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1272m의 매봉산 능선에 늘어선 풍력발전기.
하지만 물가가 아니어도 더위를 피하는 방법이 있다. 고도를 높이는 것이다. 100m씩 고도가 상승할 때마다 기온은 0.6℃씩 떨어진다. 그러니 해발 1000m의 고원지대는 해발 0m의 바닷가보다 무려 6℃나 낮은 셈이 된다. 게다가 맑고 상쾌한 산바람이 쉼 없이 부는 탓에 때로는 오싹한 한기마저 느껴진다. 해발 1330m의 만항재가 바로 그런 곳이다.
만항재는 함백산(1573m)에서 태백산(1567m)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굵은 등줄기를 가로지르는 고개다. 언제나 서늘한 바람이 불어대는 만항재는 요즘 같은 한여름에도 25℃ 이상 되는 날이 별로 없다. 또한 고갯마루 주변에는 낙엽송 조림지가 조성돼 있고, 낙엽송 숲의 바닥에는 동자꽃 이질풀 산꼬리풀 말나리 마타리 기린초 노루오줌 등의 야생화가 지천으로 깔린 산상화원이 형성돼 있다. 스스로 나고 자란 자생식물이 제철을 맞아 형형색색의 꽃부리를 활짝 펼친 모습은 어떤 인공화원보다도 아름답다. 이 산상화원에는 조붓한 산책로가 나 있어 찬찬히 걸으며 야생화를 감상할 수 있다.
매년 여름철이면 만항재 일대와 옛 삼척탄좌 정암광업소에서는 ‘백두대간 함백사 야생화 축제’(추진위원회 033-592-5455)도 열리는데, 올해는 8월8일부터 17일까지 열흘 동안 개최된다. 축제 기간에는 가족과 함께 캠핑을 즐기며 각종 체험 프로그램에도 참여해볼 수 있다.
만항재에서 함백산 정상까지는 차량 진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만항재 정상에 차를 세워두고 찬찬히 걷는 게 좋다. 길의 거리와 경사가 걷기에 적당한 데다, 울창한 활엽수림 속의 숲길과 시야가 훤한 진입로 양쪽에 도열하듯 늘어선 야생화를 꼼꼼히 관찰할 수 있어서 좋다. 함백산 정상 아래의 산등성이에는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 군락지도 있다. 삶과 죽음을 한 몸에 지고 서 있는 고목의 자태가 불끈불끈 치솟은 백두대간의 산줄기만큼이나 우람하고 당당해 보인다.
함백산 정상은 천혜의 전망대다. 이곳에 올라서면 영월, 정선, 태백 일대의 고산준령들이 파노라마처럼 시야를 가득 채운다. 운이 좋으면 장엄한 해돋이와 화려한 일몰까지 감상할 수 있다. 민족의 영산인 태백산조차도 빤히 건너다보일 정도로 조망이 시원스럽다. 서쪽에는 고한역과 고한읍내, 하이원리조트가 또렷하고 북쪽에는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세워진 매봉산(1303m) 능선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백두대간의 봉우리 중 하나인 매봉산의 북쪽 산등성이에는 대규모의 고랭지 채소밭이 자리잡고 있다. 엄청난 면적의 천연림을 사라지게 만든 고랭지 채소밭이지만, 그 풍광만큼은 퍽 이국적이어서 관광객과 사진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태백시가 해발 1272m의 매봉산 능선에 8기의 풍력발전기를 설치한 뒤로는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1년 열두 달 중 어느 때 찾아가도 이국적인 풍광을 보여주지만,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가는 여름날의 풍광이 가장 아름답다.
매봉산 진입로가 시작되는 피재(삼수령) 아래에는 태백시 황연동 구와우마을이 있다. 해발 850m에 자리한 이 마을에는 태백고원자생식물원이라는 사설 식물원이 있다. 총면적 66만㎡(20만여 평)의 식물원에는 약 16만㎡(5만여 평)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해바라기 꽃밭이 꾸며져 있다. 3.5km의 탐방로를 걸으며 300여 종의 야생화 꽃밭 등 대자연과 아름다운 꽃들을 감상할 수 있다. 숱한 고봉들이 끝없이 중첩한 백두대간의 고원지대에 수만 그루의 해바라기꽃이 만발한 광경은 소피아 로렌이 주연한 영화 ‘해바라기’를 능가하는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해바라기꽃이 만개하는 8월에는 한 달 내내 ‘태백 해바라기축제’가 열린다. 그러나 이곳의 해바라기꽃은 8월15일 전후에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그리고 해바라기꽃이 절정을 넘어설 즈음부터는 우리나라의 특산식물인 벌개미취가 제철을 맞이한다.
고원지대에 울긋불긋 야생화 천지 … 풍력발전기 이국적 풍광 더해
태백고원자연휴양림에서 야영을 즐기는 피서객들.
태백까지 간 김에 황지연못과 구문소도 들러볼 만하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황지연못은 낙동강의 발원지다. 세 개의 연못에서 하루 5000t의 샘물이 솟아나온다. 고원휴양림에서 멀지 않은 구문소는 낙동강의 물길이 통과하는 천연굴(窟)이다. 자연풍광도 독특하거니와 삼엽충 화석이나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남조류 화석으로 이루어진 돌) 같은 자연사 유물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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