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 칼럼니스트 김서령 씨는 축구의 원시성에서 ‘붉은 악녀 열풍’의 답을 찾는다. “여성들은 화장품, 패션 등 남성보다 관심사의 범위가 훨씬 넓어요. 스포츠에 관심을 가질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은 셈이죠. 그런데 축구는 극도의 동질감, 일체감을 맛보게 해주면서도 원시적이고 단순합니다. 붉은 옷 입고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되는 거죠.”
(‘주간동아’ 542호·송홍근·33쪽)
[#장면2] 4년 전 한국을 연상케 하는 것이 또 있다. ‘대~한민국’ 열풍이 한반도를 뒤덮었던 것처럼 독일에서도 검정, 빨강, 황색의 독일 국기 색을 중심으로 새로운 성격의 민족감정이 끓어오르고 있는 것. 독일 국기가 요즘처럼 도처에서 눈에 띈 적은 없었다. 건물 창문, 자동차, 심지어 유모차에서도 국기가 휘날리며 거리를 누비는 젊은이들의 모자와 옷, 그리고 어린이들의 뺨에 국기를 새기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됐다.(‘주간동아’ 541호·안윤기·28쪽)
2002년 한일월드컵 때 보여준 한국의 응원 열기가 다시금 온 나라를 뜨겁게 만들고 있다. 토고와의 경기가 열렸던 6월13일 서울시청 앞 광장은 붉은 물결로 뒤덮였다. 한국인이 보여준 자발적인 거리응원 문화는 이제 한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로도 ‘수출’되고 있다. 독일 현지의 풍경을 묘사한 # 장면 2가 대표적인 예다.
2. 우리는 왜 월드컵에 올인하는가.
한국인은 왜 월드컵에 몰두하는가. 먼저 민족주의의 영향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국민 가슴속에 무의식적으로 잠재해왔던 약소국의 피해의식이 한국 선수들의 선전을 계기로 표출됐다. 2002 한일월드컵 때 폴란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축구 강국을 차례로 물리치면서 ‘하면 된다’는 국민적 의식이 확산됐고, 이것이 이번에도 질서 있고 열광적인 응원으로 표출됐다고 본다.
둘째, 정정당당한 승부와 그것이 주는 카타르시스 효과다. 셋째, 국내 정치의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이 국민을 월드컵에 몰두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 넷째, 매스컴의 대대적인 홍보를 들 수 있다. 다섯째, 기업들의 적극적인 월드컵 마케팅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3. 월드컵 응원, 그 이면의 위험성
월드컵 응원은 이제 한국의 고유하고 열정적인 거리문화, 나아가 축제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경계해야 할 점도 있다. 첫째, 거리축제가 폐쇄적 민족주의로 흐를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 최근 한 외국 방송은 한국의 응원을 종교적 황홀경에 빠진 신도들의 집단적 광기에 비유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전체주의적 현상이라는 혹평의 목소리도 들린다. 방송과 거대 자본이 부추기는 과도한 월드컵 열기 및 애국심 강조는 자칫 다양성과 다원성을 중시하는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둘째, 월드컵 열기가 우리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들을 덮어버리는 측면은 없는지 따져볼 일이다. 우리에겐 지금 한미 FTA 협상, 평택 미군기지 이전, 북한 미사일 등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이런 일들이 월드컵에 가려 국민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시민단체가 ‘안티월드컵 운동’을 추진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에서다.
◆ 위의 글을 바탕으로 다음 글에 대해 지지 또는 반대 입장을 밝히시오.
지금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반(反)월드컵’ 운동이 일고 있는 것으로 안다. 전체주의를 연상케 한다는 비판인 듯싶으나, 우리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둔다고 해서 다양하고 불균질한 시민의 감성이 갑자기 동원된 국민처럼 이성을 잃고 허수아비가 되는 일은 불가능하다. 섹스(sex), 스포츠(sports), 스크린(screen) 등 이른바 ‘3S 정책’이 통했던 저 아르헨티나에서도 그랬고, 1980년대의 전두환 시대에도 그랬듯 국민의 이성을 ‘통제’했던 독재 권력은 바로 그 ‘3S 정책’으로 키워진 다양한 문화적 욕망과 자유로운 삶에 대한 꿈에 의해 물러가지 않았던가. 과거가 그러할진대 오늘의 ‘시민 감성’ 수준에서 월드컵이 이성을 마비시키는 작용을 한다는 비판은 비현실적이다. (‘주간동아’ 541호·정윤수·18쪽)
◆ 월드컵 응원 패션에서 두드러지는 것이 태극기 패션이다. 태극기를 이용한 복장이 등장하고, 태극기를 잘라 응원복을 만든 사람들도 있다. 국기를 응원 패션으로 활용하는 것은 세계 젊은이들의 공통된 현상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고, 신성한 국기를 모욕하는 행위라며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시오.
