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겁을 주려고 부엌칼을 꺼내든 것뿐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소방서 구급대원들이 도착했을 때 아내는 이미 숨져 있었다. 지난해 12월, 이렇게 해서 공무원 김모(54) 씨는 단숨에 살인 범죄자가 되었다.
소아마비 장애를 가진 김씨는 스물한 살에 면사무소 최하위직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5급 자리에까지 올랐다. 얼마 되지 않는 자신의 월급을 가지고 알뜰살뜰하게 네 아이를 키운 아내에게 김씨는 늘 고마운 마음이었다. 그러던 아내가 외도를 시작했고 급기야 이혼을 요구했다.
사건이 벌어진 날, 그는 아내와 심하게 다투었다. 둘 다 술에 취해 있었다. 아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불러달라”고 했다. 화가 난 김씨는 싱크대에서 칼을 꺼내 한 차례 휘둘렀다. 김씨의 변론을 맡은 임철 변호사는 변론요지서에 “사람의 운명이 이렇게 한순간에 돌변할 수 있는지,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고 썼다.
평범한 사람들 한순간 악마로 돌변
11월22일 열린 항소심 공판에서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사건의 진범 정남규 씨는 “사람을 죽이는 데 희열을 느꼈다”고 말했다. 살인 범죄자는 모두 정씨처럼 남의 목숨을 빼앗기를 즐기는 부류일까. 아니다. 매년 검거되는 1000여 명의 살인 범죄자들 중 다수는 오히려 공무원 김씨처럼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순간적으로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해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 범죄의 피해자는 대부분 가족이나 애인, 친구 등 가까운 사람이다. 그렇기에 후회와 죄책감이 어느 범죄보다도 깊다.
최근 발간된 ‘2006년도 범죄분석’(대검찰청 발행)을 바탕으로 2005년 한 해 동안 벌어진 살인 범죄를 분석했다. 2005년에는 모두 1091건의 살인 범죄가 벌어져 1145명의 살인 범죄자가 검거됐다. 살인 범죄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이러했다. ‘밤에 집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우발적으로 가족이나 애인을 죽인다.’
40%의 살인사건이 밤에, 34%가 대화 중에 일어났다. 또한 살인 범죄 발생 장소는 45%가 거주지였다. 총 980명의 살인 범죄자를 대상으로 한 통계에서는 범죄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타인’인 경우가 173명에 불과했다. 586명은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기타 및 미상이 221명). 특히 가족이 195명, 애인이 100명으로 가장 많았다. 친척(69명), 직장동료(37명), 이웃(36명), 친구(33명)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에 대해 동국대 이윤호 교수(경찰행정학)는 “살인은 대표적인 충동 범죄이며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필요로 하는 범죄”라고 전제하면서 “가족은 안식처이기도 하지만 제일 쉽게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다. 따라서 살인이 벌어지기 가장 쉬운 집단”이라고 설명했다.
범행 동기에서는 ‘우발적’인 경우가 가장 많았다. 980명 중 319명, 즉 3명 중 1명이 ‘우발적’으로 살인 범죄를 저질렀다. ‘가정불화’가 그 다음을 잇는 범행 동기로 103명이 이에 해당했다. 보복(77명)이나 돈을 뺏기 위해(11명) 벌어진 살인 범죄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살인은 악마가 저지르는 범죄가 아니라는 사실은 살인 범죄자들의 전과를 보면 더욱 명백해진다. 살인 범죄자 980명 중 321명은 전과가 전혀 없었다. 여성 범죄자의 경우 117명 중 81명, 즉 70%가 초범자였다.
11월20일 만삭의 애인을 칼로 찔러 죽인 신모(31·경기도 평택시) 씨 또한 전과가 전혀 없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그러나 그는 흉기로 애인의 가슴을 수차례 찔렀고, 애인이 도망가자 뒤쫓아가서 배를 찔렀을 정도로 잔혹한 범행을 저질렀다. 이 일로 애인과 뱃속의 아기까지 차가운 길바닥에서 숨졌다. 경찰 조사에서 신씨는 “단지 겁을 주려고 과도를 사갔는데 너무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범행을 저질렀다”고 털어놓았다.
