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봄날 우연히 만난 니콜라우스와 엘프리데는 첫눈에 반해 학생 신분으로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듬해 첫아들이 태어났고 연년생으로 둘째 아들까지 낳는 바람에 의대생이던 엘프리데는 학업을 중단하고 전업주부의 길을 걷게 됐다.
세월은 흘러 12년이 지났다. 그 사이 남편 니콜라우스(40)는 경영학 석사를 받고, 관공서 직원의 재교육을 담당하는 한 컨설턴트업체의 중견 간부로 승승장구했다. 아이도 넷으로 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엘프리데(34)는 못다 한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집안 살림은 누가 하고 아이들은 누가 돌보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부부는 “그래, 그거야!”라고 외쳤다. ‘남성 육아휴직’을 이용해보자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여느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에서도 낮은 출산율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오스트리아 통계청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여성은 1인당 평균 1.4명의 아이를 출산하는데, 이는 유럽 평균치(1.6명)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가사·육아문제 남녀평등권 권장
이에 오스트리아 정부는 출산율 증가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먼저 2002년부터 아동 1인당 월 436유로(약 55만원)의 킨더겔트(Kindergeld·아동보육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 킨더겔트는 아동이 만 30개월이 될 때까지 지급되나, 맞벌이인 부모가 번갈아 육아휴직을 할 경우 36개월까지 지급된다. 이러한 정책으로 남성의 육아휴직을 지원하고 가사와 육아 문제에서 남녀평등을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 막내아들이 갓 두 돌이 지난 터라 니콜라우스와 엘프리데 부부는 나머지 6개월 동안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고 아내는 학업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육아휴직과 함께 새로운 일상이 시작됐다. 아침 6시를 기준으로 차례대로 온 식구가 기상해 아침을 먹는다. 니콜라우스가 아침식사와 아이들이 학교에 싸갈 간식을 준비하는 동안 엘프리데는 유치원에 다니는 딸(5)과 막내아들(2)의 옷을 입히고 아침을 먹인다. 큰아들(13)과 작은아들(12)은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고, 초등학교 교사 양성학교에 입학한 아내는 8시쯤 집을 나선다.
아침상을 치우고 세탁기를 돌린 뒤 니콜라우스는 막내아들을 유모차에 태운 채 딸을 근처 유치원에 데려다준다. 대부분 유치원이 만 3세 이상의 아이만 받기 때문에 막내아들은 집에서 돌봐야 한다. 점심때까지는 막내아들을 데리고 근처 공원이나 놀이터에서 소일한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은행이나 관공서에 들러 일을 보고 시장에 가 장을 본다. 오후 4시경, 아내와 아들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고 유치원에서 딸을 데리고 오면 온 가족이 모여 아빠가 만든 케이크를 함께 먹으며 티타임을 갖는다.
저녁식사 후 식탁에 둘러앉아 다 함께 주사위 놀이를 하다가 아이들은 7시쯤 잠자리에 든다. 이제부터는 부부만의 시간. 와인 한 잔을 나누며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소재로 대화를 나눈다.
“양육의 기쁨, 절대 후회하지 않아”
육아휴직은 일종의 무급 휴가. 막내아들 몫의 킨더겔트와 네 아이에 대한 정부의 양육보조금을 다 합쳐도 한 달에 1200유로(약 150만원)밖에 안 된다. 여섯 식구가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다. 보다 못한 아내가 일주일에 이틀씩 근처 병원에서 아르바이트하지만, 그 돈을 보태봐야 니콜라우스가 혼자 벌던 월급에도 못 미친다.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오스트리아 남성들은 육아휴직을 꺼린다.
돈이 유일한 걸림돌은 아니다. 실직에 대한 불안감도 크다. 모든 것이 급격하게 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최소 6개월에서 최대 30개월까지 집에 있다가 직장에 돌아오면, 시골에서 갓 올라와 서울 구경하는 신세와 다를 바 없게 되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육아휴직 전 3개월부터 육아휴직 후 4주까지 해고하지 못하게 해놓았지만, 이 ‘보호기간’이 지나서 해고되면 속수무책이다. 많은 오스트리아 맞벌이 부부가 실직에 대한 불안감으로 3년 동안 제공되는 킨더겔트를 포기하고 출산 6개월 만에 다시 직장 생활을 시작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이 모든 악조건에도 11월 초 발표된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현재 오스트리아에서 육아휴직 중인 남성은 5758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육아휴직자의 3.5%에 해당하는 것으로 초기의 0.9%에 비해 현저히 늘어난 수치다. 복지부는 남성의 육아휴직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대부분의 아버지들도 회사가 허락만 한다면 육아휴직을 희망한다.
니콜라우스는 경제적 어려움과 직장에서의 불이익을 감수하고도 굳이 아버지 육아휴직을 고집한 이유를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큰아들과 작은아들은 논문 쓰랴, 직장 잡으랴 정신없는 때에 태어나 제대로 돌봐준 적이 없어요. 또 딸, 막내아들과는 지금이 아니면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없을 것 같죠. 눈 깜짝할 새 자라는 아이들은 부모를 기다려주지 않거든요.”
니콜라우스는 얼마 남지 않은 육아휴직 기간을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데 쓰기로 했다. 그것은 정원에 있는 큰 나무 위에 아이들을 위해 나무 오두막을 짓는 것.
육아휴직이 끝나는 내년 1월, 막내아들이 유치원에 들어가면 이들 부부는 한숨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270유로(약 35만원)나 하는 유치원비는 걱정거리. “오스트리아에서 파산하는 가장 빠른 길은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라는 말이 결코 농담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도를 깨친 듯한 얼굴로 웃으며 말한다.
