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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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보다 게임 먼저 배워요”

3~5세 유아 두 명 중 한 명꼴 인터넷 접속… 학습효과 ‘긍정론’속 ‘중독 위험’ 경계론

  •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입력2007-08-14 10: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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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보다 게임 먼저 배워요”

    모델·김세하

    30대 중반의 A씨는 얼마 전 온라인 게임을 하던 중 일곱 살(만 6세) 어린이에게 ‘된통 당했다’. 현란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강적을 만나 대패한 그는 채팅으로 약을 올리는 상대와 말싸움 끝에 ‘너 몇 살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상대는 미취학 아동. 이 ‘강적’은 서른네 살이라며 신분을 밝힌 A씨에게 마지막 KO 펀치를 날렸다.

    “나이 많아 좋겠다.”

    인터넷상에서 ‘초딩’이라 불리는 초등학생 누리꾼이 ‘나이 많은’ 어른을 압도할 만큼 막강한 힘을 발휘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방학이 되면 “무법 초딩의 습격에 성인 누리꾼이 떨고 있다”는 말이 돌 정도로 그들은 파워그룹으로 대접받고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 인터넷 시작은 초등학교 이전 유아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정보통신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실시한 ‘2007년 하반기 정보화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3~5세 유아의 인터넷 이용률은 절반이 넘는 51.6%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통 3세 전에 처음 인터넷을 접하는 유아 누리꾼은 주 평균 4.3시간 인터넷을 사용하며 음악·게임·영화 등 오락물을 즐기고(89.0%), 교육과 학습(87.3%)을 한다.

    유아 누리꾼 보통 3세 이전부터 ‘클릭클릭’



    유아와 어린이 전용 섹션이 있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쥬니버)와 야후(야후꾸러기)의 이용자 수 역시 유아 누리꾼의 힘을 실감케 한다. 쥬니버와 야후꾸러기의 주간 이용자 수는 각각 약 400만명, 250만명에 이른다. 야후의 김천광 팀장은 야후꾸러기를 “가장 주력하고 있는 섹션”이라고 설명했다.

    “유아를 대상으로 한 콘텐츠로는 동요, 동화, 유아놀이 등이 있는데 주로 교육기능이 더해진 에듀테인먼트 콘텐츠가 많습니다. 매주 수십 개의 프로그램이 업데이트되고, 동요의 경우 일주일에 100여 곡이 새로 올라옵니다. 한글, 영어, 숫자 교육 등과 아바타 인형놀이가 인기 있습니다.”

    경남 진주에 사는 다섯 살배기 동하 역시 유아교육 사이트를 주로 이용하는 누리꾼이다. 세 살 때 형 민하(7)를 통해 처음 인터넷을 접하게 된 동하는 네 살 무렵부터 스스로 컴퓨터를 켜고 자판도 친다. 즐겨찾기가 된 사이트에 로그인하는 솜씨도 자연스럽다.

    인터넷 시작화면이 네이버인 탓에 주로 ‘쥬니버’를 이용하는 동하는 얼마 전엔 혼자 ‘야후꾸러기’ 사이트를 접속해 엄마 배순옥(32) 씨를 놀라게 했다.

    “깜짝 놀라서 ‘너 어떻게 여기 들어갔냐’고 물었죠. 친척 형들이랑 잠시 지냈는데 그때 형들이 야후꾸러기에서 게임하는 게 재미있어 보였나봐요. 그걸 외워서 찾아갔더라고요.”

    “숫자로 된 비밀번호를 치는 건 가능하지만 아직 영어 비밀번호 치는 건 어려워한다”는 동하는 인터넷 교육사이트를 통해 한글과 구구단을 배웠다. 민하, 동하 형제는 엄마가 지켜보는 가운데 하루 한 시간 정도 컴퓨터를 갖고 놀고, 공부를 한다. 기자가 집에 찾아갔을 당시 형제는 한자 교육 프로그램을 접속하고 있었는데, 애니메이션 중간중간 내용과 관련된 한자가 튀어나오면 애니메이션 주인공을 따라 포즈를 취하고 한자 음을 외치며 즐거워했다.

