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뒤에 기색을 살피자 그는 마치 혼신의 힘을 다해 달리기를 마친 마라토너처럼 보였다. 아침 8시부터 돋보기를 쓴 채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4’ 원고를 쓰고 참고용 원서를 읽느라 기진한 상태라고 했다.
“요즘 이 시간만 되면 헬륨가스 마신 목소리가 나요. 허허허.”
구수하고 재미있는 천부적인 이야기꾼
그는 천부적인 이야기꾼이다. 그래서 이야기가 구수하고 재미있게 들리지만 그의 말 속에는 뼈가 있다. 글도 그의 말을 닮았다. 대화를 나눌 때도 정신을 놓치면 ‘말주먹’ 한 방 먹는 일은 잠깐이다. 특히 편협한 것, 현명치 못한 관념은 뼈도 못 추린다. 그가 이야기를 풀어나가자 ‘헬륨가스 마신 목소리’가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10권까지 계획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5~6년은 더 걸리겠죠. 또 출판사들과 계약돼 있는 책을 다 쓰려면 15년은 걸릴 겁니다. 출판사들이 그때까지 안 죽고 있어야 할 텐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하루에 저녁 한 끼만 먹고 종일 책과 씨름하며 지냈다. 그러다 근기가 약해져 요즘에는 점심밥을 꼭 챙겨 먹는 편이다. 붙잡고 있는 주제를 파기 시작하면 그는 불도저 같다. 끝까지 밀어붙여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요즘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고 저녁 늦게 잠들지만, 젊은 시절 그는 밤을 꼬박 새워 아침 7시까지 일하기를 즐겼다.
“새벽 5시가 되면 졸려요. 그런데 그때 자면 안 돼요. 혼잣말로 자신을 다독였죠. ‘다들 5시까지는 하니까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6시까지 하면 여느 사람보다 한 시간 더 했으니 이제 자도 된다. 아니야. 조금만 나아가서는 안 돼. 확 나아가려면 7시까지는 자지 말아야 해.’ 그러고 나면 완전히 잠에 떨어져버립니다. 그렇게 20년 세월을 보냈어요. 그러니 목숨 걸고 일한 셈이죠.”
‘그리스 로마 신화’의 자료를 취재하기 위해 유럽에 갔을 때 그는 전문가용 카메라 두 대를 양 어깨에 둘러메고 렌즈 6개를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6시간 동안 쉬지 않고 사진을 찍은 뒤 호텔방으로 돌아가면 그의 몸은 물먹은 솜 같았다고 한다.
“독자들에게 설명하기 좋은 앵글을 잡기 위해 몇 시간씩 씨름하다 보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힘들었습니다. 베트남전에서는 총구 겨누느라 왼쪽 눈을 열심히 감았는데, 사진을 찍느라 또 오른쪽 눈을 억수로 감은 거죠. 탈진할 만큼 말입니다. 한 곳이라도 더 돌기 위해 나는 운전대를 잡고, 옆에 앉은 아내는 직접 만든 샌드위치를 계속해서 내 입에 넣어줬어요. 그렇게 해서 책을 낸 것인데, 내가 소 뒷걸음질치다가 우연히 베스트셀러 하나 건진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참….”
2002년 그리스 로마 신화 유적지 취재여행 당시의 이윤기 씨. 신작 한국 신화 에세이 ‘꽃아 꽃아 문열어라’(왼쪽).
