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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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은 팬터지 있는 그대로 즐겨라”

애국심이니 민족주의니 따질 필요 있나 … 고민 잊고 한 달 동안 푹 빠져도 좋다

  • 이기호 소설가

    입력2006-06-28 14: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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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컵은 팬터지 있는 그대로 즐겨라”
    2002년 한일월드컵이 끝난 직후의 일이다. 우연히 강원도 시골에 사는 친구 집에 들렀다가 그만 그 요상한 축구팀을 만나게 되었다. 면소재지에 거주하는 30, 40대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창단된 그 축구팀(팀명이 ‘일레븐 포테이토’였다) 때문에 마을 전체가 뭐랄까, 보이지 않는 작은 소요에 휩싸여 있었다. 요는, 청년들이 수박밭과 감자밭을 돌보지 않고 하루 종일 면사무소 뒤편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여 있다는 것, 그 때문에 가뜩이나 일손이 부족한 판에 아주머니들만 죽어나고 있다는 것. 때때로 축구가 끝난 뒤 괜스레 멀쩡한 수박을 걷어차는 청년들도 생겨났다는 것, 그로 인해 한밤중 부부간에 큰소리가 오고 가는 집들이 많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조용하던 시골 마을에 이 소리 저 소리, 사람 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문제는 역시 감자밭이었다. 당장 출하를 위해 서울에서 트럭이 왔는데도 계속 공만 쫓아 이리저리 운동장을 뛰어다니고 있는 남편들이란….

    축구에 빠진 시골 축구팀 … 아내들 성화도 못 들은 척

    덕분에 월드컵 직후 축구팀 창단을 처음으로 제안한 친구는 마을 아주머니들에게 천하에 둘도 없는 역적으로 몰렸다. 뭐, 이런 것이었다. 감자의 원수, 수박의 원수, 출하의 원수. 물론 친구도 사태가 그렇게까지 진전되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저 이른 아침, 밭으로 나가기 전에 모여 한 시간 정도 볼을 차자. 비록 시골에 살지만 우리도 무언가 취미 같은 것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월드컵 봐라, 변방에서 놀던 한국 축구가 세계 중심권으로 도약했지 않는가. 우리도 변방에 살지만 축구를 하면 무언가 그런 비슷한 느낌이 들지 않겠는가. 강남에 사나, 강원도에 사나 어차피 축구하는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시작은 그렇게 소박했으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도시의 조기축구회와 달리 농촌의 그것은 시작과 끝이 애매모호했다. 출근시간에 쫓겨 서둘러 종료 휘슬을 부는 도시의 그것과는 달리, ‘일레븐 포테이토’들의 경기는 한번 시작하면 도무지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전반 종료 후, 누군가 커다란 주전자에 막걸리를 받아오면 갈증난 목을 막걸리로 연거푸 축이고, 또 그러다 보면 폭락한 감자 시세가 떠오르고, 그래서 더 열심히 후반전에 임하고(식전부터 마신 막걸리로 인해 후반전은 대개 플레이가 과격하게 변한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랫마을 청년들이 이기기라도 하면 다시 막걸리를 연거푸 들이켠 다음 한 게임 더!를 외치는 것이 기본 순서가 된 것이었다. 그러니 감자는 출하시기를 놓친 채 계속 땅속에서 축구공만큼 커져갈 수밖에….



    친구는 걱정했지만, 대부분의 일레븐 포테이토 멤버들은 전혀 그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친구집에 머무는 동안 몇 번 운동장에 나가서 목격한 그들의 얼굴은 매번 진지했고 활기 넘쳐 보였다. 때론 청춘의 표정이었고, 때론 순박한 아이의 얼굴이었다. 거기에는 폭락하는 감자 시세도 들어 있지 않았고, 빗장이 풀린 중국 농산물의 대대적인 맹공도 비껴나가 있었다. 수년째 묶여 있는 그린벨트도, 비료값의 상승도, 추곡수매 물량의 축소도 거기에는 없었다. 아무런 걱정 없이 운동장을 뛰어다니던 우리네 열두 살의 얼굴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따뜻했고, 또 조금 서글퍼지기도 했다. 아하, 그래서 이 사람들이 그렇게 열심히 축구를 했던 거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그 순간만큼은 평등해지니까.

