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9

..

눈먼 관광기금 러브호텔 양성?

일부 관광숙박 용도로 건물 신축 후‘대실’위주로 버젓이 영업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7-08-14 10:3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눈먼 관광기금 러브호텔 양성?
    # 사례1

    서울 강남의 한 유흥가에 자리한 A호텔.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마치고 석 달 전 새로 개장했다. 홈페이지에는 ‘1급 관광호텔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게재해놓았다. 프런트 직원에게 비즈니스 때문에 방한한 외국인의 장기숙박이 가능한지 물었다. 직원은 “가능하다. 그러나 숙박요금을 할인받으려면 매일 아침 체크아웃하고 오후 6시 이후에 다시 체크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낮 손님 때문에요. 동네 특성 탓에 대실(몇 시간 방을 빌리는 것) 손님이 많거든요. 짐은 프런트에 맡기시면 되고요.”

    # 사례2

    역시 서울 강남에 자리한 B호텔. 대낮인데도 주차장에는 고급 승용차가 여러 대 주차돼 있다. 각각의 승용차 번호판은 가리개로 가려져 있다. 대실료 3만원. 방 안의 PDP TV에서는 케이블채널 성인방송이 나왔다. 이 호텔은 차량 대기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다. 버튼을 누르면 호텔 직원이 출발하기 좋게 차량을 대기시켜놓는 서비스다. 프런트 직원에게 외국인 장기숙박이 가능한지 물었다. “안 된다”는 답변이다. “저희 호텔 손님들은 길게 묵어야 2박3일 정도입니다. 외국인 손님은 거의 없고요. 대실 위주예요.”



    ‘국내 관광산업 진흥’을 목적으로 조성된 관광진흥개발기금(이하 관광기금)이 엉뚱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관광숙박시설 건설이나 개보수 용도로 관광기금을 저리 융자받은 업체 가운데 일부가 사실상 ‘러브호텔’ 영업을 하고 있는 것.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손봉숙 의원에게서 입수한 관광기금 융자업체 현황자료(2004~2007년)에 따르면, 앞서 언급한 A호텔은 2004년부터 2006년까지 3년간 6차례에 걸쳐 관광숙박시설 건설 및 개보수 용도로 120억800만원을 융자받았다. B호텔은 지난해 관광숙박시설 개보수 용도로 11억8600만원을 대출받았다.

    1973년 만들어진 이 기금의 목적은 ‘관광사업의 효율적 발전 및 관광외화 수입 증대’. 카지노 납부금과 출국 납부금을 재원으로 삼는데, 카지노사업자 강원랜드의 납부금과 우리나라를 출국하는 내·외국인이 모두 1만원씩 내도록 돼 있는 출국 납부금(항공료에 포함)으로 조성되는 것이다. 관광기금의 규모는 매년 성장하고 있으며(2006년 2532억원), 해외여행자가 증가하면서 출국 납부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 커지는 추세다(2006년 출국 납부금 비중이 53%).

    관광기금이 수행하는 4종의 융자사업 중 관광숙박시설 건설 및 개보수 목적의 융자금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06년 2304억300만원을 융자했는데, 이 가운데 건설 및 개보수에 지원된 융자금이 1317억2800만원으로 57%를 차지했다. 융자 금리는 공공자금관리기금 융자계정 변동금리(이하 공자금리)에서 0.75%를 우대하는 변동금리. 2007년 2·4분기 현재 4.19%로 시중 융자금리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그런데 이렇게 나간 융자금 중 일부가 관광외화 수입 증대는커녕 ‘대실’ 위주의 영업을 하는 업체들로 빠져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 금천구의 C호텔. 이 호텔은 지난해 관광기금으로부터 건설 용도로 73억6000만원을 융자받았다. 그러나 현재 호텔 입구에 ‘대실 3만원’이라고 적어놓은 입간판을 세우고 영업 중이다. 호텔 입구도 천막을 밀치고 들어간 뒤 주차장을 지나야 나온다. 딱히 호텔 로비라고 부를 공간도 없다. 호텔 직원에게 “대실 손님들이 드나들면 외국인 관광객이 불편해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엘리베이터가 두 명만 타도 만원이 되기 때문에 손님들끼리 마주칠 일이 거의 없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시중금리보다 싼 4.19%로 융자

    2004년 63억원을 대출받은 서울 강서구 유흥가의 D호텔은 아예 관광숙박업으로 등록하지도 않았다. 일반숙박업소도 관광숙박업으로 전환하겠다는 신청서만 구청에서 발급받아 제출하면 관광기금을 융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호텔에 대출을 해준 한국산업은행 관계자는 “관광숙박업으로 전환할 것을 재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D호텔 또한 호텔 입구에 ‘대실 3만원’이라는 홍보 현수막을 게시해놓고 있다. 지하 1층에는 여성 마사지사만 고용하고 있다는 스포츠마사지 업소까지 있다. D호텔 대표 송모 씨는 “외국인 관광객만 유치하면 장사가 안 되기 때문에 대실 영업을 시작했다”며 “스포츠마사지 업소는 임대를 준 것으로, 나와는 상관없다”고 밝혔다.

    대실 영업을 하는 관광호텔들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어떤 인상을 줄까. 인바운드(외국인의 국내 관광) 관광업체 KTB대한여행사 관계자는 “대실 영업을 하는 호텔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유치하지 않고 있다. 여행사에 바로 항의가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편 관광기금 관리당국인 문화관광부 관광정책팀 관계자는 “융자해준 은행에서 여신관리를 하고 있으며, 대실 영업을 하는지의 여부는 (우리가) 단속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5월 정부의 ‘기금존치평가보고서’에서 관광기금이 수익자부담원칙에 미흡하다고 지적됐듯, 현재 관광기금은 해외여행자나 카지노 고객 등 ‘돈 내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거의 없다는 한계를 가진다. 그렇다고 국내 관광산업 진흥이라는 본래의 목적에도 충실해 보이진 않는다.

    서울 강남 유흥가의 한 공사현장. 과거 모텔이 있었던 이곳은 터파기 공사가 한창이다. 현장 직원은 “모텔을 부수고 관광호텔을 짓고 있다”고 밝혔다. 이 모텔 역시 올해 관광기금으로부터 58억4500만원을 융자받았다. 공사현장 주변에는 나이트클럽과 주점 등 유흥시설이 즐비하다. 이곳은 과연 얼마나 많은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기여하게 될까.

    대기업에 매력적인 관광기금

    “회사채보다 저렴해 안정적 자금줄”


    자금력 있는 대기업들의 호텔 건설과 개보수에 관광기금이 상당 부분 지원되고 있는 점이 지난 수년간 문제로 지적돼왔다. 이에 정부는 2005년 하반기부터 대기업에 한해 공자금리에서 0.75%를 우대해주는 조건을 삭제했고, 대기업 융자 비율을 전년 24%에서 올해 하반기 16%로 낮추는 등 개선책을 내놨다.

    그러나 우대금리 삭제에도 관광기금은 대기업들에게 여전히 매력적인 ‘자금줄’로 보인다. 2006년 이후 한화리조트㈜가 414억원, 워커힐이 200억원의 관광기금을 관광숙박시설 건설 및 개보수 용도로 받아갔다. 5% 안팎의 관광기금 융자 금리가 6% 안팎의 회사채 금리보다 싸기 때문이다. 한화리조트 관계자는 “회사채는 발행 비용도 발생하기 때문에 관광기금 융자가 훨씬 유리하다. 또한 7~9년에 달하는 장기자금이라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어 선호된다”고 밝혔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