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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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참된 기능은 무엇인가

  • 노만수 서울디지털대 문창과 교수·도서출판 일빛 편집장

    입력2007-08-14 16: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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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의 참된 기능은 무엇인가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탈레반(왼쪽). 리처드 도킨스의 신작 만들어진 신’.

    한 사나이가 머리에 화려한 관을 씌운 나무신(神)을 집에 모시고 소를 바쳐 제사 지내기에 열심이었다. 하지만 열렬한 신앙심에도 아무런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무슨 일이 일어났다 하면 유달리 이 사나이만 피해가 컸다. 그는 마침내 분을 삭이지 못해 지렛대로 나무신을 부수고 만다. 그런데 황금이 쏟아졌다. 사나이는 “내가 너에게 잘해주었을 때는 단 한 푼의 보수도 없더니, 방법을 바꾸기를 잘했지. 너를 믿고 너에게 잘해주면 나만 헐벗는다”고 중얼거렸다.

    ‘프랑스의 이솝’ 라퐁텐(1621~1695)의 우화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신을 인정하는 것은 정신적 미성숙 증세이자 유아기적 노이로제이므로 망상에 불과하다”고 했고 니체는 “종교는 인간의 허약한 가슴에 기생하는 약자와 노예의 수치”라고까지 했는데, 이 우화가 던져주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처럼, 종교란 죽은 뒤의 내세 혹은 천상의 보상을 제시해 약자가 현실의 모순에 저항하지 않고 영원한 약자이도록 하는 보수적 기능을 하므로 ‘민중의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의 말과 일맥상통하는 메시지일까.

    새뮤얼 헌팅턴의 예견대로 문명충돌의 화약고인가

    최근 한국인들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에 인질로 잡혀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당연히 종교근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그렇다면 온건한 종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까. 얼마 전에 나온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김영사 펴냄)은 “극단적 종교가 문제가 아니라 종교 자체가 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2000년 뉴욕의 9·11테러 이후의 세계사를 보면 새뮤얼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이란 책에서 예견한 대로 문명충돌의 화약고는 종교인 듯싶다. 또한 이렇게 ‘죽음’ ‘신’ ‘내세’ ‘하늘나라’ ‘종교’ 등의 ‘추상적·개념적·형이상학적’인 것에 목숨 걸고, 다른 이의 목숨까지 파리 목숨인 양하는 꼴을 보면 인간은 역시 ‘호모 렐리기오수스(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다. 이걸 부인할 수 없다면 문제는 ‘종교의 참된 기능’이다.

    일본소설 ‘침묵’(엔도 슈사쿠 지음, 홍성사 펴냄)은 가톨릭이 일본에 수용되는 과정을 통해 종교의 참된 기능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논픽션인 이 소설은 “로마 교황청에 한 가지 보고가 들어왔다”는 긴박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포르투갈 예수회가 일본에 파견한 ‘명석하고 신앙심 깊은’ 페레이라 신부가 그리스도교 포교금지 정책을 펴는 에도막부의 고문에 못 이겨 결국 배교했다는 소식이었다. 신부에 대한 신뢰가 큰 만큼 충격도 컸다.



    특히 페레이라 신부의 애제자들은 충격이 큰 나머지 확인차 일본 도항까지 결의한다. 포르투갈 출신 애제자인 로드리고는 실제 이름이 조세페 켈러이고 일본식 이름은 오카모토 산에몬(岡本三右衛門)인데, 일본에 온 그는 예수교에 대한 처참한 박해 현장을 목격한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인 16세기 초 일본의 에도막부는 포르투갈에서 조총기술을 배웠지만, 종교인 가톨릭은 금지하는 정책을 폈다. 기술은 받아들이되 정신적인 것은 금지한 일종의 ‘화혼양재(和魂洋才)’를 편 셈이다.

    그래서 에도막부는 일본인 가톨릭 신자를 가려내기 위해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 상이 그려진 성모화를 밟고 지나가게 하는 ‘후미에(踏繪)’를 실시했다. 가톨릭 신자들은 이에 항의하는 ‘종교 잇키(분규)’를 벌여 유명한 ‘나가사키(長崎) 대순교’에서만도 3만여 명이 몰살당했다.

    박해충격 여파로 감옥에 갇힌 로드리고는 간수의 코 고는 소리에도 신경이 예민해진다. 하지만 그 불규칙적으로 들려오는 둔탁한 코 고는 소리는 사실 ‘구멍 매달기 고문’을 받는 신자들의 신음소리였다. 그런데 신자들에게 반복되는 박해와 고문, 뒤를 잇는 신자들의 희생, 글자 그대로 인간의 기력과 체력의 한계를 넘어선 고난, 페레이라와 로드리고의 필사적인 기도에도 신은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라퐁텐의 우화 속 사나이의 기복신앙과는 달리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성화를 밟지 않고 참혹한 죽음의 길을 걷는 순교자들에게 신의 침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것이 바로 소설이 던지는 질문이다.