    많은 우연들이 존재하지만, 그 우연이 언젠가 내 발끝에 걸릴 수도 있을 거라는 믿음. 월드컵에서 일어난 이변처럼 언젠가 내 생에도 그런 이변이 올 수 있다는 기대. 그들은 그것을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다.

    한국에 사는 성인 남자들 대부분은 자라면서 한 번쯤은 축구공을 차본 경험을 갖고 있다. 그게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그 운동이 야구나 테니스보다 더 재미있고 흥미진진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골프나 수영보다, 스쿼시나 승마보다 더 스릴 넘치는 운동이기 때문도 아니었다. 이유는 단 하나. 기회비용이 가장 저렴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평등한 기회를 주었던 운동이 바로 축구였다. 그 평등한 기회에 몸을 실었다가 남들보다 뛰어나면 선수의 길을 걸었고, 평범하면 다른 길을 걸었다. 기회가 평등했기에 별다른 불만도 없었고, 취미처럼 평생 즐길 수 있는 여유도 갖게 되었다. 어쨌든 우리 모두 한 번쯤 해보았으니까. 그러니 머리가 복잡해질 이유도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팬터지가 태어난다. 해보고, 경험한 목록이니까. 팬터지는 경험하지 않은 곳에선 결코 발현되지 않는다. 우리가 현실에서 보고 느끼고 동경한 지점, 바로 그 너머에 팬터지가 존재한다.

    또 월드컵이 돌아왔다. 사실 우리가 월드컵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기회란 인생에서 열 번 남짓에 지나지 않는다. 그 얼마 되지 않는 기회를 즐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오고 있다.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민족주의나 과도한 애국심을 걱정하지도 않는다. 그건 그저 생에 열 번 정도 찾아오는 팬터지일 뿐이다. 어느 땐 축구 이상이고, 또 어느 땐 축구 이하의 반응일 뿐이다. 그러니 그리 크게 걱정하지 말자. 월드컵으로 고양된 민족주의로 인해 전쟁이 일어날 만큼 멍청한 사람들은 아니다(그러니 제발 과도하게 사회문화학적으로 분석 좀 하지 말자, 이 헛똑똑이들아!).

    월드컵 후유증은 잠시 … 금세 일상으로 복귀

    축구에서 승리하고 패배한 기억은 길어봤자 한 달 남짓이다.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리얼한 생활로 돌아갈 것이다(월드컵이 끝나고 늘 하는 K리그 걱정도 하지 말자. 그건 정말이지 철저한 영업의 문제다. 관중이 들지 않아도 망하지 않는 프로 구단들의 기형적인 영업 방침에 있는 것이지 국민들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그저 4년에 한 달꼴로, 우리에게 주어졌던 그 평등한 기회의 순간들을 다시 한번 만끽하면 된다. 그게 팬터지를 대하는 우리의 정직한 자세다(여자들도 마찬가지다. 심각하게 이것저것 룰을 익히지 않고 볼 수 있는 운동경기란 아마도 축구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그게 팬터지의 기본형식이다).

    그 팬터지 안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자본이나 군사력, 이념이나 석유 문제가 끼어들지 못한다(월드컵의 매력은 미국이 늘 그저 그런 성적을 거둔다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그 모든 것을 한 달 정도 잊게 만들어준다. 텍사스산 중질유 가격 때문에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자, 한 달 동안은 그냥 다 잊고 좀 쉬렴. 기름이 없어도 선수들은 잘도 달린단다, 너도 그랬듯이…. 월드컵은 그렇게 속삭이고 있다.

    2002년보다 생이 더 고단해진 우리는 2006년에 더 열정적으로 월드컵을 맞았다. 생이 고단해질수록 사람들은 팬터지를 찾는 법이다. 우리 삶이 고요하다면 FIFA가 만들어주는 작은 축제에 누가 그리 열광할 것인가. 그러니 바라건대, 2010년엔 우리가 조금 덜 열정적이길 기원한다. 월드컵이야 팬터지이지만, 삶은 결코 그렇지 않기에. 삶이란, 일레븐 포테이토 멤버들의 아내 얼굴 같은 것이기에.

    나는 그저 고요해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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