그가 신화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조금 과장하면 기네스북 감이다. 외국의 미술관 박물관 유적지 등으로 취재여행을 다니면서 구입한 도록만 수천 권이 넘는다. 1991년부터 9년여 간 미국 미시간주립대 연구원으로 있을 때 구입한 신화 관련 책만 1억원어치에 이른다. 직접 찍은 사진 필름을 모은 대형 파일이 20권, 신화 관련 그림을 자르고 붙인 대형 파일이 20여 권…. 그의 이런 노력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최근 펴낸 한국 신화 이야기 ‘꽃아 꽃아 문 열어라’(열림원 펴냄)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우리 땅 구석구석을 직접 누비며 모으고 묶은 내용이다. 그는 단군과 웅녀, 주몽과 유리태자, 박혁거세와 알영,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등 무관심 속에 방치됐던 우리 신화의 현재 의미를 유려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이 여느 한국 신화 관련 책들과 다른 점은 우리 신화를 그리스 로마 신화와 비교하면서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유리태자 이야기’가 결국 ‘파에톤 이야기’이기도 하고 ‘테세우스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결국 우리는 고구려의 유리왕 이야기를 하면서 실제로는 에티오피아의 ‘파에톤 이야기’, 그리스의 ‘테세우스 이야기’를 아울러 하고 있는 셈이 아닌가?”라고 질문한다.
“인류의 원형적 심성을 건드리는 보편 신화를 우리 신화에서도 추출해보고 싶었습니다. 한국인은 이집트인과 분명히 다르지만근본에 대한 생각은 같거든요. 그래서 우리 신화가 그리스 로마 신화와 어떻게 맥락이 닿아 있는지 비교하면서 썼습니다. 처음에는 중국 신화, 만주족과 몽골족 신화도 끌어들이려 했는데, 그렇게 되면 독자들이 너무 정신없어 할 것 같아 말았어요. 저는 글을 쓸 때 독자들에게 굉장히 ‘알랑방구’를 많이 뀌는 편입니다. 쉽게 이해하도록 말입니다.”
한국 신화를 파고들었으니 명쾌한 대답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 질문이 하나 있었다. 우리의 근본은 어디인가 하는 점.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 선생님은 누구입니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나’는 내 어머니 아버지의 아들인 ‘나’인 동시에, 한민족의 씨앗을 받은 조선인으로서의 ‘나’이며, 인류의 씨를 아래로 전할 사명을 지닌 인종으로서의 ‘나’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디에서 나왔느냐 하면바로 무당의 본풀이에서 나왔습니다. 본(本)풀이는 오늘 여기 들어와 이 굿을 흥행할 신이 누구인가를 말하는 것인데, 우리가 바로 그 신화에서 나온 겁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느냐고요? 무당들 사이에서 전승되고 있는 저승에 관한 무가(巫歌) 안으로 갑니다.”
-사실은 우리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는 말인가요.
“그렇죠. 환웅이 신단수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는데, 우리 근본을 그렇게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비해 우리 신화는 빈약해 보인다. 그리스 신화는 기원전 8세기에 이미 체계적으로 기록됐고 후세에 전해지면서 회화, 조각, 건축의 밑그림 구실을 했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신화 시대였다.
“우리는 신화를 확대 재생산해본 적이 없는 민족입니다. 제대로 기록도 하지 못했죠. 13세기 들어서야 ‘삼국유사’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는 신화에 대한 고대인의 인식이 아니라 13세기인의 인식입니다. 일연스님도 환웅을 환인이라고 했습니다. 환인은 제석천, 불교의 군신(軍神)을 말합니다. 종교가 원본 신화를 왜곡했다는 겁니다. 그래도 사랑하면 알게 되고,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습니다.”
-신화는 지금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던져주나요.
“꿈은 개인의 신화요, 신화는 모둠살이의 꿈입니다. 즉 신화는 모둠살이가 진행 중인 바로 지금 이곳의 이야기입니다. 신화와 신화적 인물은 그렇게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감동을 전해주면서 말이죠.”
-신화를 아는 만큼 더 똑똑해진다는 의미죠.
“예를 들어봅시다. 나폴레옹은 프랑스가 융성하기 위해선 라틴에 줄을 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예술가들을 대거 로마로 유학 보냈어요. 그리고 그들이 캐온 알맹이들로 프랑스는 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를 꽃피웠죠. 루브르박물관 드농관 앞에 가면 피라미드가 있는데, 이는 이집트에서 발원한 문명이 그리스 로마를 거쳐 프랑스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상징입니다. 이런 것을 알면 세상이 얼마나 깊고 넓어 보이겠습니까.”
