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사남루앙 광장에서 열린 쏭끄란 축제 문화행사에서 여성 무희가 태국의 전통 춤을 추고 있다.
픽업트럭에 탄 사람들이 우리가 탄 밴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든다. 우리도 반갑게 손을 흔든다. 그런데 별안간 짐칸에 서 있던 젊은 여자 한 명이 바가지에 든 물을 우리에게 확 끼얹는다. 퍽! 촤아악~. 물줄기가 흐르는 유리창 너머로 픽업트럭에 탄 사람들이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픽업트럭엔 초롱초롱한 눈에 장난기가 가득한 예닐곱 살의 어린아이도 있다. 조막만한 손에 들린 바가지는 제 머리보다 크다.
어떤 아이는 작은 물통을 든 채 눈을 크게 뜨고 우리에게 물을 뿌릴 타이밍을 찾는다. 우리가 외국인이란 게 사람들의 흥미를 더 자극한 것 같다. 다른 픽업트럭들도 갑자기 우리에게 물을 뿌리고 물총을 쏘아댄다. 좌우로 온통 물세례다. 말로만 듣던 태국 최대의 물축제 ‘쏭끄란’이 실감나기 시작한다.
잠시 후 아유타야에 들어섰다. 수백 대의 픽업트럭 행렬은 더더욱 끝이 없다. 픽업트럭들은 3차선 도로를 가득 메우며 거의 멈춰 서 있다시피 서행한다. 아유타야와 인근 지방의 픽업트럭들이 모두 모인 것 같다. 너나 할 것 없이 커다란 물동이를 실은 픽업트럭 위엔 갖가지 양동이나 바가지를 손에 든 사람들이 꽉 차 있다. 저 좁은 공간에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올라탔을까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빽빽이 차 있는 픽업트럭도 있다. 쏭끄란 축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이곳에 왔다면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열리거나 폭동이라도 난 줄 알았을 것 같다.
남녀노소 서슴없이 물 뿌려
아유타야에서 만난, 픽업트럭을 탄 태국 젊은이들(왼쪽 사진). 어린이들도 쏭끄란 축제에 참여해 물을 뿌린다.
누군가는 하얀 파우더를 물에 개어 유리 창문 위에 손도장을 찍거나 낙서를 하고, 또 누군가는 물을 퍼부어 지저분해진 유리창을 청소해준다. 교차로에는 소방차까지 늘어서서 도로를 메운 사람들 위로 물을 뿌린다. 어디선가 쿵쾅거리며 커다란 음악소리가 흘러나온다. 음악에 맞춰 물세례를 받으며 젊은이들은 맨발로 춤을 춘다. 청바지건 반바지건 전부 흠뻑 젖었지만 모두 더할 나위 없이 신이 나 있다. 즐거운 물축제는 끝날 줄 모른다.
‘쏭끄란’은 태양의 변화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왔다. 쏭끄란이란 말은 ‘움직인다’ 또는‘ 장소를 바꾼다’는 뜻이다. 태양이 황도대(黃道帶)에서 다른 영역으로 위치를 바꾸어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 바로 쏭끄란 기간이다. 쏭끄란 축제는 태국력으로 1월1일인 4월13일부터 15일까지 열린다. 태국에서는 1월1일이 모두 세 번 있다. 우리와 같은 양력, 음력의 새해에다가 4월13일이 하루 더 있는 것이다. 이 축제는 매년 11월 바나나 줄기와 잎으로 만든 크라송을 띄워 보내며 소원을 비는 ‘로이 크라송’ 축제와 더불어 태국의 가장 큰 축제다.
방콕의 카오산 로드에 몰려든 인파.
물을 뿌리는 것의 본래 의미는 성스러운 물을 통해 축복을 비는 것이다. 태국인들은 물이 모든 불운을 씻어줄 것으로 믿는다. 쏭끄란 때 집 안을 청소하는 이유도 이런 믿음에서 비롯됐다. 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고대의 모든 신화가 물을 생명의 근원으로 여기는 것도 같은 이유다. 물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부드럽게 모든 생명체를 감싸 안는다. 물은 모든 나쁜 것을 씻어주며 신의 축복을 전한다.
쏭끄란 축제의 날 이른 아침, 태국인들은 새 옷으로 갈아입고 가족들과 절을 찾아 승려에게 음식을 시주한다. 오후에는 불상과 절의 큰스님을 목욕시켜 드리는 의식을 치른다. 부처상 위로도 물을 붓거나 뿌린다. 불상에 물을 뿌릴 때는 머리보다는 다른 부분에 뿌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존경을 표하기 위해 특별히 꽃을 함께 바치기도 한다.