    또한 라퐁텐 우화 속 사나이처럼 ‘방법을 바꿔’ 자신의 인간적 나약함을 핑계로 주저 없이 성화를 밟는 ‘일본인 유다’ 기치지로, 그리고 일찍이 신자였으나 기독교 탄압에 유례없이 교활한 이노우에 지쿠고노도 우리에게 ‘종교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들과 순교하는 농민 신자들을 지켜보면서 페레이라, 로드리고 신부는 깊은 고뇌와 회한에 빠진다. 성모마리아 상을 밟는 배교를 하면 감옥에 갇힌 신자들을 풀어준다는 막부의 흥정에 응해 신자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게 참종교인가, 아니면 교리를 끝까지 지키는 게 참종교인가? 결국 그들은 담담하게 성모마리아 상 위로 흙발을 옮겨놓는다. 순간 예수님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밟아라, 성화를 밟아라.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존재하나니, 밟는 너의 발이 아프고, 그 아픔만으로 충분하느니라. 밟아라, 밟아도 좋다. 네 발 속의 극진한 아픔을 나만은 이해한다.”

    교단조직과 종교인들이 배교라고 손가락질했을 페레이라와 로드리고 신부의 역설적 행위를 통해 엔도 슈사쿠는 종교나 종교교리, 교회와 선교, 그리고 순교보다 더 귀중한 ‘그 무엇’을 지키는 게 참된 종교라는 걸 전해주기 위해 가톨릭과 사무라이들의 정신적 문명충돌을 형상화했을 것이다.

    유대인이지만 이스라엘 건국과 유대인의 ‘선민(選民)의식’을 비판해 동족에게서 ‘왕따’를 자초한 영국의 진보적인 사학자 에릭 홉스봄과 함께 핵무기 확산반대 운동을 펼쳤던 버트런드 러셀은 1927년 3월6일 영국에서 행한 강연 내용인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사회평론 펴냄)에서 무화과가 열리는 철도 아닌데 열매가 열리지 않았다고 무화과를 저주해 시들어버리게 한 예수의 이야기를 통해 종교가 독선과 독단에 빠지는, 즉 (자신의) 종교근본주의에 빠지는 걸 이렇게 비판한 적이 있다.

    탈레반, 1996년 정권 잡고 신정국가 정책 펼쳐

    “내가 왜 기독교인이 아닌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기독교에 매달리지 않으면 사람이 사악해진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기독교에 매달려온 사람 대부분이 극악했다. 어떤 시대든 종교가 극렬할수록, 독단적인 믿음이 깊을수록 잔인성도 더 커졌고 사태도 더 악화됐다.”

    1979년 친소(親蘇) 카르말 정권이 들어선 이후 반소(反蘇) 무장독립운동을 한 탈레반이 20년 가까운 게릴라전 끝에 1996년 정권을 잡고 펼친 게 신정(神政)국가, 즉 정교일치의 나라였다. 하지만 그것은 이슬람 근본주의에 불과했다. 여성은 여덟 살이 넘으면 학교나 직장에 다닐 수 없다. 외출할 때는 부르카를 하고 남자 친척이 동행하지 않으면 택시도 탈 수 없으며 재단사가 몸의 치수를 잴 수도 없다. 음악, 축제, 영어공부, 자유로운 헤어스타일 모두 금지다. 오로지 코란만이 진리였다. 뿐만 아니라 종파가 다른 시아파 민간인 8000여 명을 학살했고 타 종교의 우상이라는 이유로 세계문화유산인 바미안 석불을 로켓포로 파괴하는 문화반달리즘을 저지르기도 했다.

    물론 뉴욕 9·11테러의 배후자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을 넘겨주지 않는다고 아프간 전쟁을 일으킨 미국은 국제법상 불법을 저질렀다. ‘외밭에서는 신발 끈도 고쳐 매지 말라’는 우리네 속담처럼, 교회에서 목탁을 두드리고 모스크에서 찬송가를 부른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했던 한국인 봉사선교단의 ‘묻지마 선의’도 물론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민간인의) 목숨을 담보로 군사적·정치적 목적만 달성하려는 이들은 라퐁텐 우화의 사나이처럼 종교를 쉽게 수단화할지 모르지만 페레이라와 로드리고처럼 때로는 자신의 신과 자신을 배반하는 아픔이 참된 종교라는 것을, 그래서 알라와 하나님 등 인간이 생각해낸 모든 신은 늘 침묵하며 ‘호모 렐리기오수스의 종교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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