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많은 양보를 하려 한다”고 한 노무현 대통령의 ‘몽골 발언’이 몰고 올 파장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5월9일 노 대통령은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언제, 어디서, 무슨 내용을 얘기해도 좋으니 만나서 얘기하자고 수십 번 말했다”고 밝혔다. DJ 방북과 관련해선 “김대중 전 대통령이 길을 잘 열어주면 나도 슬그머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의 기존 입장과 현격하게 달라진 이번 발언은 당장 국내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한나라당 등 보수진영은 즉각 “선거와 남북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정략적 발언”이라고 반발했고, 일각에선 “한-미 동맹 이완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했다. 노 대통령과 정부는 그동안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선 “북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전제 아래 추진하겠다”고 선을 그어왔고, DJ 방북에 대해서는 정부 특사가 아닌 ‘민간인 자격’임을 누차 강조했었다.
NT ‘6자회담과 평화협정 체결 병행’ 보도
노 대통령 발언의 배경에 대해서는 해석이 몇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미국의 대북(對北) 강경책 고수 때문에 6자회담의 재개 전망이 갈수록 불투명해지는 것에 대한 조급함의 발로라는 것. “미국에게 한계가 있어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해보려는 것”이라고 한 이종석 통일부 장관의 언급(5월12일, MBC 라디오)이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다른 한편에선 ‘선거와 임기 후반기를 겨냥한 국내정치용’이라는 풀이도 있다. 정부 외곽 연구기관에 몸담고 있는 한 전문가의 말이다.
“그동안 정부가 한-미 간 주요 현안을 다루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지지 기반을 많이 상실했다는 평가가 끊이질 않았다. 전략적 유연성 개념이나 평택 미군기지 등에서 미국 측 입장을 대폭 수용한 것이 그런 예들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는 당분간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국내적으로 필요하다고 계산하지 않았을까? 한-미 동맹의 큰 틀을 구성하는 기본구도는 이미 합의를 이뤘다고 판단하는 만큼, 이런 정도의 갈등구도로는 동맹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나름의 자신감도 가졌을 수 있다.”
그는 “정부는 미국이 올 11월 중간선거 전까지는 대북정책의 전환을 꾀하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점도 감안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분간 북-미 경색국면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북핵 문제의 당사자임을 자처해온 정부가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을 것이라는 풀이다.
주목되는 것은 ‘몽골 발언’에 대한 미국의 반응. 하지만 이와 관련해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미국 쪽에서 나온 목소리는 5월19일 현재까지 없다. “북한에서 보기에 (한미 연합훈련이) 불안한가 보다”며, 한미 군사대비 태세까지 협상 의제가 될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 노 대통령 발언을 감안할 때 미국 측 심기가 결코 편치 않을 것이라는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6자회담과 평화협정 체결 협상을 병행하는 새로운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뉴욕타임스 5월19일자 보도가 나왔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를 승인한다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전술 변화의 신호가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미 행정부 내에서 ‘내부 토론’이 벌어졌고, 그 결과 지금까지 고수해온 대북정책의 효용성에 의구심을 갖게 됐다는 점. 기사는 토론에 참여한 관리의 말을 인용해 “많은 행정부 사람들이 북핵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것은 너무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히기도 했다.
부시 2기 행정부의 대북 자세는 그동안 한두 차례 큰 변화를 겪어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크게 보아 첫 시기는 2기 출범 초부터 지난해 9월까지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크리스토퍼 힐 동아태 차관보 등이 상황을 주도했던 이 시기에 미국은 대북 협상에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자세를 견지했고, 그 결과 지난해 9월 베이징 6자회담에서 공동성명을 도출할 수 있었다는 것.
그러나 북한 위폐사건이 대두되면서 미국의 대북 접근은 강경일변도로 급격하게 선회했다. 특히 올해 1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 이후 미국은 대북 금융제재를 강화했고, 탈북자의 망명 신청을 수용했으며, 제이 레프코위츠 대북인권특사가 개성공단을 비판하는 발언을 연거푸 쏟아내는 등 더욱 경직된 자세를 보여왔다.
美 정보공동체도 갈등 중?
정부의 한 관계자는 ‘뉴욕타임스’ 기사는 미 행정부 내에서 이 같은 경직된 대북 자세에 대한 내부 논란이 커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협정 협상안이 라이스 국무장관 측에서 제기됐다는 점에서, 토론 결과에 따라선 라이스-힐의 영향력 복원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미국 사정에 정통한 한 전문가가 설명하는 미 정보공동체(intelligence community) 내부의 최근 동향도 ‘뉴욕타임스’ 기사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에 따르면, 올해 들어 미국의 잇따른 대북 공세는 존 네그로폰테 국가정보국장(DNI) 계열의 인물들이 주도했다고 한다. 동서 냉전이 끝나가던 무렵 구소련과 동유럽 체제전환 작업에 참여했던 라이스-힐-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 라인과는 달리, 이들 네그로폰테 쪽 인사들은 주로 남미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비밀공작 활동에 참여해온 경력을 갖고 있다.
