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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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추앙받는 조선인 이우경을 아시나요?

임진왜란 때 끌려가 하사미町에 도자기 제조기술 전파 … 해마다 그를 기리는 제사 지내

  • 하사미정=조헌주 동아일보 지식경영팀장 hanscho@donga.com

    입력2008-05-21 08: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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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추앙받는 조선인 이우경을 아시나요?
    임진왜란 때 일본에 납치된 조선인 도공 가운데 일본인 사이에서 ‘도자기의 할아버지’, 즉 도조(陶祖)로 추앙받는 사람들이 몇 명 있다.

    그중 한국에 가장 널리 알려진 사람은 충청도 금강 유역에서 납치된 이삼평(李參平). 그는 일본 규슈 지방의 사가(佐賀)현 아리타(有田)에서 가마를 열었다. 아리타 도자기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서 그의 이름 또한 한국에 많이 알려졌다. 그런데 이곳 아리타에 맞닿아 있는 나가사키(長崎)현의 하사미(波佐見)정(町·한국의 면에 해당)에도 알려지지 않은 또 한 사람의 도조 이우경(李祐慶)이 있다.

    하사미정 주민들은 해마다 오리시키세(折敷瀨) 마을 뒷동산에 올라 이우경을 기리는 도조비 앞에서 제사를 모신다. 도자기 제조기술을 전해준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도조 이우경의 존재는 고려청자 도요지로 유명한 전라남도 강진군이 하사미정과 자매도시를 맺기 위해 지난해부터 교류를 시작하면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올해 도조제는 4월28일 하마시정의 공무원들과 도자기를 생산하는 도자기협동조합 관계자, 나가사키현의 요업기술센터 관계자, 시민, 강진군 관계자 등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올해로 50주년을 맞는 ‘하사미 도자기 축제’의 개막식 전날에 맞춰 축제의 성공 기원을 겸해 도조제가 치러진 것.

    강진군·하사미정 자매도시 맺으면서 이우경 존재 알려져



    제문 낭독을 듣고 있자니 일본어이긴 하지만 소리의 높낮이나 형식이 한국에서 시제를 올릴 때 듣던 음조 그대로여서 놀랐다. 도조비 주위에 꽂아놓은 나뭇가지와 오린 종이는 무당이 굿할 때 사용하는 것과 흡사해 한일 양국 문화가 얼마나 닮았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400여 년 동안 조선인 도공을 도조로 추앙하며 격식을 갖춰 제사를 지내온 일본인들이 있었다는 점에 생각이 미치면, 대량학살극도 모자라 수십만명의 조선인을 납치했던 왜군에 대한 적개심과는 다른 차원의 상념도 든다.

    “도조비는 원래 오무라(大村)에 있었는데, 1968년 하사미 도자기 생산 개시 370주년을 맞아 이곳으로 옮겨왔어요. 비석도 예전 것보다 크게 세웠고요. 도조 이우경은 오늘날의 하사미 마을을 있게 해준 은인이니 해마다 제사를 올리는 게 당연하죠.”

    하사미정의 이치노세 마사타(一瀨正太) 정장은 도자기 생산은 마을의 기간산업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인구 2만5000명의 하사미정에는 현재 530여 개의 도자기 관련 사업소가 있다. 요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약 3000명. 하사미정에서는 일본 전국의 일반 가정에서 사용되는 실용 식기의 약 11%를 생산하고 있다. 나가사키현에서 설립한 직원 28명의 요업기술센터가 나가사키나 사세보 같은 큰 도시가 아닌 이곳 하사미에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하사미 도자기가 아리타 도자기보다 덜 알려진 데는 역사적으로 이곳에서 생산된 도자기를 인접한 아리타 도자기와 구분하지 않고 ‘아리타 도자기’라는 공동 브랜드로 판매한 탓도 있다고 한다. 20세기 초 아리타에 기차역이 생기고 ‘아리타 도자기 축제’가 시작되자 하사미정에서 생산된 도자기를 아리타로 가져가 판매했던 것.

