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가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90년대 말, 음악 마니아였던 친구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그 친구는 요즘 TV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SBS ‘일요일이 좋다’의 ‘X맨’이나 KBS의 ‘해피 투게더’ 등에 H.O.T의 멤버였던 강타와 토니 안이 여전히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올해로 데뷔 10주년을 맞은 H.O.T는 아직도 가요계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두 멤버가 같이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 H.O.T의 이름이 언급되고, 요즘 데뷔하는 가수들은 앞다퉈 H.O.T의 팬이었음을 자처한다.
어떻게 H.O.T란 이름은, 그리고 H.O.T의 멤버는, 더 나아가 아이돌 가수들은 가요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것은 H.O.T의 등장 전후로 한국 대중음악계에 일어난 변화와 관련 있다. 물론 H.O.T가 등장하기 전 가요계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은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가요계에 끼친 영향은 트로트와 발라드 일색이었던 당시 대중가요계의 판도를 랩과 댄스 중심으로 바꿨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당시 가요계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매니지먼트와 프로모션 기법을 들고 나왔다는 데에서 그 영향력을 찾을 수 있다.
멤버 구성에서 곡 선정까지 철저한 10대 공략 마케팅 ‘적중’
1980년대까지만 해도 가수는 오직 노래로만 활동했다. 음반 판매, TV 출연, 그리고 공연이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의 전부였고, 수익은 대부분 앨범과 공연에서 발생했다. 그런데 서태지와 아이들은 매 앨범 발표 전에 활동을 중단함으로써 자신들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을 극대화했다. 그리고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새로운 춤과 의상을 선보이면서 노래마다 그 가수를 다르게 꾸며주는 ‘컨셉트’의 개념을 도입했다.
특히 그들은 가수가 단지 음악이 아닌 문화적 코드의 전달자가 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보여주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음악과 춤, 패션을 통해 서구의 최신 대중문화 코드를 한국에 선보임으로써 음악 팬들은 노래뿐만 아니라 그 가수의 컨셉트를 궁금해하기 시작했고, 가수의 모든 것을 따라 했다.
이는 곧 본격적인 아이돌 가수의 등장을 의미했다. ‘X세대’로 불리던 당시의 신세대는 과거와 차원이 다른 소비력을 갖고 있었고, 가수에게 더욱 열광할 준비가 돼 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힙합을 들고 나오면 힙합 패션이 유행했고, 스노보드복을 입고 나오면 스노보드가 유행했다. 전에 없던 이런 현상은 가수가 음반 판매 외에 새로운 수익구조를 확보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톱스타가 CF 한 편에 억대 계약금을 받거나 10, 20대를 타깃으로 한 주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편성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 직후인 1996년 데뷔한 H.O.T, 그리고 H.O.T를 데뷔시킨 SM엔터테인먼트는 이 모든 것을 시스템화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10대 시장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H.O.T는 대중음악계를 10대팬들과 아이돌 스타 시스템 중심으로 재편한 것이다. SM은 H.O.T의 모든 것을 10대의 취향에 맞췄다. 보컬(강타), 리더(문희준), 해외파(토니 안), 댄서(장우혁), 그리고 그룹의 막내(이재원) 등 각각의 캐릭터를 가진 멤버로 구성된 H.O.T는 반항적인 이미지를 내세운 데뷔곡 ‘전사의 후예’에 이어 귀여운 이미지의 후속곡 ‘캔디’를 내놓았다. 주 공략층인 10대 여학생 팬들에게 남성적인 카리스마로 다가선 뒤 친숙한 이미지를 형성해 이상적인 남자친구라는 느낌을 주려 한 것이다.
최근 대만 가수 오건호와 그룹 ‘강타 & 바네스’를 결성한 강타.
철저하게 10대를 타깃으로 그룹을 운영하고, 10대의 소비를 유도했던 SM의 전략은 상업적이라는 거센 비난을 피할 길이 없었다. 특히 H.O.T의 립싱크와 그들의 3집 타이틀곡 ‘열맞춰’가 미국의 랩메틀 그룹 레이지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Killing in the name’을 표절했다는
지난해 1집‘No more Drama’를 발매한 장우혁.
