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축구팬 이은혜(26·회사원) 씨가 꼽은 2006독일월드컵 베스트 11은 ‘꽃미남 군단’이다(상단 도판 참조). 그는 선수들의 사생활은 물론이고 플레이 스타일, 패션 감각까지 줄줄 꿴다. 그런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잉글랜드의 캡틴 데이비드 베컴.
“베컴의 매력은 수줍음에 있어요. 그가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면 겸손할 뿐더러 부끄러움까지 느껴져요.”
거리를 가득 메운 붉은 물결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었다. 태극기를 접어 만든 탱크톱을 입고 빨간 뿔이 달린 머리띠를 하거나 붉은 스카프를 두른 ‘붉은 악녀’는 승패와 무관하게 ‘참을 수 없는 축제의 열기’를 고조시켰다.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라는 오래된 우스갯소리는 한국적 마초이즘이 만들어낸 허상이었던 셈이다. 축구를 ‘저급한 마초의 스포츠’ 정도로 취급했던 여성들이 월드컵에 열광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축구 얘기하면 싫다고요? 누가 그래요!
그렇다면 축구의 ‘ㅊ’자만 나와도 고개를 젓는다던 여성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를 열광시킨 건 그네들의 순수한 표정이었어요. 욕심 없고 깨끗한 얼굴과 살아 움직이는 몸짓에 목 말라 있었던 셈이죠.”(시인 최영미)
남자들은 축구를 ‘보지만’, 여자들은 축구를 ‘읽는다’. 여자에게 축구는 드라마다. 그 안에서 스토리와 인생을 찾아낸다.
“잉글랜드와 스웨덴전의 경기에서 데이비드 베컴이 그라운드에 입장하기 직전에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장면 보셨어요? 그 아이가 베컴의 트레이드마크인 닭벼슬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긴장하고 있던 베컴이 그 모습을 보며 웃는 모습이 어찌나 인간적이던지. 그 사람의 사는 방식이 보이더라고요.”(베스트 11의 맨 위칸에 베컴을 적어넣은 앞서의 이은혜 씨)
여성들은 대체로 선수 개개인의 사람됨이나 삶에 높은 관심을 가진다. 박묘경(26·회사원) 씨는 사이버세상에서 선수들의 ‘인생’을 스크랩한다. 팬클럽 사이트와 다음과 네이버의 카페엔 일기장, 어린 시절 사진 등 선수들의 축구장 밖 삶을 미뤄볼 수 있는 자료가 넘쳐난다.
“박지성 선수를 좋아해요. 결코 엘리트가 아니었던 그의 삶의 방식이 무척이나 아름답기 때문이죠. 외모도 맘에 들어요. 어느 고등학교 뒷골목에나 반드시 한두 명은 있을 법한 얼굴이기는 하지만….”(웃음)
한국 여성들이 축구의 매력에 눈뜬 것은 2002 한일월드컵. 그전까지 축구는 한국에서 남성의 스포츠였다. 학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쳤다. 소년들이 운동장 가운데서 공을 찰 때, 소녀들은 한쪽에서 피구를 해야 했다. 여성이 축구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가부장적 사회가 여성을 축구에서 소외시킨 셈이다.
“종료 휘슬 울리면 선수들 몸매 감상에 더 바빠요”
“여자월드컵에서 잘하는 나라들은 선진국이거나 양성평등이 잘 이뤄진 나라더군요. 서포터들의 성비를 보면 선진국일수록 여성팬이 많아요. 우리도 축구에서만큼은 선진국 문턱에 오른 셈이죠.”(다음에서 박지성 팬카페를 운영하는 김지연 씨·29)
남자 축구선수가 한국에서도 여성들의 성적 팬터지 대상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축구선수들에게서 순수한 섹시함을 느꼈다거나,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감을 맛보았다는 여성도 적지 않다. 날마다 2시간 넘게 월드컵 관련 기사와 사진을 검색하는 우수연(32·자영업) 씨의 말이다.