    “처음에는 포털사이트에 있는 무료 콘텐츠만 이용했는데 몇 개 맛보기를 한 뒤 다음 단계는 돈을 지불해야 하더라고요. 효과가 좋은 것 같아서 유료 회원에 가입했어요.”

    에듀테인먼트 형식의 인터넷 콘텐츠는 집중력과 학습 효과가 높다. 그래서 이런 온라인 교육용 사이트에 대한 부모들의 만족도도 큰 편이다. 다섯 살배기 아들 동희에게 매일 30분 정도 교육용 사이트를 이용하게 한다는 문은경(36) 씨는 유아교육 사이트의 장점으로 “숫자와 한글, 한자, 영어는 물론 역사와 과학까지 콘텐츠가 다양해 엄마가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폭넓은 분야를 접하게 해줄 수 있는 점”을 꼽았다.

    “사이트에 타이머 기능이 있어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바나노와 푸근이(애니메이션 주인공 캐릭터)가 나와서 ‘자 친구야 그만 하자’ 하고 인사해요. 처음엔 아이가 쟤들 밉다면서 엉엉 울더니, 이젠 익숙해져 자기가 시간을 정해놓고 놀아요.”

    전자파·운동 부족 등 문제점 노출

    이런 장점 때문에 유아를 대상으로 한 온라인 시장은 계속해서 넓어지고 있다. 유아 대상 온라인 교육업체인 지니키즈 담당자에 따르면 현재 유아 대상 온라인 교육업체는 20개 정도. 200억원 규모의 시장으로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교육 효과만으로 유아의 인터넷 사용을 옹호하기는 어렵다. 인터넷은 효과적인 교육 수단임과 동시에 치명적인 ‘흉기’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만 다섯 살 남자아이를 둔 B씨는 지난 6개월간 아이를 데리고 소아정신과병원을 다녀야 했다. 지난해 명절 친척집에서 인터넷을 하는 사촌형들 사이에 끼여 놀던 B씨의 아들은 한 아이가 실수로 클릭해 들어간 야동사이트에서 포르노물을 접하게 됐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모른 채 갑자기 말을 잃고 식사를 거부하는 아이 때문에 당황해하던 B씨는 상담을 통해 뒤늦게 그 원인이 인터넷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됐다.

    인터넷이 부를 수 있는 위험은 이뿐만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컴퓨터의 전자파와 운동 부족 등에 따른 체력저하, 인터넷 가상현실이 현실과 가상을 확실히 구분하지 못하는 유아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점도 위험 요소로 꼽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인터넷 접촉 시기가 이를수록 중독 가능성도 비례해 증가한다는 점이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의 상담현황 자료에 따르면 초등학생 및 어린이 상담은 2002년 250건에서 2005년 6019건으로 3년 새 무려 24배가 늘어났다.

    지난해와 올해 국가청소년위원회가 주관하는 유아 대상 미디어교육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김민정(중앙대 유아교육과 강사) 씨는 “중독으로 전문기관을 찾는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생 중에는 유아 시절부터 매체를 접한 아이들이 대부분”이라면서 “유아 시기에는 어려서 심각성을 못 느끼다 뒤에 수습하려니 어려움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교육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이트라도 “시청각을 자극하고 게임의 요소가 섞여 있는 만큼 중독 가능성이 없지 않다”면서 인터넷을 할 경우 적정시간을 정해놓고 늘 부모의 지도 아래 함께 할 것을 권유했다.

    “이제 아이들을 인터넷으로부터 무조건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 아이들은 펜보다는 마우스를 더 편하게 여길 테고요. 다만 미디어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필요합니다. 모든 면에서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유아는 특히 더 그렇죠. 인터넷은 좋은 교재가 될 수 있지만 결코 베이비시터가 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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