쏭끄란 축제 동안 사람들은 모두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 기간만큼은 방콕은 텅 빈 도시가 된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사람들은 부모나 조부모의 손에 향이 배어 있는 물을 부어주면서 존경을 표현한다. 옛날에는 자식들이 부모가 목욕하는 것을 도왔고, 새해를 맞아 선물한 새 옷으로 갈아입혔다고 한다. 부모들은 답례로 물 묻은 손으로 자식들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행운과 번영을 빌어준다. 또 ‘딘 소 퐁(Din Saw Phong)’이라는 파우더를 얼굴에 발라주기도 한다. 딘 소 퐁은 향이 배어 있는 물에 개어 피부에 바르는 부드러운 파우더다. 무더운 날씨에 딘 소 퐁은 피부를 상쾌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쏭끄란은 온 가족이 모여 대청소를 하는 날이기도 하다. 낡은 옷들이나 사용하지 않는 집 안의 잡동사니는 모두 버리고, 쓰레기는 말끔히 태워버린다. 새해를 맞아 낡고 쓸모없는 것들은 집 밖으로 치워야 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물건들이 주인에게 불행을 가져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팔리는 물고기나 새를 사와 방생하는 것도 쏭끄란의 또 다른 관습이다.
온 가족 모여 대청소하는 날
방콕의 왕궁 앞 사남루앙 광장에서도 쏭끄란을 축하하는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부모 손을 붙잡고 나온 아이들, 손을 꼭 마주잡은 연인들, 몇몇씩 무리를 지어 다니며 장난치고 떠드는 어린 학생들 등 남녀노소로 사남루앙 광장은 활기차다. 사람들은 피지 않은 연꽃을 물에 담갔다가 자기 머리를 연꽃 끝으로 살살 두드리면서 액운을 씻고, 그 다음엔 불상에 물을 뿌리면서 새해 소망을 기원한다. 불상 앞은 초와 향에 불을 붙이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주위의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도 향과 꽃을 들고 고개를 숙이며 눈을 감은 채 사람들은 무언가를 빌고 있었다.
사남루앙 광장과 함께 배낭여행자들의 거리인 ‘카오산 로드’는 방콕 쏭끄란 축제의 주 행사장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인파 때문에 카오산 로드로 진입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과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는 앞으로 나갈 수 없을 정도다. 이곳에 모여든 이들은 대부분 10대나 20대였다. 젊은 사람들이 밀집한 탓에 축제 분위기는 다른 어떤 곳보다 고조돼 있었다.
이곳에서만큼은 물축제가 아니라 파우더 축제라고 할 만큼 모든 사람들의 얼굴은 하얀 파우더로 칠해져 있다. 다들 손엔 파우더를 물에 갠 플라스틱 통을 하나씩 들고 있다. 손으로 통 안을 젓고 있다가 누구에게든 얼굴에 파우더를 발라버린다. 누군가 옆에서 달려와 내 얼굴에 파우더를 바르고 도망간다. 카메라를 머리 위로 치켜들고 촬영 중이라는 제스처를 해보아도 막무가내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막 카오산에 도착한 외국인 남자들도 보인다. 예외 없이 그들 얼굴에도 파우더가 칠해져 있다.
① 방콕의 왕궁 앞 사남루앙 광장에서 향을 바치며 소원을 비는 사람들. ② 향이 밴 물을 부처상에 뿌리는 것은 쏭끄란 축제의 중요한 의식 중 하나다. ③ 카오산 로드에서 물세례를 받고 즐거워하는 외국인 배낭여행자들.
물세례는 마음의 준비만 되어 있다면 불쾌하지 않다. 오히려 물벼락을 받는 순간은 짜릿짜릿하며 상쾌하기까지 하다. 잊고 지내던 유년의 느낌이 떠오른다. 물세례에 누구도 예외는 없으니 옷이 젖었다고 불평할 이유도 없다.
쏭끄란에 왔다면 종이컵에 담긴 얼음물을 티셔츠 안으로 부어주는 정도는 애교에 가까우니 종종 옆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시도해보라. 누구도 그걸 불평하지는 않겠지만 순간 등을 타고 내리는 차가움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을 테니 한껏 웃음을 터뜨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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