“요즘 나무에서 삶의 지혜 배워”
그의 거실에 들어설 때만 해도 개구리 소리가 요란했는데 어느덧 빗줄기가 굵어졌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중국집에서 빼갈과 유산슬, 짬뽕이 왔다. 창 밖에 조성된 대숲에는 60여 그루 대나무가 하늘로 시원하게 뻗어 있었다.
“5년 전 봄 서재를 지을 때 7000원 주고 사온 대나무 한 그루가 만들어낸 기적입니다. 이듬해 죽순이 5~6개 올라와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해는 15개, 그 다음 해는 20개 이런 식으로 늘어난 거예요. 이게 바로 시간과 돈의 문제입니다. 부동산 투자하는 사람들, 아마 그 재미로 할 거예요. 달이 뜨면 저 대나무들이 유리창에 그림을 그려요. 난을 치는 거죠.”
뒤뜰에는 경북 군위 그의 고향집 뒤꼍에 있던 키 작은 대나무를 파와 심어놨다. 마치 작은 숲 같다. 그는 요즘 나무에 빠져 있다. 컴퓨터 바탕화면에는 양평 시골집에 그가 조성한 메타세쿼이아 숲 사진이 담겨 있다. 5년 전 묘목 100그루를 직접 심었는데 지금 두 뼘 넘는 굵기로 자랐다고 한다.
“나무를 심고 그 나무를 한 생명으로 인식하면서 나와 인간과의 교감에서 얻을 수 없는 어떤 느낌을 주고받는 것이 큰 즐거움입니다. 나무는 우리보다 훨씬 넓은 주파수를 갖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인간이 이 땅에 출현한 것이 100만 년 전이라고 하는데, 은행나무는 100억 년 전에 나타났죠. 전에는 봄날이 가는 것이 왜 그리 심란한지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눈물을 찔끔거리곤 했는데, 나무 600그루를 심고 나니까 ‘에라이 봄날아, 좀 빨리 지나가라. 나무 커가는 것 좀 보게’라는 마음이 듭니다.”
한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살아가는 나무에게서 그는 삶의 지혜를 배운다. 그 역시 젊은 시절부터 신화의 땅에 뿌리를 내리고 시간의 도움을 받아 집앞 대나무처럼 세력을 넓혀왔다. 밀리언셀러가 된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뿐 아니라 ‘장미의 이름’ ‘변신 이야기’ ‘그리스인 조르바’ 같은 빼어난 번역문학을 탄생시켰고, 장편 ‘하늘의 문’ ‘뿌리와 날개’, 단편 ‘나비넥타이’ 같은 빼어난 작품들도 낳았다.
“스물일곱 살 때 거의 자살할 것 같은 상황에 내몰린 적이 있습니다. 카뮈는 ‘이방인’을 스물일곱 살에 썼는데 무명 소설가인 나는 이게 뭔가라는 비관적인 생각이 들었죠. 그때 일기장에 ‘스물일곱 살의 나이에 눈물이 어울리는가. 에라 흘리자. 그 나이에 어울리는 청명함이 있다면’이라고 적었어요. 이후 잡지사 일이며 번역이며 온갖 일을 다하다가 도저히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1991년 미국으로 ‘토꼈’습니다. 제2의 건국을 하자고 마음먹었던 거죠. 배수진을 친 건데, 그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게 됐습니다. 늦기 전에 다들 드넓은 세계로 떠나라고 권하고 싶어요.”
밤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떠나라’는 그의 강권을 뒤로한 채 기자는 사무실로 떠나왔다. 다음 날 그에게서 e메일이 왔다.
“오래간만에 옛 친구를 만나 술 한잔 하려고 했더니 그게 인터뷰였다고? 내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그래도 맛나는 자리였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