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이들을 한데 묶어 좌파라고 부르는 이유는 국영기업 민영화, 대외 개방 등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대와 친(親)민중적 정책이 공통적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연대에는 중남미의 연대와 동질감이 바탕에 깔려 있다.
중남미는 세계 어느 대륙보다 국경을 넘어 같은 남미인이라는 일체감이 분명하다. 일단 대부분의 주민이 라틴계 유럽인과 원주민 사이의 혼혈이다. 브라질을 제외하고는 모두 스페인어를 쓴다. 언어가 같다는 것은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얘기다. 문화와 종교, 경제적 조건까지 비슷하다.
혁명가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을 그린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이 같은 남미의 동질성을 보여주고 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두 젊은이가 남미를 일주하며 겪는 일을 그린 이 영화에서 ‘혁명가 체 게바라’는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대학생이 남미의 장대한 풍광과 유적들을 돌아보는 여행기일 뿐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고지식한 의대생이 남미 민중의 현실과 역사적 상처에 눈뜨고 자각하는 모습을 묘사하면서 이런 자각이 훗날 혁명가로의 변신으로 이어졌음을 암시한다. 체 게바라가 왜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쿠바혁명에 뛰어들었고 볼리비아 정글에서 게릴라 활동을 하다 생포돼 죽었는지, 그 뿌리에는 ‘남미는 하나’라는 동질감이 있었던 것이다.
중남미 민중의 연대감의 중심에는 ‘반미’가 있다. 칠레 아옌데 정권의 몰락을 그린 영화 ‘산티아고에 비는 내린다’. 민주적 정권인 아옌데가 이끄는 사회당 정부가 무너지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의 제목은 당시 쿠데타군의 작전 암호였다. 영화는 직접적으로는 피노체트와 아옌데, 아옌데를 지지하는 국민 간의 대결을 그린다. 그러나 피노체트와 군부 뒤에 미국이 있었다는 사실을 함께 보여준다. 미국은 아옌데가 집권하자 시장을 교란하는 등 아옌데 정권 흔들기에 나섰고, 쿠데타 세력을 부추겼다. 피노체트 세력이 정치범을 고문하는 장면에서도 미국 중앙정보국(CIA)으로부터 지원받고 있다는 것이 암시된다.
‘산티아고에…’ 속 장면들은 칠레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니다. 60년대 중남미를 풍미했던 좌파 정권들은 잇따라 미국의 지원을 받은 군부의 쿠데타에 의해 전복됐다.
최근 중남미의 반미 좌파정권들이 포퓰리즘이라는 일각의 비판을 받으면서도 강고한 흐름을 보이는 것은 이 같은 역사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고, 어떤 식으로든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