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동아’는 이번 호부터 새 연재 ‘네 안의 창의력을 깨워라’를 시작합니다. 논술 고득점의 비결은 천편일률적인 답안이 아닌, 자신만의 독창적인 생각을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현행 논술교육은 ‘논리적인 서술’에 집중할 뿐 학생들의 창의력을 북돋워주는 부분은 많이 미흡한 게 사실입니다. 필자 두 분이 격주로 연재하는 ‘네 안의 창의력을 깨워라’는 고등학생들이 ‘나만의 생각’을 키우는 데 좋은 자극제가 되어줄 것입니다. 이번 주 필자인 케빈 리(41) 씨는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 현재 로스앤젤레스에서 ‘미주교육신문’을 발행하고 있는 교육전문가입니다. <편집자>
어떤 사물이든 내용과 형식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때 내용과 형식은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내용과 형식이 너무 다르면 균형이 깨집니다. 예를 들어, 대학생(=내용)이 초등학생의 옷(=형식)을 입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영 어울리지 않을 것입니다. 거꾸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관점을 글쓰기 훈련에 적용해 본다면, 좋은 글은 곧 좋은 내용과 좋은 형식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용과 형식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이를테면 옷을 그럴듯하게 차려입은(=형식) 사장님은(=내용) 그렇지 않은 사장님보다 더 폼 나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형식이 내용에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용과 형식의 관계에서 좀더 궁극적인 것은 바로 내용입니다. 이를 철학적으로 ‘내용은 형식을 규정한다’라고 표현합니다. 한마디로 내용이 훌륭해야 겉으로 드러나는 것(=형식)도 그럴듯하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잘 차려입어도(=형식) 사기꾼(=내용)은 역시 사기꾼입니다. 훌륭한 위인(=내용)은 유별나게 입지 않아도(=형식) 사람들이 존경하게 마련입니다. 이처럼 형식도 중요하지만 내용이 훨씬 궁극적입니다.
이와 같은 논리를 바탕으로, 좋은 글쓰기 훈련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람들은 각자 생각(=내용)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형식)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글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내용이 형식을 규정한다고 할 때, 말이나 글의 형식을 궁극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생각입니다. 즉, 말과 글을 잘하기 위해서는 우선 생각이 튼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미사여구를 동원하고 보기 좋은 형식으로 표현해도 내용이 부실하다면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세련된 세일즈맨의 말에 사람들이 오히려 경계심을 갖는 것이 그 예입니다. 표현은 좀 떨어져도 내용이 탁월하다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습니다. 스티븐 호킹은 표현이 절대적으로 제약된 상태에서도 놀라운 논리로 사람들을 감동시킵니다.
결국 말과 글을 잘하기 위해서는 생각 훈련(Critical Thinking)을 잘해야 합니다. 말과 글을 표현하는 기술만 익혀서는 빈 수레 소리만 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 생각 훈련을 충실히 한 상태에서 말과 글을 표현하는 기술을 익힌다면 이상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최근 한국뿐 아니라 미국의 한인 커뮤니티에서도 글쓰기로 고민하는 학생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오래전에 논술고사가 추가됐고, 미국에서는 대학입학 시험인 SAT I에 작문시험이 추가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그릇된 편향이 존재합니다. 글쓰기 기술 또는 글의 형식을 연습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류 말입니다.
그 결과에 대한 위험성은 서울대 정운찬 총장이 잘 지적했다고 봅니다. 정 총장은 서울대에 제출된 논술 답안들이 하나같이 천편일률적 구조와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서울대 논술 시험을 치를 계획이라고 말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형식 훈련에만 주력함으로써 내용 확보가 되지 않은 논술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반박입니다.
또 한 가지 예로 기자를 들 수 있습니다. 언론사에 처음 들어간 사람이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은 기사체 글쓰기(=형식)입니다. 하지만 이는 몇 개월만 배우면 익숙해집니다. 이후 훌륭한 기자와 평범한 기자를 가르는 기준은 그 기자가 가진 세상에 대한 안목 내지는 비판적 관점(=내용)입니다.
좋은 글을 만드는 궁극적인 요소는 바로 생각 훈련입니다. 여기에는 토론만큼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평소에 꾸준히 토론을 해나가면서 적절한 글 형식 훈련을 덧붙인다면 누구나 좋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