“9일 노 대통령의 ‘몽골 발언’ 직후부터 미국 내 ‘한반도 이너서클’에서 이상 징후들이 나타났다. 네그로폰테 쪽이 벌여온 일련의 대북 공세에 대해 ‘이런 식으로 해서 미국이 얻을 수 있는 게 뭐냐’는 근본적인 회의가 커진 것이다. 이런 논란의 배경에는 이란 핵개발이라는 최대 변수 외에도 압록강에 발전소 2기를 짓기로 한 북-중 간 최근 합의, 6월 상하이에서 열리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담’ 등이 작용했다.”
북-중 공동으로 압록강에 발전소가 건설되면 북한으로 유입되는 모든 에너지원을 통제하려는 미국의 구상은 상당 부분 타격을 받게 된다. 그렇다고 미국이 중국을 움직여 이 같은 움직임을 막을 입장도 아니다. 미국으로선 또 6월 ‘SCO 정상회담’에서 중-러 정상이 만나 북한 문제를 놓고 어떤 논의를 할지도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네그로폰테 쪽을 궁지로 몬 요인은 4월 말 탈북자의 망명 신청을 처음으로 수용한 일이었다고 한다. 이 결정의 주체는 로스앤젤레스 지방법원이지만 배후에 네그로폰테 쪽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것. 하지만 당사자가 한국 주민등록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 일은 외교적으로 미국을, 미국 내에선 네그로폰테 측을 궁지로 몰아넣는 소재가 됐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이에 강력 반발했고, 미국은 아직껏 이렇다 할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 많은 양보를 할 수 있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 내 한반도 이너서클에 논쟁의 불씨를 피우는 촉진제가 됐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몽골 발언’은 향후 남북관계 및 한미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결과를 예단하기엔 변수가 너무 많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을 종합해볼 때 이번 ‘몽골 발언’이 미국 내부의 복잡한 속사정까지 두루 살핀 후에 나온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반작용은 북한보다 미국 쪽에서 먼저 나오고 있다. 북한문제라는 다차원 방정식은 그래서 풀기가 더욱 어렵다.
정부의 기존 입장과 현격하게 달라진 이번 발언은 당장 국내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한나라당 등 보수진영은 즉각 “선거와 남북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정략적 발언”이라고 반발했고, 일각에선 “한-미 동맹 이완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했다. 노 대통령과 정부는 그동안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선 “북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전제 아래 추진하겠다”고 선을 그어왔고, DJ 방북에 대해서는 정부 특사가 아닌 ‘민간인 자격’임을 누차 강조했었다.
NT ‘6자회담과 평화협정 체결 병행’ 보도
노 대통령 발언의 배경에 대해서는 해석이 몇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미국의 대북(對北) 강경책 고수 때문에 6자회담의 재개 전망이 갈수록 불투명해지는 것에 대한 조급함의 발로라는 것. “미국에게 한계가 있어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해보려는 것”이라고 한 이종석 통일부 장관의 언급(5월12일, MBC 라디오)이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다른 한편에선 ‘선거와 임기 후반기를 겨냥한 국내정치용’이라는 풀이도 있다. 정부 외곽 연구기관에 몸담고 있는 한 전문가의 말이다.
“그동안 정부가 한-미 간 주요 현안을 다루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지지 기반을 많이 상실했다는 평가가 끊이질 않았다. 전략적 유연성 개념이나 평택 미군기지 등에서 미국 측 입장을 대폭 수용한 것이 그런 예들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는 당분간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국내적으로 필요하다고 계산하지 않았을까? 한-미 동맹의 큰 틀을 구성하는 기본구도는 이미 합의를 이뤘다고 판단하는 만큼, 이런 정도의 갈등구도로는 동맹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나름의 자신감도 가졌을 수 있다.”
그는 “정부는 미국이 올 11월 중간선거 전까지는 대북정책의 전환을 꾀하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점도 감안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분간 북-미 경색국면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북핵 문제의 당사자임을 자처해온 정부가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을 것이라는 풀이다.