(‘주간동아’ 542호·송홍근·33쪽)
[#장면2] 4년 전 한국을 연상케 하는 것이 또 있다. ‘대~한민국’ 열풍이 한반도를 뒤덮었던 것처럼 독일에서도 검정, 빨강, 황색의 독일 국기 색을 중심으로 새로운 성격의 민족감정이 끓어오르고 있는 것. 독일 국기가 요즘처럼 도처에서 눈에 띈 적은 없었다. 건물 창문, 자동차, 심지어 유모차에서도 국기가 휘날리며 거리를 누비는 젊은이들의 모자와 옷, 그리고 어린이들의 뺨에 국기를 새기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됐다.(‘주간동아’ 541호·안윤기·28쪽)
2002년 한일월드컵 때 보여준 한국의 응원 열기가 다시금 온 나라를 뜨겁게 만들고 있다. 토고와의 경기가 열렸던 6월13일 서울시청 앞 광장은 붉은 물결로 뒤덮였다. 한국인이 보여준 자발적인 거리응원 문화는 이제 한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로도 ‘수출’되고 있다. 독일 현지의 풍경을 묘사한 # 장면 2가 대표적인 예다.
2. 우리는 왜 월드컵에 올인하는가.
한국인은 왜 월드컵에 몰두하는가. 먼저 민족주의의 영향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국민 가슴속에 무의식적으로 잠재해왔던 약소국의 피해의식이 한국 선수들의 선전을 계기로 표출됐다. 2002 한일월드컵 때 폴란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축구 강국을 차례로 물리치면서 ‘하면 된다’는 국민적 의식이 확산됐고, 이것이 이번에도 질서 있고 열광적인 응원으로 표출됐다고 본다.
둘째, 정정당당한 승부와 그것이 주는 카타르시스 효과다. 셋째, 국내 정치의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이 국민을 월드컵에 몰두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 넷째, 매스컴의 대대적인 홍보를 들 수 있다. 다섯째, 기업들의 적극적인 월드컵 마케팅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3. 월드컵 응원, 그 이면의 위험성
월드컵 응원은 이제 한국의 고유하고 열정적인 거리문화, 나아가 축제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경계해야 할 점도 있다. 첫째, 거리축제가 폐쇄적 민족주의로 흐를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 최근 한 외국 방송은 한국의 응원을 종교적 황홀경에 빠진 신도들의 집단적 광기에 비유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전체주의적 현상이라는 혹평의 목소리도 들린다. 방송과 거대 자본이 부추기는 과도한 월드컵 열기 및 애국심 강조는 자칫 다양성과 다원성을 중시하는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둘째, 월드컵 열기가 우리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들을 덮어버리는 측면은 없는지 따져볼 일이다. 우리에겐 지금 한미 FTA 협상, 평택 미군기지 이전, 북한 미사일 등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이런 일들이 월드컵에 가려 국민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시민단체가 ‘안티월드컵 운동’을 추진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에서다.
◆ 위의 글을 바탕으로 다음 글에 대해 지지 또는 반대 입장을 밝히시오.
지금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반(反)월드컵’ 운동이 일고 있는 것으로 안다. 전체주의를 연상케 한다는 비판인 듯싶으나, 우리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둔다고 해서 다양하고 불균질한 시민의 감성이 갑자기 동원된 국민처럼 이성을 잃고 허수아비가 되는 일은 불가능하다. 섹스(sex), 스포츠(sports), 스크린(screen) 등 이른바 ‘3S 정책’이 통했던 저 아르헨티나에서도 그랬고, 1980년대의 전두환 시대에도 그랬듯 국민의 이성을 ‘통제’했던 독재 권력은 바로 그 ‘3S 정책’으로 키워진 다양한 문화적 욕망과 자유로운 삶에 대한 꿈에 의해 물러가지 않았던가. 과거가 그러할진대 오늘의 ‘시민 감성’ 수준에서 월드컵이 이성을 마비시키는 작용을 한다는 비판은 비현실적이다. (‘주간동아’ 541호·정윤수·18쪽)
◆ 월드컵 응원 패션에서 두드러지는 것이 태극기 패션이다. 태극기를 이용한 복장이 등장하고, 태극기를 잘라 응원복을 만든 사람들도 있다. 국기를 응원 패션으로 활용하는 것은 세계 젊은이들의 공통된 현상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고, 신성한 국기를 모욕하는 행위라며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