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신당은 열린우리당 탈당파, 중도통합민주당 탈당파, 손학규 전 지사 등 정치권과 시민사회 진영이 함께 참여해 만들었다. 의석수 85석으로 출범과 동시에 원내 제2당이 됐다. 하지만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잔류파가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이라 범여권 대통합은 미완성 단계다.
실질적인 범여권 대통합이 이뤄지려면 의석수 58석의 열린우리당과 9석의 민주당이 모두 합류해야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 열린우리당 해체를 요구하는 민주당과 당대당 통합이 아니면 신당에 합류하지 않겠다는 열린우리당의 간극이 쉽게 좁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주장한 신당 제조기술자는 맞는 말”
결국 통합신당은 먼저 돛을 올렸다. 12월 대선까지 5개월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라 두 당의 합류를 마냥 기다릴 수 없었던 것이다. ‘선장’은 시민운동 진영의 오충일(67) 목사가 맡았다.
과연 통합신당은 범여권 대통합을 이룰 수 있을까. 통합신당은 최근 열린우리당과 본격적인 통합 논의에 들어갔다. 하지만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계파별 이해관계에 따라 신당 합류 방법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의 정강정책 계승을 주장하는 친노 세력의 입장이 최대 변수다.
민주당은 대선 출마를 선언한 조순형 의원을 내세워 독자노선을 걸을 태세다. 통합신당 지분의 절반을 차지한 시민운동 진영의 실체를 둘러싼 논란도 향후 범여권 대통합 과정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범여권 대통합을 위한 향후 통합신당의 선택은 무엇일까. 국회 본청에 새로 입주한 통합신당 대표 사무실에서 오충일 대표를 만났다. 오 대표의 바쁜 일정 때문에 인터뷰는 7일과 8일 이틀에 걸쳐 이뤄졌다. 오 대표는 먼저 통합신당에 시민사회 진영이 참여하게 된 배경부터 설명했다.
“김대중 정부 때는 남북 교류와 협력 등 통일로 가는 길을 많이 앞당겼다.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경제협력은 거의 천지개벽 같은 일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친일반민족 행위와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에 의한 각종 조작사건 같은 과거 청산 작업이 이뤄졌다. 10년도 안 되는 기간에 이처럼 좋은 일을 했는데도 양극화와 실업난 탓에 민심을 많이 잃었다. 그래도 이건 괜찮다. 정부가 정신 차려 민생문제 해결에 올인하면 된다.
문제는 이 틈을 이용해 한나라당, 보수언론, 보수종교단체들이 이상한 좌우논리로 과거 민주화 추진 세력을 친북좌파와 반미주의자로 내몰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청산이 지속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대선에서 패하면 그런 역사의 흐름이 정지되거나 뒤로 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래서 먼저 시민사회 진영에서 창당 제안을 했다. 진짜 새로운 정치, 시민사회 세력이 함께하는 시민정치시대를 열기 위해서 말이다.”
오 대표가 신당 창당에 관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 평민당과 민주당이 통합할 때 ‘15인 협상대표’ 중 한 명이었고, 91년에는 신민주연합당과 민주당 합당 과정에 참여했다. 또 2000년 새천년민주당 창당에 관여한 데 이어,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때 시민정치추진모임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이런 이유로 최근 한나라당은 논평을 통해 오 대표를 ‘신당제조 기술자’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한 오 대표의 반응은 무덤덤하다.
“사실이니, 정치인들의 발언을 폄하하거나 비판할 생각은 없다. 할 일을 제대로 하면서 인정받고 싶지, 남을 공격해 내가 올라가거나 차별화되고 싶지 않다.”
오 대표는 정당 창당 과정에 관여할 때마다 정치입문 제의를 받았지만, 매번 거절했다고 한다. 종교인으로서의 임무가 더 크다가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 대표를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8월5일 서울 올림픽 역도경기장에서 대통합민주신당이 창당됐다. 오충일 신임 당대표(오른쪽에서 세 번째)와 당 관계자들이 만세 삼창을 하고 있다.
“큰 정치라는 차원에서 보면 분명히 입문했다. 하지만 당권보다는 역사 진보에 관심이 더 많다. 새로운 정치와 정당을 위해 정치권에 들어왔다. 젊은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틀을 만들고 싶다. 종교인에게 정치나 사회운동은 그렇게 큰 부분이 아니다. 정치권 한복판에서 수행하는 것이 진짜 수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끝까지 권력이나 자리에 대한 소유욕에 물들고 싶지 않다. 상처 입은 마음이나 갈라진 마음을 하나로 꿰매는 것도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 정치에 대해 잘 모를 것 같은데, 당 대표의 자리가 부담스럽지 않은가.
“교회 목사나 절 주지, 성당 주임신부가 되면 단 몇백 명의 교인이라도 그들을 목회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치적 사고가 필요하다. 지금 정치인들의 방식대로 하면 아마 교인들이 다 떨어져 나가고 없을 것이다. 목회 또는 목양이라는 것은 고도의 정치 행위다. 종교인들은 이런 훈련이 잘 돼 있다. 구약이나 신약성경을 보면, 수가 한참 높은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요즘 정치인들을 보면 이념적, 실천적인 것은 좋은데 오히려 정치적 사고가 부족한 듯하다. 목사니까 정치를 모르겠구나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나갈 줄 알고, 비울 줄 알고, 또 버릴 줄 안다. 정치란 그런 것이 필요하다.”
- 일각에서는 정치인들이 얼굴 마담으로 내세웠다는 비판도 있는데….