그러나 그들은 단지 음악만으로 판단 내릴 수 있는 그룹이 아니었다. 그것이 비록 기획사의 의도였다고 해도, 10대의 의식과 문화적 코드를 반영한 H.O.T의 컨셉트와 음악은 10대가 즐길 수 있는 거대한 문화로 자리 잡았다. 10대들은 H.O.T와 그 뒤에 나온 아이돌 가수들을 ‘즐기는 법’을 스스로 발견했다. 10대에게 H.O.T를 비롯한 아이돌 가수들의 팬덤은 곧 강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그들만의 커뮤니티였다. 인터넷 사용에 능한 팬들은 H.O.T를 대상으로 한 팬픽이나 각종 웹진, 동영상들을 만들어냈다. 그들에게 H.O.T는 단지 한 팀의 가수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자체나 다름없었다.
가수뿐만 아니라 사업 분야로도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토니 안.
10년의 세월을 H.O.T와 함께한 팬들에게 H.O.T의 멤버들이란 인기 가수라기보다는 동고동락한 가족에 가깝다. 그들은 10년 전 고등학교 2학년이던 강타가 어떻게 작곡을 배워 작곡가와 프로듀서로 거듭났는지를 봐왔고, ‘캔디’를 부르며 뛰어다니던 토니 안이 정형돈, 조혜련 등이 소속된 매니지먼트 회사와 직원만 1000여 명에 달하는 교복업체의 사장이 된 10년의 세월을 지켜봐 왔다.
기획사의 지나친 상업성·립싱크·표절시비 등은 여론 도마에
지금의 H.O.T 멤버 팬들이, 혹은 신화나 god의 팬들이 그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지 춤과 노래 때문만이 아니다. 팬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그룹은 10대 시절을 함께한 존재이고, 그 그룹과 관련된 추억들은 소비력이 왕성한 20대 직장인이 되어서까지 그룹에 충실한 지지를 보내도록 만든다. 그리고 아이돌 가수들은 이런 팬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다른 가수보다 쉽게 활동영역을 넓힐 수 있었다. 토니 안처럼 사업을 할 수도 있고, 다른 멤버들처럼 연기나 MC의 영역에 도전할 수도 있다. 정말 형편없지만 않다면 팬들의 고정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시장을 형성하고, 대중적인 지지까지 더해 톱스타가 될 수도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음악뿐만 아니라 가수의 새로운 프로모션 기법을 제시한 선구자이기도 했다.
H.O.T를 비롯한 아이돌 가수들이 붐을 이루던 1990년대 후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음악적 역량이 부족하고 기획사의 컨셉트에 의해 만들어진 가수인 만큼 수명이 길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상 아이돌 가수가 만든 시장은 음악시장과 별개의 것이었고 이 시장은 음반시장이 붕괴된 현재에도 건재하다. 요즘의 10대가 동방신기와 SS501에 보여주는 열광적 지지를 봐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SM에서 내놓은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는 음악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들은 팬들이 좋아할 만한 TV 프로그램에 끊임없이 출연하고, 데뷔 전부터 인터넷 미니홈피 등을 통해 일상을 공개해 팬들에게 자신의 캐릭터를 밀착시켰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형성된 그들의 팬덤은 자신들만의 문화를 형성하며 아이돌 가수의 모든 것을 소비한다. 동방신기는 정규 앨범 한 장을 발매하는 동안 여러 장의 싱글과 다양한 리패키지 앨범을 내놓았으며, 이 앨범들은 모두 최소 몇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런 활동 방식은 이제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표준이 됐다. 아이돌 가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연예인들은 자신의 캐릭터를 먼저 만들고, 그 뒤에 다방면으로 수익활동을 시도한다. 아이돌 성향의 스타들뿐만 아니라 현영 같은 연예인들도 오락 프로그램에서 독특한 캐릭터를 만든 뒤 드라마 출연과 디지털 싱글 취입 등으로 수익을 거두고 있다.
H.O.T를 ‘기획사의 꼭두각시’라고 부르던 친구는 이런 상황을 슬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H.O.T 이후 대중은 더 이상 쿨하게 음악만 듣고 가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제 음악이란, 그리고 엔터테인먼트란 대중의 모든 문화적 욕구를 만족시키고, 더 나아가 팬 스스로 스타의 역사를 만들 여지까지 줘야 하는 복잡하고 ‘Hot’한 산업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시작에는 H.O.T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