    일본에서 추앙받는 조선인 이우경을 아시나요?

    4월28일 일본 하사미정 공무원들과 요업 관계자, 강진군 관계자 등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우경을 기리는 도조제가 열렸다(위). 하사미정 오리시키세 마을 뒷동산에는 이곳에 도자기 기술을 전수한 이우경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하사미정은 나가사키현에서 유일하게 바다에 인접하지 않은 지역으로, 100~400m 높이의 산이 주위를 감싸고 있다. 교통이 불편한 곳이지만 도조 이우경이 이곳에 정착한 것은 도자기 원료인 도석(陶石)을 여기서 찾아냈기 때문이다.

    하사미 도자기의 원조격인 도조 이우경은 임진왜란이 끝날 무렵인 1598년 전라남도 순천에서 끌려간 사실만 알려져 있을 뿐 어느 지역 출신인지, 당시 몇 살이었는지도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일본 측 기록에는 이곳에 끌려온 직후 가마를 열고 도자기를 굽기 시작한 것으로 돼 있다. 이우경을 납치해온 오무라번(大村藩)의 지배자 오무라 요시아키(大村喜前)가 1616년 사망한 뒤 그도 숨졌다고 한다. 현재 오무라시의 혼쿄지(本經寺)라는 절에는 오무라 요시아키의 묘가 있는데, 바로 그 앞에 ‘조선인 秀山’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서 있다. 일본인들은 ‘秀山’(일본인들은 ‘슈잔’으로 읽는다)이 바로 이우경이며, 이곳이 그의 무덤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날 도조제에 참석한 하사미정 도자기협회 에조 세이고 회장은 “요업을 하사미정의 기간산업으로 만들어 지역 번영을 가져온 모태가 도조 이우경인 만큼 그의 명복을 마음속으로 빌었다”고 말했다.

    하사미 도자기 축제에서 고려청자 재현 작품을 전시, 판매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강진군 대구면 청자박물관 부근 개인요 관계자들은 하마시정의 도자기박물관을 둘러보기도 했다.

    “하사미정에서 발굴된 400여 년 전의 가마터에서 청자에서 백자로 넘어가는 단계의 청백자 도자기가 보이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전문가들의 이 같은 말을 통해 강진군 관계자들은 이우경이 고려청자의 맥을 이어받은 강진 출신일 수도 있다는 추측을 하기도 한다. ‘순천’이라는 지명이 기록에 나타나지만 당시 순천에서 도자기를 생산했다는 기록이 없는 만큼, 그를 납치한 오무라번 출신 왜군이 일본으로 철수하기 위해 잠시 주둔하던 지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이우경이 강진 출신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없다.

    ‘순천과 연관’ 기록 외에 신상정보 알 수 없어

    황주홍 강진군수는 “불행했던 과거가 있지만 도자기를 통해 강진군과 하사미정 주민이 하나가 되고 있으며, 도조로 추앙받는 이우경은 400년의 역사를 넘어 이제 한일 양국민을 잇는 다리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가지 눈에 거슬리는 점이 있다. 도조비와 하사미정에서 만든 소개책자의 내용이 명백한 역사 날조라는 점이다. 도조비에는 이우경이 이곳 하사미정에 오게 된 경위를 서술한 대목에서 ‘오무라 번주가 귀국 시 동반해 데려왔다’고 돼 있다. 설령 조상들의 행위가 부끄러워 ‘납치’라고 쓸 수 없었다 해도, 무슨 해외여행이라도 가듯 ‘동반’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무래도 심했다. 또 하사미정에서 만든 소개책자에는 ‘귀국 시 번주의 초청에 따라 오무라번에 귀화했다’고 돼 있다. 이 역시 수많은 조선 도공을 조직적으로 납치해 ‘도자기 전쟁’으로까지 불리는 임진왜란의 실태를 왜곡하는 것이다.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우호관계를 고려한다면 이제는 일본인 스스로 잘못된 대목을 바로잡아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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