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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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플루엔자 세상을 바꾸는 ‘욘족’

  • 김경훈 한국트렌드연구소장

    입력2007-08-14 16: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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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플루엔자 세상을 바꾸는 ‘욘족’

    야후 공동창업자 제리 양도 대표적인 욘족이다.

    어플루엔자(Affluenza)라는 신조어가 있다. ‘풍요로운’이란 뜻을 가진 ‘Affluent’와 ‘인플루엔자(Influenza)’의 합성어다. 미국 PBS 방송의 다큐멘터리 제작자 존 그라프와 다른 두 공동 저자는 같은 제목의 책에서, 끊임없는 소유욕에 시달리며 더 많은 물질을 추구하는 미국인들의 생활을 추적했고, 이를 하나의 병이자 전염되는 중독 증세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고삐 풀린 소비만능주의가 미국식 생활방식을 모방하는 전 세계로 전파되고 있다고 했다. 이는 세계화의 또 다른 어두운 측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자 사이에서의 기부 유행 바람직한 현상

    그런데 어플루엔자 세상에서 안티바이러스 구실을 할 만한 새로운 단어가 등장했다. 바로 욘(YAWNS)족이다. ‘욘’이란 ‘젊고 부유하지만 평범하게 사는 사람’, 즉 ‘Young And Wealthy but Normal’의 머리글자를 딴 말이다. 30, 40대에 상속이 아닌 자기 힘으로 억만장자가 됐지만 요트나 자가용 제트기 등을 사는 데 돈을 쓰기보다 자선사업에 힘 쏟고, 가족 중심의 조용하면서도 평범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이 단어가 등장한 것은 올해 6월, 영국 ‘선데이 텔레그래프’지가 2000년대의 엘리트 트렌드라면서 처음 소개했고, 이후 ‘옵서버’나 ‘월스트리트 저널’ 등에서도 최근 부자들 사이의 유행이라고 보도하며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잘 아는 인물 중 대표적인 욘족으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을 꼽을 수 있다. 그는 아이비리그 대학생 같은 소박한 옷차림을 즐기고,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해 무려 290억 달러에 이르는 기금으로 자선사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빌 게이츠는 1100평이 넘는 대저택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욘족의 또 다른 대표주자 필립 리버보다 사치스러운 부자인 편이다. 필립 리버는 ‘사이버콥’이라는 온라인 거래회사를 우리 돈 3600여 억원에 팔아 갑부가 됐지만, 교외의 소박한 집에 살면서 에티오피아 빈곤 퇴치에 재산과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

    욘족이 과거 부자들과 가장 다른 점은 ‘부자인 척하지 않는 부자들’이라는 것이다. 1980년대에는 도시의 전문직 고소득층을 일컫는 여피족이 부유층의 대명사였는데, 이들의 특징은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어 90년대에 등장한 보보스족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히피나 보헤미안처럼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다. 여피족이나 보보스족이나 노골적으로 돈냄새를 풍기지 않는다는 점에선 욘족과 닮았는데, 이들은 자신의 취향이나 기호를 충족해주는 대상에게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반면 욘족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더불어 사는 삶’에 큰 관심을 보인다.



    어플루엔자 세상에서는 욘족 같은 사람들을 부추길 필요가 있다. 그들은 매우 소수일 뿐 아니라 알고 보면 내면에 허영심이나 명예욕 등이 감춰져 있으리란 의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인간은 성인(聖人)이 아닌 이상 어차피 그런 것들로 가득 차 있으니 말이다. 미국의 경우, 탐욕과 소비에 길들여진 삶을 떠나 물질적 하향이동을 택한 사람의 86%가 더 행복해졌다는 응답의 통계도 있다. 하지만 우리 중 86%가 과감히 하향이동을 선택하는 날은 오지 않을 것 같다. 인간은 욘족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선천적 내성이 있는 듯하다. 그러므로 실천을 무조건 찬양하자. 조금씩, 조금씩 전염되도록.

    - ‘트렌드 사회학’은 이번 호로 끝맺습니다. 그동안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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