이 참극의 씨앗은 4~5개월 전부터 시작된 잦은 다툼이었다. 신씨의 월급이 말기암으로 투병 중인 아버지의 병원비에 쓰이자 애인이 생활비를 적게 준다고 화를 냈던 것. 애인은 신씨에게 “어차피 아버지는 죽을 사람인데 아버지보다는 곧 태어날 아기에게 신경을 쓰라”고 요구했다. 사건 당일에도 둘은 식당에서 소주를 마시며 크게 다퉜다. 신씨를 검거한 경찰관은 “피해자가 남자화장실에까지 쫓아와 신씨에게 이 말 저 말을 퍼붓자 참다못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해가 거듭될수록 전과자가 살인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살인 범죄자 중 4범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1990년 19%에서 2002년 26%로 상승했으며 2005년에 이르러 32%를 기록했다. 형사정책연구원 박형민 전문연구원은 “이들은 대부분 폭력 전과범으로, 폭력적 행동양식에 익숙한 사람들이 우발적으로 사람을 살해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분노 자극 언행이 살인행위 유발
박형민 전문연구원은 2003년 살인을 저질러 복역 중인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는데, 그중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사건 당시 근심스럽거나 곤란한 일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결과가 흥미롭다. 295명의 응답자 중 184명, 즉 62%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이들 중 51%가 근심이나 곤란한 일이 사건을 일으키는데 ‘매우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답했다. ‘아무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답변은 9%에 불과했다. 즉, 다른 근심이 있는 상황에서 사소한 자극이 주어질 경우 끔찍한 범행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11월25일 충북 청주의 흥덕경찰서는 살인 범죄를 저지르고 도피생활을 하던 김모(41) 씨를 붙잡았다. 김씨는 지난 3월 술자리에서 처음 만난 남자와 나이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다 흉기를 휘둘러 그를 살해했다. 경찰은 “김씨보다 한 살 어린 피해자가 김씨에게 반말을 하자 순간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며 “당시 김씨는 사업에 실패해 사업체가 경매로 넘어가는 등 큰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전했다.
살인은 악마가 저지르는 범죄가 아니다. 살인은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고, 또한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범죄다. 다만 관건은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분노 조절 능력이다. 20여 년의 형사생활 동안 100여 건의 살인사건을 경험한 곽재표 경위는 “대부분의 살인사건은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벌어진다”며 “이들은 제정신을 차리고 난 뒤에는 막심한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린다. 자신이 가족을 죽였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이윤호 교수는 “대부분의 살인 범죄에서 범행 동기가 일방적으로 가해자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무원 김씨나 회사원 신씨의 경우처럼 많은 살인사건에서 분노를 촉진하는 피해자의 언행이 살인행위를 유발하는 것이 사실이다. 한림대 조은경 교수(심리학)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모욕을 주는 상대를 공격하는 것은 인간에게 본능에 가까운 일”이라며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극한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소아마비 장애를 가진 김씨는 스물한 살에 면사무소 최하위직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5급 자리에까지 올랐다. 얼마 되지 않는 자신의 월급을 가지고 알뜰살뜰하게 네 아이를 키운 아내에게 김씨는 늘 고마운 마음이었다. 그러던 아내가 외도를 시작했고 급기야 이혼을 요구했다.
사건이 벌어진 날, 그는 아내와 심하게 다투었다. 둘 다 술에 취해 있었다. 아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불러달라”고 했다. 화가 난 김씨는 싱크대에서 칼을 꺼내 한 차례 휘둘렀다. 김씨의 변론을 맡은 임철 변호사는 변론요지서에 “사람의 운명이 이렇게 한순간에 돌변할 수 있는지,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고 썼다.
평범한 사람들 한순간 악마로 돌변
11월22일 열린 항소심 공판에서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사건의 진범 정남규 씨는 “사람을 죽이는 데 희열을 느꼈다”고 말했다. 살인 범죄자는 모두 정씨처럼 남의 목숨을 빼앗기를 즐기는 부류일까. 아니다. 매년 검거되는 1000여 명의 살인 범죄자들 중 다수는 오히려 공무원 김씨처럼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순간적으로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해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 범죄의 피해자는 대부분 가족이나 애인, 친구 등 가까운 사람이다. 그렇기에 후회와 죄책감이 어느 범죄보다도 깊다.
최근 발간된 ‘2006년도 범죄분석’(대검찰청 발행)을 바탕으로 2005년 한 해 동안 벌어진 살인 범죄를 분석했다. 2005년에는 모두 1091건의 살인 범죄가 벌어져 1145명의 살인 범죄자가 검거됐다. 살인 범죄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이러했다. ‘밤에 집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우발적으로 가족이나 애인을 죽인다.’