“그렇게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일 것이다. 사람은 자기 눈높이만큼만 본다. 실체를 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 통합신당에 참여한 김한길 전 의원의 경우 올 상반기에만 네 번이나 당적을 옮겼다. 정치권의 이합집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겉으로 보면 이합집산이 맞다. 하지만 내용으로 보면 아닌 경우도 있다. 김한길 전 의원은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탈당과 통합을 반복했던 것이다. 모두 같은 이유였다. 권력이나 이해관계 때문에 왔다갔다했다면 치사한 이합집산이지만, 결코 그것이 아니었다. 김 전 의원이 최근 나를 찾아왔는데, 자신은 아무 자리도 필요없다고 하더라. 다만 자기가 데리고 있던 당직자 20명을 좀 맡아달라고 했다. 항간에 그 사람에 대해 말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남에게 들은 말로 평가할 수는 없다.”
- 지난 4년간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대통령은 큰 정치인이어야 하는데, 노 대통령은 정치인이 아닌 것 같다. 정치적이지 않은 정치인이다. 예를 들어 군대 갈 때 ‘군에서 3년 썩으러 간다’고 하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러 간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대통령이라면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러 간다’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3년 썩으러 간다’고 한다. 바로 그런 데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하도 욕을 먹기에 참여정부의 국정지표를 들여다봤는데, 정말 잘 정해놨다. 예를 들어 한강 건너기라는 국정지표가 있다고 해보자. 한강을 건너면 좋은데, 건너지 못하고 중간에 빠지니 문제다. 이는 안 좋은 것이다. 또 대단히 민주적인 것 같으면서도 민주적이지 않은 점이 있다. 정부 정책은 그 의도가 순수하더라도 이루지 못하면 그에 따른 엄청난 책임을 수반한다.”
- 열린우리당 친노그룹은 참여정부의 정신과 정책을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견해는?
“어느 정부나 계승해야 할 것이 있다. 노무현 정부도 나름의 공이 있다. 하지만 실패한 정책이나 이 시점에서 적합하지 않은 것은 빼야 한다. 당도 마찬가지다. 대통합신당이 됐으면, 아닌 것은 빨리 버리거나 바꿔야 한다. 정치권이나 정당에 목적을 두어서는 안 되며, 늘 국민의 소리와 고통에 견주어 아닌 것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 열린우리당과는 당대당 통합이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인데, 이대로 가는 것인가.
“통합은 계속 진행되고 있고 잘 되리라 전망한다. 다만 형태가 당대당이 될지, 흡수통합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열린우리당 내부의 의견이 정리된 것 같지 않다. 크게 통합신당과 열린우리당이 대통합에 합류한다는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 민주당 신국환 의원은 통합신당의 목표가 정권 재창출이냐 정권 교체냐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금 시점에서 국민이 원하는 것은 새로운 정권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것 아닌가.”
- 민주당을 합류시킬 방안이 있는가.
“사실 현재의 민주당은 외형만 남았을 뿐 내용은 다 빠져나온 상태다. 박상천 대표나 이인제, 신국환 의원 등은 나중에 들어간 사람들 아닌가. 이들은 상당히 보수적인 성향의 사람들이다. 겉으로는 반쪽이 남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끝까지 독자노선을 고집한다면 방법이 없는 것 아닌가.”
- 통합신당에 참여한 시민사회 진영의 실체에 대한 논란이 있다. 기존 정치권에 몸담았던 인물이 적지 않다고 하던데….
“순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잡것이 일부 섞였다. 시민사회운동가 가운데 정치권에 잠깐 들어갔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나온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10년, 20년씩 시민사회운동을 했던 사람들이다. 긴 세월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고생했던 점을 감안해 시민사회 진영에서 다시 받아들인 것이다.”
- 통합신당은 대선을 앞두고 급조된 당 아닌가. 대선이 끝난 후 다시 흩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시기적으로 대선을 앞두고 창당됐으니 대선정당이라 지적해도 할 말이 없다. 향후는 잘 모르겠다. 신당은 정치인들만의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 진영이 새 정치를 위해 함께 만든 것인 만큼 대선과는 무관하게 지속돼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후보의 지지율이 높다. 통합신당의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와의 대결에서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한나라당 이명박, 박근혜 두 후보에게는 한계가 있다. 반면 범여권에는 후보가 많다. 내용 면에서 누가 나서도 한나라당 후보보다 낫다. 또 대통합 과정에서 지금은 후보별로 갈라져 있는 지지자들이 한 사람에게 모일 것이다. 그럼 상황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올해 대선은 한나라당에 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하지만 통합신당이 분열하거나 과거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으면 힘들 것이다.”
- 통합신당의 후보로 어떤 후보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가.
“4·19와 5·18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역사의식의 정통성과 자주성을 갖고 있는 후보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또 기업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고 멸사봉공(滅私奉公)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 최근 범여권 후보들이 손학규 전 지사에 대한 공격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손 전 지사가 범여권 후보로 정통성이 있다고 보는가.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문제다. 손 전 지사는 YS로부터 정치를 해보겠느냐는 권유를 받고 정치에 입문했다. 그런데 YS가 3당 합당하면서 한나라당 쪽으로 가게 된 것이다. 똑똑한 사람이라 그곳에서 국회의원도 되고, 장관도 하고, 내친김에 도지사까지 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손 전 지사의 진정성을 나는 안다. ‘짝퉁’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경쟁 후보로서 상대방의 약점을 밟고 올라가려는 행위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