주목되는 것은 ‘몽골 발언’에 대한 미국의 반응. 하지만 이와 관련해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미국 쪽에서 나온 목소리는 5월19일 현재까지 없다. “북한에서 보기에 (한미 연합훈련이) 불안한가 보다”며, 한미 군사대비 태세까지 협상 의제가 될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 노 대통령 발언을 감안할 때 미국 측 심기가 결코 편치 않을 것이라는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6자회담과 평화협정 체결 협상을 병행하는 새로운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뉴욕타임스 5월19일자 보도가 나왔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를 승인한다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전술 변화의 신호가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미 행정부 내에서 ‘내부 토론’이 벌어졌고, 그 결과 지금까지 고수해온 대북정책의 효용성에 의구심을 갖게 됐다는 점. 기사는 토론에 참여한 관리의 말을 인용해 “많은 행정부 사람들이 북핵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것은 너무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히기도 했다.
부시 2기 행정부의 대북 자세는 그동안 한두 차례 큰 변화를 겪어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크게 보아 첫 시기는 2기 출범 초부터 지난해 9월까지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크리스토퍼 힐 동아태 차관보 등이 상황을 주도했던 이 시기에 미국은 대북 협상에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자세를 견지했고, 그 결과 지난해 9월 베이징 6자회담에서 공동성명을 도출할 수 있었다는 것.
그러나 북한 위폐사건이 대두되면서 미국의 대북 접근은 강경일변도로 급격하게 선회했다. 특히 올해 1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 이후 미국은 대북 금융제재를 강화했고, 탈북자의 망명 신청을 수용했으며, 제이 레프코위츠 대북인권특사가 개성공단을 비판하는 발언을 연거푸 쏟아내는 등 더욱 경직된 자세를 보여왔다.
美 정보공동체도 갈등 중?
정부의 한 관계자는 ‘뉴욕타임스’ 기사는 미 행정부 내에서 이 같은 경직된 대북 자세에 대한 내부 논란이 커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협정 협상안이 라이스 국무장관 측에서 제기됐다는 점에서, 토론 결과에 따라선 라이스-힐의 영향력 복원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미국 사정에 정통한 한 전문가가 설명하는 미 정보공동체(intelligence community) 내부의 최근 동향도 ‘뉴욕타임스’ 기사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에 따르면, 올해 들어 미국의 잇따른 대북 공세는 존 네그로폰테 국가정보국장(DNI) 계열의 인물들이 주도했다고 한다. 동서 냉전이 끝나가던 무렵 구소련과 동유럽 체제전환 작업에 참여했던 라이스-힐-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 라인과는 달리, 이들 네그로폰테 쪽 인사들은 주로 남미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비밀공작 활동에 참여해온 경력을 갖고 있다.
“9일 노 대통령의 ‘몽골 발언’ 직후부터 미국 내 ‘한반도 이너서클’에서 이상 징후들이 나타났다. 네그로폰테 쪽이 벌여온 일련의 대북 공세에 대해 ‘이런 식으로 해서 미국이 얻을 수 있는 게 뭐냐’는 근본적인 회의가 커진 것이다. 이런 논란의 배경에는 이란 핵개발이라는 최대 변수 외에도 압록강에 발전소 2기를 짓기로 한 북-중 간 최근 합의, 6월 상하이에서 열리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담’ 등이 작용했다.”
북-중 공동으로 압록강에 발전소가 건설되면 북한으로 유입되는 모든 에너지원을 통제하려는 미국의 구상은 상당 부분 타격을 받게 된다. 그렇다고 미국이 중국을 움직여 이 같은 움직임을 막을 입장도 아니다. 미국으로선 또 6월 ‘SCO 정상회담’에서 중-러 정상이 만나 북한 문제를 놓고 어떤 논의를 할지도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네그로폰테 쪽을 궁지로 몬 요인은 4월 말 탈북자의 망명 신청을 처음으로 수용한 일이었다고 한다. 이 결정의 주체는 로스앤젤레스 지방법원이지만 배후에 네그로폰테 쪽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것. 하지만 당사자가 한국 주민등록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 일은 외교적으로 미국을, 미국 내에선 네그로폰테 측을 궁지로 몰아넣는 소재가 됐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이에 강력 반발했고, 미국은 아직껏 이렇다 할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 많은 양보를 할 수 있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 내 한반도 이너서클에 논쟁의 불씨를 피우는 촉진제가 됐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몽골 발언’은 향후 남북관계 및 한미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결과를 예단하기엔 변수가 너무 많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을 종합해볼 때 이번 ‘몽골 발언’이 미국 내부의 복잡한 속사정까지 두루 살핀 후에 나온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반작용은 북한보다 미국 쪽에서 먼저 나오고 있다. 북한문제라는 다차원 방정식은 그래서 풀기가 더욱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