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해밀턴, ‘오늘날의 가정을 그렇게 다르게, 그렇게 매혹적으로 만드는 건 무엇인가?’, 1956.
모던의 종언
미국의 미학자 아서 단토는 ‘예술의 종언’에서 이 해묵은 헤겔의 주제를 다시 끄집어낸다. 그에게 죽음을 선고받은 것은 모더니즘 예술이다. 20세기에 일어난 1차 모더니즘 운동이 전쟁으로 맥이 끊긴 뒤 50~60년대에 유럽, 특히 미국에서 새로이 모더니즘 운동이 일어났는데, 바로 그 2차 모더니즘이 생명을 다했다는 것이다. 단토는 60년대 초에 추상표현주의가 퇴조하면서 ‘모더니즘’의 서사도 종말을 맞았다고 선언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모더니즘 비평은 더 이상 예술의 현실을 설명하는 적합한 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린버그에게 모더니즘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자기 지시성(self-referentiality), 즉 회화가 자연에 대한 탐구(재현)를 포기하고 제 자신의 가능성(형과 색의 조형적 잠재성)을 전개하는 데 있었다. 회화는 3차원 환영의 공간을 포기하고 자신이 2차원의 ‘평면’임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평면성(flatness)의 원리다. 가령 물감을 뿌린 잭슨 폴록의 캔버스를 생각해보라. 거기에는 3차원 공간의 환영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물감이 떨어진 화판의 평면이 있을 뿐이다.
앤디 워홀, ‘황금의 마릴린 먼로’, 1962.
실재의 귀환
사실 60년대 이후의 예술은 그린버그의 형식주의 미학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추상에 밀려 쫓겨났던 실재가 복제 사진, 만화 이미지, 대량 소비상품, 소비사회의 쓰레기 등의 형태로 대거 예술 속으로 복귀했기 때문이다. 현대예술의 대명사로 통하던 추상의 시대도 저물어 있었다. 할 포스터가 ‘실재의 귀환’이라 부른 이 현상 앞에, 재현을 포기하고 회화의 매체를 재료로 한 형식의 혁신에 모더니티의 본질이 있다고 본 그린버그의 형식주의 비평은 설 자리를 잃고 만다.
팝아트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대량으로 복제되는 사진들, 혹은 대량으로 생산되는 사물들의 계열적(serial) 이미지다. 오늘날 지각의 세계는 대량복제된 사진의 이미지로 구축되고, 사물의 세계는 대량복제된 스테레오타입들로 이루어져 있다. 모더니즘이 ‘차이’의 생산(production)에 주력했다면, 포스트모던(혹은 컨템포러리)의 예술은 동일자의 무한 증식, 즉 시리얼의 대량복제(reproduction)로 이루어지는 현대사회를 증언한다.
앤디 워홀, ‘토요일의 교통사고’, 1964.
예술의 정신화
뒤샹은 변기를, 워홀은 세제 상자를 미술관에 들여놓았다. 일상의 사물이 졸지에 예술이 된 것이다. 단토는 이를 어디에선가 ‘평범한 것의 변용’이라 불렀다. 변기나 상자를 예술로 만드는 것은 그 작품(?)이 가진 물리적 ‘속성’이 아니라 거기에 부가되는 해석적 ‘이론’이다. 뒤샹과 워홀이 창조한 것은 물리적 객체가 아니라 그 범상하기 짝이 없는 것을 졸지에 예술로 둔갑시키는 이론이다. 이에 예술은 이제 물질성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브릴로 박스’와 더불어 시작된 이 경향은 ‘개념예술’에 이르러 정점에 달한다. 개념예술가들은 예술의 본질은 작품의 물질성이 아니라 작품의 컨셉트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들은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하는 대신 잡지에 작품을 기고했다. 여기서 작품은 더 이상 물질적 하부구조에 의존하기를 그친다. 작품은 아무 무게도 없는 관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예술은 이미 물질의 무거운 속박을 벗고 물질 없는 철학으로 상승했다는 것이다.
앤디 워홀, ‘캠벨 스프 깡통’, 1961~62.
그린버그의 모더니즘
사실 그린버그의 모더니즘 개념은 협소하기 그지없다. 3차원의 환영을 피하고 2차원의 평면을 지향한다는 그 원리에 따르면 ‘모던’은 오로지 칸딘스키, 몬드리안, 파울 클레, 잭슨 폴록과 같은 작가들로 축소된다. 거기에는 모더니즘의 또 다른 흐름이었던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실제로 그린버그는 다다이즘을 진지하지 않은 장난으로, 그리고 초현실주의를 전(前)반성적인 현상, 즉 모더니즘 이전의 구태로 간주했다.
그런 그가 앤디 워홀을 평가할 수는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그렇다면 그린버그의 비평으로 모더니즘 전체의 기획을 설명할 수 있을까? 비록 자기 지시성,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평면성과 표현수단의 자립화가 모더니즘의 특징이긴 하지만, 그것이 모더니즘을 추동하는 힘은 아니다. 예를 들어 다다이즘은 모던인가, 아닌가?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협소한 모더니즘 개념에 따르면 뒤샹은 예술사에서 설 자리가 없어진다.
에드 러샤, ‘여덟 개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거대한 트레이드마크’, 1962.
연속이냐 단절이냐
단토의 논리는, 모던과 포스트모던(혹은 컨템포러리)을 연속으로 보느냐, 단절로 보느냐를 둘러싼 지루한 논쟁에서, 양자를 대립시키는 후자의 입장에 선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 포스트모던은 모던에 내재된 동력의 발현이자 그 연장이지만, 단토에게 포스트모던은 모던과 단절을 이루는 현상으로 상정된다. 그는 구체적으로 이 현상이 추상표현주의가 몰락하고 팝아트가 등장한 1962년 이후 수십 년간에 걸쳐 이루어졌다고 본다. 단토는 그린버그와 같은 비평의 대가가 알아보지 못했던 워홀의 중요성을 자신이 일찍이 알아봤다는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낀 모양이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익사하는 여인’, 1963.
사실 워홀이 브릴로 박스를 가지고 한 일은, 일찍이 뒤샹이 변기나 그밖의 오브제를 갖고 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적인 것과 평범한 것의 경계는 워홀이 등장하기 적어도 50년 전에 뒤샹에 의해 이미 무너졌다. 오브제를 이용한 뒤샹의 반(反)미학의 전략은 과연 모더니즘의 강령인가? 아니면 포스트모더니즘의 강령인가? 과연 뒤샹의 것과 같은 다다이스트의 반미학의 전략을 모더니즘에서 떼어내어 반(反)모더니즘의 제스처로 해석해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그린버그의 한계는 역설적으로 그를 비판하는 단토의 한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