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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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덩어리들의 캔버스 대축제

  • 이병희 미술평론가

    입력2007-08-14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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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덩어리들의 캔버스 대축제

    김혜나 씨의 작품 ‘vagabond, mixed media on paper’(왼쪽), 작품명 ‘what am i supposed to say’.

    대안공간 ‘루프’는 8월3일부터 김혜나 씨의 작품을 전시 중이다. 김씨는 지난해 대안공간을 통해 한국 미술계에 등단한 신예작가.

    그의 작품은 수많은 선과 색의 덩어리로 구성돼 마치 추상화처럼 보인다. 검은 선과 붉은 선으로 그려진 드로잉과 유화물감으로 뭉쳐진 색 덩어리들이 액션 페인팅처럼 속도감과 힘의 강약을 그대로 표현해낸다. 때로는 섬세하고 때로는 대범하게 거대한 물결과 소용돌이를 그려내기도 한다.

    그의 작품에는 둥근 얼굴과 날카로운 흰색 눈이 종종 등장한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그린 것 같지는 않다. 하나의 점에서 출발한 선과 색 덩어리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우연히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추상적인 형태 속에서 잉태된 어떤 존재처럼.

    그 존재들은 어쩌면 일상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 개인의 환상이나 망상, 욕망 등에 잠재된 에너지가 응축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응축된 에너지는 대부분 어떤 계열이나 힘, 속도 등 하나의 존재나 사건처럼 갑자기 나타난다.

    우리는 그런 존재나 사건을 자주 접한다. 친구였고 동료였던 누군가가 정치적 볼모로 잡혀 생사를 알 수 없는 지경에 처하거나, 심지어 사기꾼이나 연쇄살인범으로 밝혀지기도 한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도 한다.



    사실 그런 존재나 사건은 처음부터 그럴 운명이었다기보다는 복잡한 현대사회의 새로운 관계나 만남 속에서 별안간 출현하는 것이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시간은 아무도 예기치 못한 관계와 만남 속에서 흘러간다. 김씨의 그림은 그런 관계와 만남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나의 점에서 출발해 같은 선과 색들로 뒤엉켜 만들어진 속도감과 에너지가 바로 우리의 삶처럼 보인다. 그 속에서 잉태된 우리 또한 예측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분명 우리 공동의 실천과 책임 속에서 형성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작품 전시는 8월29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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