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롬행 기차는 장대한 비경을 가로지르며 달린다.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를 잇는 북유럽 4개국을 통틀어 자연이 가장 강성한 곳은 노르웨이다. 자연과 벗하는 여행을 계획할 때 북유럽 사람들은 노르웨이를 첫째로 꼽는다. 이들 나라를 여행하는 여정의 맨 마지막으로 노르웨이에 갔는데, 확실히 이 나라는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와는 확연히 달랐다.
이전 세 나라가 마냥 ‘순수하고 착한’ 얼굴이라면 노르웨이는 뭐 하나 아쉬울 것 없다는 듯 도도한 분위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구사하지만 프랑스인만큼이나 영어로 말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유럽 공통화폐인 유로가 통용되지 않는 곳도 많았다. 사실 노르웨이는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니다. 굳이 다른 회원국과 어깨동무하지 않아도 홀로 충분히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노르웨이는 석유가 넘쳐나는 나라다. 석유 매장량이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아부다비 등에 이어 세계 5위다. 석유산업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국내총생산(GDP)의 20%에 이른다. 국민소득도 매우 높아 1인당 국민소득이 5만 달러를 넘는다. 가장 부러운 점은 국가 면적 대비 인구 비율. 우리나라보다 4배 정도 큰 땅을 가졌지만 국민은 겨우 500만명뿐이다. 이중 10분의 1인 50만명이 오슬로에 거주하니 노르웨이 교외는 그야말로 자연다운 자연으로 눈부시다.
오슬로를 둘러볼 때만 해도 노르웨이의 도도한 공기가 거북했지만 플롬(Flam)행 기차 안에서 기분이 완전히 바뀌었다. 하늘을 향해 첨탑처럼 치솟은 고산준봉, 깊고 장대한 계곡,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산악지형, 그리고 노랗고 빨간 지붕을 한 통나무집은 지나치게 잔잔하지도 평온하지도 않아 매력적이었다. 드넓은 국토, 높은 국민소득에 캐나다 스위스 부럽지 않은 자연마저 갖추고 있으니 그토록 도도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평온한 분위기의 프리테임 호텔.
염소는 관광과 더불어 플롬 마을 사람들의 주요 수입원이다. 갈색을 띤 염소치즈는 달콤하고 촉감이 좋아 여러 요리에 들어간다. 토마토샐러드, 구운 연어 요리에는 물론 피자에도 빠지지 않는다. 흑염소 스테이크는 플롬 지역에서 선보이는 특선 메뉴다. 토스카나의 꿩요리, 그리스 산악마을의 토끼요리와 비슷한데, 허브를 많이 써 누린내가 나지 않고 와인으로 오랜 시간 재워 육질이 보드랍다.
플롬에서 시작되는 송네 피요르드는 노르웨이를 통틀어 가장 규모가 큰 피요르드로 꼽힌다.
거대한 협곡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왼쪽, 오른쪽, 근거리, 원거리가 모두 다르다. 한쪽으로는 도대체 어떻게 저곳까지 올라갔을까 싶을 정도로 좁고 높은 절벽에서 풀을 뜯는 염소떼가 보이고, 또 다른 쪽에서는 산맥을 가로질러 장쾌하게 쏟아지는 폭포가 보인다. 저 멀리 보이는 마을에는 물안개가 자욱하다.
스피드보트의 운전대를 잡은 경험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가이드는 물살이 사납지 않은 곳에서 여행자에게 종종 운전대를 잡도록 해주는데, 물길이 넓고 가이드가 옆에서 위험 상황에 대비하고 있으므로 느긋하게 배를 몰아볼 수 있다.
죽기 전 꼭 한 번 타봐야 할 플롬행 기차
플롬 여행이 세계 여행자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되는 이유는 거기까지 닿는 열차길의 낭만 때문이다. 플롬행 기차는 오슬로에서 기차로 5시간 떨어진 뮈르달 역에서 출발한다. 해발 866m인 뮈르달 역에서 플롬으로 가는 산악열차로 갈아타야 하는데, 산악열차가 통과하는 풍경이 아찔하면서도 웅장해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더불어 세계 최고의 기찻길로 꼽힌다. 열차는 해발 700m 높이를 좌우로 휘감듯 돈다.
플롬행 기차가 통과하는 터널의 개수만 해도 20개(그중에는 1342m나 되는 터널도 있다). 총 60km 이상의 길을 해발 600~700m에서 달리므로 차창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면 금방이라도 낭떠러지로 떨어질 듯 아찔하다. 아찔한 기분은 주변으로 펼쳐지는 장쾌한 비경과 더불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내리꽂히듯 쏟아지는 폭포, 협곡 깊숙이 엎드리듯 자리한 산간마을의 풍경은 아찔하고 무서워 마음을 졸이다가도 자신도 모르게 “아, 좋다” 하는 감탄사를 내뱉게 한다.
중간중간 기차를 세워 여행자들로 하여금 주변 땅을 밟게 하는 것은 플롬행 기차가 가진 최고 매력이다. 사람들이 가장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곳은 해발 699m의 쿄스포젠 폭포 앞. 4~5개의 댐을 동시에 열어놓은 듯 물살이 거침없이 쏟아진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그곳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여행자의 얼굴에까지 튀어오른다.
플롬의 풍경을 그린 그림.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서 노르웨이 숲을 고독의 전형으로 그린다. 그러나 그곳에 가보기 전 노르웨이 숲이 그토록 아름답고 눈부실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기약 없이 내리는 눈 속에 파묻힌 노르웨이의 숲은 분명 세상과 이별하고 싶을 만큼 슬프고 공허한 것이었겠지만 여름의 초입, 생명과도 같은 햇빛을 받은 노르웨이의 숲은 새로 산 유리구두처럼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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