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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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안전 Don’t worry”

美 대학가 오리엔테이션 중요 이슈로 부각 ‘제2 조승희 사건’ 우려 부모들 지대한 관심

  • 전원경 작가 winniejeon@hotmail.com

    입력2007-08-14 11: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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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대학들은 9월에 신학기를 시작한다. 신학기 시작 직전인 여름방학 기간, 대학들은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오리엔테이션을 연다. 그래서 재학생들이 빠져나간 여름의 캠퍼스는 앳된 얼굴의 신입생들과 그들의 손을 잡고 온 부모들로 북적거린다.

    그런데 올해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에는 특별한 과정이 하나 추가됐다. 바로 ‘캠퍼스 내 안전교육’이다. 미국 일간지인 ‘유에스에이 투데이’는 최근 “캠퍼스의 안전 문제가 대학들의 오리엔테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로 떠올랐다”고 보도했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4월에 벌어진 버지니아공대의 총기사고 때문이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학교 총기참사로 기록된 이 사건의 희생자는 무려 33명. 부모들이 “우리 아이가 다닐 대학이 과연 안전한가”를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학생들 정신건강 대응까지 질문

    대부분의 미국 대학은 대학 안에 ‘캠퍼스 경찰’을 두고 있다. 늦은 시간에 귀가하는 학생들은 기숙사나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캠퍼스 경찰의 호위를 받을 수 있다. 또 저녁부터 밤늦게까지 학교 주변을 순회하는 셔틀버스도 있다. 그러나 이제 이 정도의 안전장치로는 부모들을 안심시킬 수 없다. 대학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한 많은 학부모들이 안전 문제와 더불어 ‘학교 당국이 학생들의 정신건강에 얼만큼 신경 쓰고 있는가’를 질문할 정도다. 혹시나 자녀가 다닐 대학에 제2, 제3의 조승희가 있지 않을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뉴욕 주의 빙엄턴 대학은 다른 여러 대학과 마찬가지로 오리엔테이션 중 긴 시간을 할애해 안전 문제를 설명했다. 텍사스 오스틴 대학의 경우 오리엔테이션 전에 캠퍼스 경찰서장이 오리엔테이션 담당자들을 불러놓고 각종 사고 상황에서 학교가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를 교육했다고 한다. 이 학교의 오리엔테이션 담당자인 홀리 스미스는 “안전은 매년 오리엔테이션에서 빠지지 않고 다뤄진 문제지만 올해의 청중 반응은 달랐다. 학부모들이 정말로 귀 기울여 설명을 듣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막연한 ‘안전’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위기상황에서의 대응책에도 관심을 보였다. 빙엄턴 대학 관계자인 케네스 홈스는 “특히 학부모들이 궁금해한 것은 ‘사고가 터졌을 때 학교가 학생들에게 어떻게 연락을 취할 것인가’라는 부분이었다”고 말했다. 버지니아공대의 총기사고가 많은 희생자를 낳은 것은 학생들이 4월16일 새벽 기숙사에서 1차 저격사고가 터진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등교했고, 이 때문에 노리스 홀의 두 강의실에서 30명 넘는 희생자가 나왔던 것이다.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가중한 것은 버지니아공대 사건뿐만이 아니다. 7월15일, 2만여 명의 학생들이 다니는 이스턴 미시간 대학의 존 팰런 총장이 살인사건에 연루돼 해고됐다. 지난해 12월15일, 이 학교 재학생 로라 디킨슨이 대학 기숙사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학교 측은 질식사고로 사망했다고 주장했으나 실은 같은 대학에 범인이 있었다. 경찰은 2월15일 이스턴 미시간대 재학생인 오렌지 테일러를 체포해 그가 기숙사 방에서 디킨슨을 강간한 뒤 살해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학내에서 일어난 범죄를 은폐하려 한 총장에게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결국 이사회의 결정으로 팰런 총장은 해임되고 말았다. 이런 사건들 역시 자녀를 대학 기숙사로 보내는 부모들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다.

    위기상황 전파 ‘캠퍼스 알람’ 호의적 반응

    버지니아공대 사건 이후 많은 학교들은 ‘캠퍼스 알람’을 새로 만들었다. 위급한 사고가 터질 경우 즉시 온 캠퍼스에 들리는 사이렌이나 벨을 울려 위기상황임을 알리는 장치다. 캠퍼스 내의 모든 컴퓨터나 케이블TV로 “위기상황이 터졌다”는 메시지를 단체 발송한다는 방안도 있다.

    작은 규모의 대학인 델라웨어 밸리 칼리지는 아예 치안 담당자가 일일이 학부모를 방문해 새로운 안전프로그램에 가입할 것을 권유한다. 이 안전 프로그램은 학교 측이 등록된 학생들의 휴대전화와 e메일로 경보 메시지를 보내게 돼 있다. 약간의 가입비를 내야 함에도 학부모 대다수가 이 프로그램 등록에 동의했다고 한다.

    물론 모든 대학이 신입생들의 안전 문제에 호들갑을 떠는 것은 아니다. 플로리다 대학, 조지아공대 등은 여느 해와 비슷한 프로그램으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다. 조지아공대의 존 스테인 학생처장은 “우리 대학 학부모들이 안전 문제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다만 학부모들은 대학 측의 대비책이 충분하리라 믿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 신입생의 절대 다수가 처음 집을 떠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만큼 부모 처지에서는 여러 가지가 걱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학교에서 공부 잘하고 친구들과 잘 지낼까 하는 문제 외에 총기사고에 희생되지 않을까 하는 문제까지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분명 정상은 아니다. 미국의 대학 생활, 또 미국의 학부모 노릇도 그리 수월한 것만은 아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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