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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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통령 임기 운운할 때인가

  • 이상환 한국외국어대 교수·정치학

    입력2006-12-11 14: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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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대통령 임기 운운할 때인가
    “임기를 다 마치지 않은 첫 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노 대통령은 또 열린우리당을 지킬 것을 다짐하면서, 신당은 지역당이 될 것이라며 신당 창당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대통령의 발언이 정계개편의 신호탄이 되는 듯하다.

    지금 노 대통령은 명예로운 퇴진과 열린우리당의 지속을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권 재창출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정권 재창출은 국민 지지에 달린 일이고, 지금 국민은 무엇보다 정치·경제의 안정을 바라고 있다. 현안 민생문제의 해결이 정치질서에 대한 논의보다 더 시급하다고 느끼는 것이 작금의 보편적인 국민 정서다. 정부가 지금 신경 써야 할 일은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의 달성이다.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개헌 논의로 이어질 공산이 크며, 정치적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도 높다.

    해방 이후 우리는 정치적 민주화, 지역감정 해소, 좌우 이념갈등 해결 등을 위해 노력해왔다. 김영삼 정부의 집권은 민주세력의 첫 집권을 의미했으나,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김대중 정부 또한 고질적인 영호남 대결구도의 해소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했으나, 지역감정이 개선된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의 등장은 그동안 잠재해왔던 좌파 대 우파 구도 속에서 좌파의 승리를, 그리고 기득권 세력에 대항한 민중세력의 집권을 의미했다. 그러나 노 정부 집권 이후 좌우 대립은 오히려 더 격화됐고 사회적 갈등은 증폭됐다.

    민주-반민주, 영남-호남, 좌-우 갈등을 겪으면서 한국정치가 한 차원 높게 성숙한 점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 대가는 너무 컸다. 국민의 실망감은 갈수록 커졌고, 어떤 세력이 권력을 잡건 마찬가지라는 허무주의가 팽배해졌다. 지금 대부분의 국민은 대립의 한 축에 서서 상처받은 세력이 권력을 잡는 일이 다음 대선에도 재연되길 바라지 않는다. 대신 민초에 기반을 둔 건강한 세력이 국민의 상처를 보듬어주길 바란다.

    맡은 책무부터 다하는 게 도리



    노 정부는 참여정부라는 기치 아래 여론에 의존하는 정치를 해왔고, 초기에는 일정 부분 신선감을 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어려움에 빠진 정치적 상황을 반전시키는 수단으로 임기 발언을 활용하고 있다면, 이는 자신이 주창한 참여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 된다.

    노 정부가 직면한 정치적 어려움의 원인은 크게 국정 경험의 부족과 민중주의적인 요소의 도입에서 찾을 수 있다. 국정 경험의 부족은 능력과 경험을 겸비한 인재들을 등용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코드가 맞는 사람’을 찾다 보니 일찌감치 인재풀에 한계가 드러났다는 점이다. 통합이 아닌 배제의 논리가 임기말에 접어든 정부에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다가 화합보다는 분열이 사회 전반의 속성이 될까 걱정이다.

    민중주의란 밑으로부터의 대중 동원에 기초한 정치권력 장악을 특징으로 한다. 노 정부의 경우 국회에서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행태가 나름의 평가를 받으려면 사회적 합의를 목표로 한 여론수렴과 함께 정책적 결과에 책임을 지는 자세가 선행돼야 한다.

    지금은 노 대통령이 임기를 논할 때가 아니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바라는 바는 책임 있는 지도자로서 역할을 다하라는 것이다. 정권 재창출은 소임을 다하는 대통령과 책임을 지는 정부가 있을 때 그나마 가능한 일이다. 대다수 국민은 현시점에서 대통령의 사퇴보다는 무책임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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