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도의 ‘千卒墨點(1000 Ugly Ink Dots)’, 소주 박물관 소장.
“모든 사물을 추상화하는 수학자들은 지식에만 의존해 사물의 형태와 종류를 측정한다. 그러나 사물들이 눈앞에 드러나기를 원하는 우리 예술가들은, 사람들의 표현을 빌리면, 좀더 뚱뚱한 미네르바(pingui Minerva)에 대한 글을 쓰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
여기서 ‘살찐 미네르바’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이론적이기보다는 좀더 실천적인 예술적 노력을 통해 지성을 드러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알베르티의 말은 유화의 역사가 단순한 기술의 역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옳지 않음을 알려준다. 그는 자신이 무얼 그리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화가가 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회화에 대하여’, 책 1권).
회화는 서구에서조차 아직 다 이해되지 못한 장르다. 왜냐하면 서구에서 유화는 재현(representation)의 기술이 아니라 수학처럼 지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오늘날 첨단 테크놀러지를 다루는 예술인 ‘미디어아트’의 한 이론가는 회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가장 조작이 간편한 테크놀러지’라는 정의를 내린다. 회화는 꽃이나 인물, 풍경을 그리는 장르가 아니다. 그것은 오랜 지적 전통의 산물이다. 그것을 실제로 확인하려면 미술에 대해 좀더 많은 것을 알고자 하는 호기심과 노력이 요구된다.
가령 대표적인 회화의 장르인 유화(油畵)에 대해 좀더 알 수 있는 출발점은 어디일까? 근대적인 유화의 시작은 세잔(Cezanne)에서 비롯된다. 동양의 회화는? 석도(石濤)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이런 지점들로부터 ‘회화의 이해’가 출발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