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히텐슈타인 ‘행복한 눈물’
이것은 작품의 가치가 창조성이나 미(美)에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의 철학자 단토는 르네상스 시기에는 미술을 대상과 똑같이 옮겨내는 재현이라고 착각했고, 모더니즘 시기에는 미술이 물질적인 것이라 생각해 추상화했으나 팝아트의 등장과 함께 시각적인 차원의 미술이 종말을 고했음을 선언한다. 그에 따르면 미술의 본질은 시각적인 게 아니라 개념적, 철학적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더니즘 이후 컨템포러리 아트의 조건이다. 그렇다면 팝아트의 등장은 기존 미술 패러다임의 종말을 알리고 새로운 미술을 선언한 획기적 사건이다.
앤디 워홀, 리히텐슈타인 같은 팝아트 작가들은 상품이나 만화의 이미지를 실물과 똑같이 재현함으로써 미술의 본질이 지각적인 것이 아님을 주장했다. 과거 미술에서 재현은 문학적인 내용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팝아트는 그 반대다. 그림이 삽화처럼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일상의 이미지를 차용한다. 팝아트의 미학은 추상표현주의자들의 전유물이었던 개성과 아우라를 작품에서 탈각해 무의식적 보편성에 이르려는 고도의 전략이다.
그러므로 리히텐슈타인의 만화 이미지는 실재 만화를 설명하거나 홍보하는 것과 전혀 관계가 없다. 이것은 아무 지시대상이 없는 하나의 이미지일 뿐이다. 만약 그림의 내용 때문에 가치가 매겨진다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보다 원작 만화가 더 비싸야 할 것이다. 팝아트는 조형적으로 쉬운 미술처럼 보이지만, 사실 개념적으로는 어려운 미술이다. 컨템포러리 아트에서 작품의 가치는 조형적인 것이 아니라 철학적 가치이고, ‘수사적인 발언’이 미술의 가치를 결정한다. 그리고 개념이 강할수록 양식은 자유로워져서 다원화된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다원주의 시대일수록 확실한 개념이 요구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