“아이들은 이런 모든 어려움을 몇십 배로 보상해주는 기쁨의 원천입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세월은 흘러 12년이 지났다. 그 사이 남편 니콜라우스(40)는 경영학 석사를 받고, 관공서 직원의 재교육을 담당하는 한 컨설턴트업체의 중견 간부로 승승장구했다. 아이도 넷으로 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엘프리데(34)는 못다 한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집안 살림은 누가 하고 아이들은 누가 돌보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부부는 “그래, 그거야!”라고 외쳤다. ‘남성 육아휴직’을 이용해보자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여느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에서도 낮은 출산율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오스트리아 통계청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여성은 1인당 평균 1.4명의 아이를 출산하는데, 이는 유럽 평균치(1.6명)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가사·육아문제 남녀평등권 권장
이에 오스트리아 정부는 출산율 증가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먼저 2002년부터 아동 1인당 월 436유로(약 55만원)의 킨더겔트(Kindergeld·아동보육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 킨더겔트는 아동이 만 30개월이 될 때까지 지급되나, 맞벌이인 부모가 번갈아 육아휴직을 할 경우 36개월까지 지급된다. 이러한 정책으로 남성의 육아휴직을 지원하고 가사와 육아 문제에서 남녀평등을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 막내아들이 갓 두 돌이 지난 터라 니콜라우스와 엘프리데 부부는 나머지 6개월 동안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고 아내는 학업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육아휴직과 함께 새로운 일상이 시작됐다. 아침 6시를 기준으로 차례대로 온 식구가 기상해 아침을 먹는다. 니콜라우스가 아침식사와 아이들이 학교에 싸갈 간식을 준비하는 동안 엘프리데는 유치원에 다니는 딸(5)과 막내아들(2)의 옷을 입히고 아침을 먹인다. 큰아들(13)과 작은아들(12)은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고, 초등학교 교사 양성학교에 입학한 아내는 8시쯤 집을 나선다.
아침상을 치우고 세탁기를 돌린 뒤 니콜라우스는 막내아들을 유모차에 태운 채 딸을 근처 유치원에 데려다준다. 대부분 유치원이 만 3세 이상의 아이만 받기 때문에 막내아들은 집에서 돌봐야 한다. 점심때까지는 막내아들을 데리고 근처 공원이나 놀이터에서 소일한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은행이나 관공서에 들러 일을 보고 시장에 가 장을 본다. 오후 4시경, 아내와 아들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고 유치원에서 딸을 데리고 오면 온 가족이 모여 아빠가 만든 케이크를 함께 먹으며 티타임을 갖는다.
저녁식사 후 식탁에 둘러앉아 다 함께 주사위 놀이를 하다가 아이들은 7시쯤 잠자리에 든다. 이제부터는 부부만의 시간. 와인 한 잔을 나누며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소재로 대화를 나눈다.
“양육의 기쁨, 절대 후회하지 않아”
육아휴직은 일종의 무급 휴가. 막내아들 몫의 킨더겔트와 네 아이에 대한 정부의 양육보조금을 다 합쳐도 한 달에 1200유로(약 150만원)밖에 안 된다. 여섯 식구가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다. 보다 못한 아내가 일주일에 이틀씩 근처 병원에서 아르바이트하지만, 그 돈을 보태봐야 니콜라우스가 혼자 벌던 월급에도 못 미친다.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오스트리아 남성들은 육아휴직을 꺼린다.
돈이 유일한 걸림돌은 아니다. 실직에 대한 불안감도 크다. 모든 것이 급격하게 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최소 6개월에서 최대 30개월까지 집에 있다가 직장에 돌아오면, 시골에서 갓 올라와 서울 구경하는 신세와 다를 바 없게 되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육아휴직 전 3개월부터 육아휴직 후 4주까지 해고하지 못하게 해놓았지만, 이 ‘보호기간’이 지나서 해고되면 속수무책이다. 많은 오스트리아 맞벌이 부부가 실직에 대한 불안감으로 3년 동안 제공되는 킨더겔트를 포기하고 출산 6개월 만에 다시 직장 생활을 시작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이 모든 악조건에도 11월 초 발표된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현재 오스트리아에서 육아휴직 중인 남성은 5758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육아휴직자의 3.5%에 해당하는 것으로 초기의 0.9%에 비해 현저히 늘어난 수치다. 복지부는 남성의 육아휴직이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대부분의 아버지들도 회사가 허락만 한다면 육아휴직을 희망한다.
니콜라우스는 경제적 어려움과 직장에서의 불이익을 감수하고도 굳이 아버지 육아휴직을 고집한 이유를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큰아들과 작은아들은 논문 쓰랴, 직장 잡으랴 정신없는 때에 태어나 제대로 돌봐준 적이 없어요. 또 딸, 막내아들과는 지금이 아니면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없을 것 같죠. 눈 깜짝할 새 자라는 아이들은 부모를 기다려주지 않거든요.”
니콜라우스는 얼마 남지 않은 육아휴직 기간을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는 데 쓰기로 했다. 그것은 정원에 있는 큰 나무 위에 아이들을 위해 나무 오두막을 짓는 것.
육아휴직이 끝나는 내년 1월, 막내아들이 유치원에 들어가면 이들 부부는 한숨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270유로(약 35만원)나 하는 유치원비는 걱정거리. “오스트리아에서 파산하는 가장 빠른 길은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라는 말이 결코 농담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도를 깨친 듯한 얼굴로 웃으며 말한다.
“아이들은 이런 모든 어려움을 몇십 배로 보상해주는 기쁨의 원천입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