폐된 컨테이너박스에 담아 옮기는 것이 원칙인데, 현장에 가보면 아직까지도 AI에 감염된 가금류나 배설물을 무조건 비닐에 싸서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운반하는 게 대부분”이라며 “별문제 없을 것 같지만 실제로 여기서 바이러스가 전염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농식품부와 지자체가 AI 긴급 행동 매뉴얼 적용을 놓고 으르렁대다가 사태를 악화시킨 경우도 발생했다. 5월5일 서울 광진구청 자연학습장의 닭에서 AI 바이러스가 확인되자 서울시가 1km 떨어진 어린이대공원과 15km 떨어진 서울대공원 조류 200여 마리를 살처분했는데, 이에 대해 농식품부가 상식 이하의 행동이라고 맞선 것.
정부와 지자체 초동 방역 단계에서 엇박자
올해 AI가 처음 발생한 전북 김제의 한 농장지역. 전문가들은 방역당국의 초기 대응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서울시도 자체적인 AI 대응에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서울시가 작성한 가축 질병 위기 대응 실무 매뉴얼의 ‘축산농가·동물사육시설 현황’에는 AI가 발생한 광진구청 자연학습장이 빠져 있다. 또한 AI가 발병하고 나서야 부랴부랴 각급 학교의 가금류 조사와 재래시장 방역 조치 공문을 일선에 하달했다. 평소 AI 대응에 소홀했다는 방증이다.
농식품부 역시 지역 실정에 맞는 대응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충북대 수의학과 모인필 교수(조류질병학)는 “축산농장이 많은 지방은 현재의 AI 대응 매뉴얼을 그대로 적용해도 무리가 없지만 서울 부산 대구 등 큰 도시에는 무조건 적용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농식품부 김준걸 주무관은 “현재의 AI 지침은 유럽연합(EU)이나 호주 등의 사례를 집약적으로 조사해 만든 것”이라며 “아무래도 축산농장이 많은 지역에 포커스를 맞춘 경향이 없지 않은데, 이는 다른 나라의 경우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수의과학검역원과 수의 전문가들 간의 업무 협조 체계도 미비하다. 일각에서는 수의과학검역원의 권위의식이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AI 대응을 방해하고 있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서 교수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예를 들면 오리의 항원검사가 어렵다고 하는데, 수의과학검역원은 민간 병원이나 교수들에게 한 번도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다. 병원이나 대학도 역학조사 시설을 갖추고 있어 언제든지 협조해줄 수 있는 여건인데 전혀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몇 곳에 도움을 주겠다는 제안까지 했는데도 거절하더라.”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린 AI 대응체계. 관련 기관들이 각기 자신의 처지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사이 AI 바이러스는 또 다른 곳을 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