“나는 종료 휘슬이 울리면 더 바빠져요. 선수들이 알몸인지 아니면 쫄티를 입었는지, 입었다면 무슨 색인지, 근육은 얼마나 튼실한지 그런 걸 봐야죠. 젊은 선수들의 탄탄한 허벅지가 출렁거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정말로 숨이 막혀요. 남자들이 마리아 샤라포바 같은 선수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거예요.”
“축구 룰도 모르면서 무턱대고 응원만 한다”면서 여성 축구팬을 폄훼하는 남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여성들의 생각은 다르다. 주요 경기를 빼놓지 않고 본 송지희(27·회사원) 씨는“오프사이드 규칙을 이해한 지 꼭 20일이 됐는데, 룰을 모른다고 축구를 즐기지 못하는 건 아니다”며 웃는다.
“오프사이드를 알고 모르는 게 뭐가 중요하죠? 유럽리그의 내로라하는 선수들 이름은 남편보다 제가 더 많이 알아요.”
물론 여성들에게 불어온 축구 열풍을 일종의 패션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연세대 황상민 교수(심리학)는 “여성들이 거리응원에 대거 몰려나온 것은 축구에 대한 열광이라기보다는 거리축제에 대한 환호라고 봐야 할 듯싶다”고 풀이한다.
칼럼니스트 김서령 씨는 축구의 원시성에서 ‘붉은 악녀 열풍’의 답을 찾는다.
“여성들은 화장품, 패션 등 남성보다 관심사의 범위가 훨씬 넓어요. 스포츠에 관심을 가질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은 셈이죠. 그런데 축구는 극도의 동질감, 일체감을 맛보게 해주면서도 원시적이고 단순해요. 붉은 옷 입고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한국 대표팀의 경기가 열린 날마다 전국 방방곡곡은 붉은 물결로 뒤덮였다. 축구광인 소설가 김별아 씨는 “축구는 인류가 멸족하지 않는 한 가장 먼 훗날까지 질기게 살아남을 스포츠”라고 말한다. 붉은 악녀의 함성도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이어질 것이다.
“베컴의 매력은 수줍음에 있어요. 그가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면 겸손할 뿐더러 부끄러움까지 느껴져요.”
거리를 가득 메운 붉은 물결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었다. 태극기를 접어 만든 탱크톱을 입고 빨간 뿔이 달린 머리띠를 하거나 붉은 스카프를 두른 ‘붉은 악녀’는 승패와 무관하게 ‘참을 수 없는 축제의 열기’를 고조시켰다.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라는 오래된 우스갯소리는 한국적 마초이즘이 만들어낸 허상이었던 셈이다. 축구를 ‘저급한 마초의 스포츠’ 정도로 취급했던 여성들이 월드컵에 열광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축구 얘기하면 싫다고요? 누가 그래요!
그렇다면 축구의 ‘ㅊ’자만 나와도 고개를 젓는다던 여성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를 열광시킨 건 그네들의 순수한 표정이었어요. 욕심 없고 깨끗한 얼굴과 살아 움직이는 몸짓에 목 말라 있었던 셈이죠.”(시인 최영미)
남자들은 축구를 ‘보지만’, 여자들은 축구를 ‘읽는다’. 여자에게 축구는 드라마다. 그 안에서 스토리와 인생을 찾아낸다.
“잉글랜드와 스웨덴전의 경기에서 데이비드 베컴이 그라운드에 입장하기 직전에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장면 보셨어요? 그 아이가 베컴의 트레이드마크인 닭벼슬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긴장하고 있던 베컴이 그 모습을 보며 웃는 모습이 어찌나 인간적이던지. 그 사람의 사는 방식이 보이더라고요.”(베스트 11의 맨 위칸에 베컴을 적어넣은 앞서의 이은혜 씨)
여성들은 대체로 선수 개개인의 사람됨이나 삶에 높은 관심을 가진다. 박묘경(26·회사원) 씨는 사이버세상에서 선수들의 ‘인생’을 스크랩한다. 팬클럽 사이트와 다음과 네이버의 카페엔 일기장, 어린 시절 사진 등 선수들의 축구장 밖 삶을 미뤄볼 수 있는 자료가 넘쳐난다.
