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
‘매케인 vs 오바마’전은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승부가 될 것이다. 25세의 나이차, 흑백 간 인종대결, 백전노장 대 정치신인의 싸움이라는 현저한 신상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오바마 후보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을 처음부터 강력히 반대해왔다. 반면 매케인 후보는 지도급 정치인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이라크 철군 반대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다.
북한 이란 등 ‘불량국가(rogue state)’ 정책에서도 접근 방식이 다르다. 오바마 후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마주 앉을 수 있으며, 미국의 대북강경정책이 북한 핵실험의 한 원인이라고 여긴다. 반면 매케인 후보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 자체를 부정한다.
5월14일 대선후보를 중도 사퇴한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이 오바마 지지를 선언하면서 ‘오바마 대세론’은 돌이킬 수 없는 사실로 여겨진다. 에드워즈 후보를 영입하기 위해 애썼던 힐러리 클린턴 후보 진영에서는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우연의 일치일 수 있지만 이날 CNN에 출연한 힐러리 후보는 “(딸 첼시가 엄마를 돕는 것은) 내 인생에 가장 믿을 수 없을 만큼 고마운 경험이었다. 엄마로서…”라며 마음을 비운 듯한 태도를 보였다.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의 오바마 지지 선언을 계기로 슈퍼대의원들의 발걸음도 오바마 후보 쪽으로 급속히 쏠리고 있다. 5월6일 노스캐롤라이나 주 프라이머리 압승을 계기로 10일 슈퍼대의원 확보 수에서 처음으로 앞서기 시작(266명 대 264명)한 오바마 후보는 15일 현재 284명 대 273명으로 격차를 점점 더 벌려나가고 있다.
어렵사리 민주당 후보 자격을 얻는다 해도 오바마 후보의 앞날이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일단 5개월간의 경선 과정을 거치면서 백인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는 데 한계를 보였다. 백인 서민층의 표심은 11월 본선에서 후보의 당락을 결정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이는 오바마 후보에게 최대 불안 요소다.
특히 웨스트버지니아 주는 백인 주민이 95%를 차지하고 대선 때마다 당을 바꿔 투표하는 모습을 보여온 대표적인 ‘스윙 스테이트’(경합지역)다. 지난 16년간 이곳에서 패배한 후보가 당선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오하이오, 플로리다, 펜실베이니아 주 등 백인 노동자가 밀집한 주에서도 오바마 후보는 모두 힐러리 후보에게 고배를 마셨다. 2004년 대선에서 승패를 좌우했던 플로리다와 미시간 주에서의 경쟁력도 미지수다.
오바마, 백인 노동자층 지지 이끌어내는 게 관건
한편 오바마 후보는 미국의 정치·경제·사회 전 분야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지지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매케인 후보는 최근 테러조직인 하마스 고위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하마스는 오바마 후보가 당선되길 고대하고 있다”며 오바마 후보를 공격했다. 그의 미들네임이 ‘후세인’이라는 점도 지속적인 공략 포인트 가운데 하나. 이에 대해 오바마 후보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인정하기 전까진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밝히는 등 자신은 기독교인이며 이스라엘을 지지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흑인이라는 점도 오바마 후보에게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다. 여론조사 기관 조그비의 존 조그비 최고경영자는 “오바마 후보가 백인 노동자층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그 이유는 인종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3월4일 일찌감치 공화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매케인 상원의원은 본선 경쟁력 차원에서 장단점이 너무도 분명한 정치인이다.
평생 실천으로 보여준 감동적인 애국심, 지조와 소신, 경륜 등 숱한 장점에도 △당선되면 미국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이 될 72세라는 나이 △이라크 주둔 미군 철수 반대 △핵심 보수층을 등 돌리게 한 무당파적 성향 △독불장군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 직선적 성격 등이 약점으로 지적된다.
매케인, 8년간의 공화당 실정 심판받기 큰 부담
특히 매케인 후보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 민주당 후보와 대결을 펼쳐야 한다. 게다가 8년 집권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의 ‘실정(失政)’을 심판해야 한다는 미국민의 중론도 매케인 후보에게는 큰 부담이다.
그동안 주요 여론조사 기관이 실시한 매케인과 오바마 후보의 가상대결에서는 오바마 후보가 1~11%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보수적 성향의 폭스뉴스가 4월28, 29일 양일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매케인 후보가 46%를 기록, 43%의 지지율에 그친 오바마 후보를 3%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집계됐다.
각 주에서 승리한 후보가 해당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하는 ‘승자독식(Winner take all)’ 방식으로 이뤄지는 미국 대선은 양당의 전통 강세지역을 뺀 나머지 경합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선 때마다 지지하는 당이 거의 변하지 않는 주는 전국 50개 주 가운데 3분의 2 정도다. 전통적으로 매사추세츠에서는 민주당 후보, 텍사스에서는 공화당 후보가 승리하는 식이었다.
승리를 위해선 538석의 선거인단 가운데 270석을 확보해야 한다. 대체로 전통 강세지역에선 민주당이 183∼200석, 공화당이 165∼172석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경합지역은 13∼16곳으로 분류된다. ‘뉴욕타임스’가 경합지역으로 분류한 13개 지역을 기준으로 보면 오바마 후보는 경선 때 8곳에서, 매케인 후보는 6곳에서 1위를 차지했다. 경합지역에 걸려 있는 대의원 수는 166명으로 전체 선거인단의 30%에 이른다.
미국 내는 물론 전 세계적인 관심사는 역시 오바마 후보가 당선돼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대통령이 탄생할지의 여부다. 분위기는 무르익어가는 듯하다. 테러와의 전쟁 직후 90%대에 이르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인기도는 20%로 곤두박질친 지 오래다. 오바마 후보가 선거 테마로 내세우는 ‘변화’와 ‘희망’에 대한 호응도 어느 때보다 높다. ‘세대교체를 통해 다음 장(new chapter)으로 넘어가자’라는 메시지에 공감하는 오바마 후보 지지층은 세대와 인종을 초월하는 강건한 ‘연합(coalition)’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특히 40년간의 분열정치에 단호히 반대하면서 새롭게 시작하자는 메시지가 젊은 층을 결집시키고 있다. 미국 전체 유권자의 21% (4400만명으로 추산)인 18∼29세 젊은이들의 투표율도 2000년 40%→2004년 49%로 상승한 데 이어, 올해는 60% 선까지 올라갈 것으로 기대된다. 브루킹스 연구소 윌리엄 걸스턴 선임연구원은 “젊은 유권자들은 그들이 이전 세대가 겪었던 미국보다 인종적으로 다변화된 사회에서 성장했다”면서 “오바마 후보는 다인종, 다민족 사회를 가장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후보로 자리매김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인종문제의 민감성 때문에 익명을 요구한 한 선거 전문가는 “결국에는 ‘브래들리 효과’가 오바마 후보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보수적인 백인남성사회가 흑인 대통령을 인정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브래들리 효과란 198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 당시 흑인 톰 브래들리 후보가 여론조사에선 앞섰지만 실제 투표에선 패배한 데서 유래한 용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