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 경기장.
속도를 줄이고 갓길에 잠시 서서 현대건축의 백미로 일컬어지는 알리안츠 아레나-보는 이를 질식하게 하는 초고층건물의 기상이 아니라, 마치 어젯밤에 불시착한 기이하면서도 경이로운 비행물체 같은 경기장-를 바라보았다. 내 육체는 질주하는 차량 옆에 있었으나 영혼은 유체이탈해 낯선 물체 속으로 빠진 듯했다. 마침 비가 내리고 어둠까지 깔린 상태에서 반투명 재질의 경기장 외관에 조명이 들어와 관중은 흡사 성지를 찾아온 순례자 같았다. 나도 스위스의 건축그룹 ‘헤르조그 · 드 므롱’이 지은 신화 속의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제주도 강창학공원 내 구장은 기부자 이름 붙여
그런데 왜 ‘알리안츠’ 아레나일까? 그것은 막대한 건설비를 조달하기 위한 명칭권 판매 때문이다. 미국 프로 스포츠에서는 흔한 일. 1993년 미국 메이저리그 콜로라도 로키스 홈구장 이름이 맥주회사 쿠어스에 10년 계약으로 1500만 달러에 팔렸는데, 지금도 이 야구장은 ‘쿠어스 필드’라고 불린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홈구장의 이름도 통신회사에 5000만 달러에 팔려 ‘팩벨 파크’라 불린다. CNN 회장의 이름을 딴 ‘터너 필드’처럼 기부자의 이름으로 된 구장도 많다.
이런 경향을 짐짓 모른 체하던 유럽에서도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경기장 건설을 위해 기업과 손을 잡고 있다. 독일 보험회사 알리안츠는 4200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된 이 경기장의 스폰서를 맡으면서 자사 로고를 앞으로 15년간 붙일 수 있게 됐다. 어쨌든 반투명 재질로 외부 마감된 이 경기장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상상력이 올린 개가다. 이 도시를 연고로 하는 바이에른 뮌헨의 홈경기 때는 외부가 빨간색, 또 다른 홈팀인 1860 뮌헨의 홈경기에서는 파란색으로 변한다.
거의 모든 경기가 매진되는 잉글랜드에서도 경기장 신축이 유행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세계 축구의 흐름이 잉글랜드로 향하면서 막대한 건설비용을 충당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약 7만명을 수용하게 된 맨체스터의 ‘올드 트래포드’, 중동 항공사와 손잡은 아스널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8만명 이상 수용을 목표로 건설이 추진 중인 리버풀의 ‘스탠리 파크’는 그 자체로 홈팀에 2배의 관중 수익을 보장한다.
국내에도 기부자의 이름을 딴 구장이 있는데, 앞의 예와는 경우가 조금 다르다. 바로 제주도의 강창학공원 내 구장이다. 스탠드에서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서귀포월드컵경기장도 아름답기로는 세계적 수준이지만, 거기서 5분 거리의 강창학공원 내 구장도 ‘내용적으로’ 아름답다. 승리와 수익과 판타지를 증대하려는 현대적 욕망이 모든 경기장을 압도하고 있지만, 서귀포시 주민 강창학 씨가 토지를 기증해 만들어진 이 구장은 대표팀을 비롯해 수많은 팀의 전지훈련장이자 서귀포 시민의 평화로운 스포츠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