“박지성 선수를 좋아해요. 결코 엘리트가 아니었던 그의 삶의 방식이 무척이나 아름답기 때문이죠. 외모도 맘에 들어요. 어느 고등학교 뒷골목에나 반드시 한두 명은 있을 법한 얼굴이기는 하지만….”(웃음)
한국 여성들이 축구의 매력에 눈뜬 것은 2002 한일월드컵. 그전까지 축구는 한국에서 남성의 스포츠였다. 학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쳤다. 소년들이 운동장 가운데서 공을 찰 때, 소녀들은 한쪽에서 피구를 해야 했다. 여성이 축구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가부장적 사회가 여성을 축구에서 소외시킨 셈이다.
“종료 휘슬 울리면 선수들 몸매 감상에 더 바빠요”
“여자월드컵에서 잘하는 나라들은 선진국이거나 양성평등이 잘 이뤄진 나라더군요. 서포터들의 성비를 보면 선진국일수록 여성팬이 많아요. 우리도 축구에서만큼은 선진국 문턱에 오른 셈이죠.”(다음에서 박지성 팬카페를 운영하는 김지연 씨·29)
남자 축구선수가 한국에서도 여성들의 성적 팬터지 대상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축구선수들에게서 순수한 섹시함을 느꼈다거나,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감을 맛보았다는 여성도 적지 않다. 날마다 2시간 넘게 월드컵 관련 기사와 사진을 검색하는 우수연(32·자영업) 씨의 말이다.
“나는 종료 휘슬이 울리면 더 바빠져요. 선수들이 알몸인지 아니면 쫄티를 입었는지, 입었다면 무슨 색인지, 근육은 얼마나 튼실한지 그런 걸 봐야죠. 젊은 선수들의 탄탄한 허벅지가 출렁거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정말로 숨이 막혀요. 남자들이 마리아 샤라포바 같은 선수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거예요.”
“축구 룰도 모르면서 무턱대고 응원만 한다”면서 여성 축구팬을 폄훼하는 남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여성들의 생각은 다르다. 주요 경기를 빼놓지 않고 본 송지희(27·회사원) 씨는“오프사이드 규칙을 이해한 지 꼭 20일이 됐는데, 룰을 모른다고 축구를 즐기지 못하는 건 아니다”며 웃는다.
“오프사이드를 알고 모르는 게 뭐가 중요하죠? 유럽리그의 내로라하는 선수들 이름은 남편보다 제가 더 많이 알아요.”
물론 여성들에게 불어온 축구 열풍을 일종의 패션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연세대 황상민 교수(심리학)는 “여성들이 거리응원에 대거 몰려나온 것은 축구에 대한 열광이라기보다는 거리축제에 대한 환호라고 봐야 할 듯싶다”고 풀이한다.
칼럼니스트 김서령 씨는 축구의 원시성에서 ‘붉은 악녀 열풍’의 답을 찾는다.
“여성들은 화장품, 패션 등 남성보다 관심사의 범위가 훨씬 넓어요. 스포츠에 관심을 가질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은 셈이죠. 그런데 축구는 극도의 동질감, 일체감을 맛보게 해주면서도 원시적이고 단순해요. 붉은 옷 입고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한국 대표팀의 경기가 열린 날마다 전국 방방곡곡은 붉은 물결로 뒤덮였다. 축구광인 소설가 김별아 씨는 “축구는 인류가 멸족하지 않는 한 가장 먼 훗날까지 질기게 살아남을 스포츠”라고 말한다. 붉은 악녀의 함성도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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