40%의 살인사건이 밤에, 34%가 대화 중에 일어났다. 또한 살인 범죄 발생 장소는 45%가 거주지였다. 총 980명의 살인 범죄자를 대상으로 한 통계에서는 범죄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타인’인 경우가 173명에 불과했다. 586명은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기타 및 미상이 221명). 특히 가족이 195명, 애인이 100명으로 가장 많았다. 친척(69명), 직장동료(37명), 이웃(36명), 친구(33명)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에 대해 동국대 이윤호 교수(경찰행정학)는 “살인은 대표적인 충동 범죄이며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필요로 하는 범죄”라고 전제하면서 “가족은 안식처이기도 하지만 제일 쉽게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다. 따라서 살인이 벌어지기 가장 쉬운 집단”이라고 설명했다.
범행 동기에서는 ‘우발적’인 경우가 가장 많았다. 980명 중 319명, 즉 3명 중 1명이 ‘우발적’으로 살인 범죄를 저질렀다. ‘가정불화’가 그 다음을 잇는 범행 동기로 103명이 이에 해당했다. 보복(77명)이나 돈을 뺏기 위해(11명) 벌어진 살인 범죄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살인은 악마가 저지르는 범죄가 아니라는 사실은 살인 범죄자들의 전과를 보면 더욱 명백해진다. 살인 범죄자 980명 중 321명은 전과가 전혀 없었다. 여성 범죄자의 경우 117명 중 81명, 즉 70%가 초범자였다.
11월20일 만삭의 애인을 칼로 찔러 죽인 신모(31·경기도 평택시) 씨 또한 전과가 전혀 없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그러나 그는 흉기로 애인의 가슴을 수차례 찔렀고, 애인이 도망가자 뒤쫓아가서 배를 찔렀을 정도로 잔혹한 범행을 저질렀다. 이 일로 애인과 뱃속의 아기까지 차가운 길바닥에서 숨졌다. 경찰 조사에서 신씨는 “단지 겁을 주려고 과도를 사갔는데 너무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범행을 저질렀다”고 털어놓았다.
이 참극의 씨앗은 4~5개월 전부터 시작된 잦은 다툼이었다. 신씨의 월급이 말기암으로 투병 중인 아버지의 병원비에 쓰이자 애인이 생활비를 적게 준다고 화를 냈던 것. 애인은 신씨에게 “어차피 아버지는 죽을 사람인데 아버지보다는 곧 태어날 아기에게 신경을 쓰라”고 요구했다. 사건 당일에도 둘은 식당에서 소주를 마시며 크게 다퉜다. 신씨를 검거한 경찰관은 “피해자가 남자화장실에까지 쫓아와 신씨에게 이 말 저 말을 퍼붓자 참다못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해가 거듭될수록 전과자가 살인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살인 범죄자 중 4범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1990년 19%에서 2002년 26%로 상승했으며 2005년에 이르러 32%를 기록했다. 형사정책연구원 박형민 전문연구원은 “이들은 대부분 폭력 전과범으로, 폭력적 행동양식에 익숙한 사람들이 우발적으로 사람을 살해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분노 자극 언행이 살인행위 유발
박형민 전문연구원은 2003년 살인을 저질러 복역 중인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는데, 그중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사건 당시 근심스럽거나 곤란한 일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결과가 흥미롭다. 295명의 응답자 중 184명, 즉 62%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이들 중 51%가 근심이나 곤란한 일이 사건을 일으키는데 ‘매우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답했다. ‘아무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답변은 9%에 불과했다. 즉, 다른 근심이 있는 상황에서 사소한 자극이 주어질 경우 끔찍한 범행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11월25일 충북 청주의 흥덕경찰서는 살인 범죄를 저지르고 도피생활을 하던 김모(41) 씨를 붙잡았다. 김씨는 지난 3월 술자리에서 처음 만난 남자와 나이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다 흉기를 휘둘러 그를 살해했다. 경찰은 “김씨보다 한 살 어린 피해자가 김씨에게 반말을 하자 순간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며 “당시 김씨는 사업에 실패해 사업체가 경매로 넘어가는 등 큰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전했다.
살인은 악마가 저지르는 범죄가 아니다. 살인은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고, 또한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범죄다. 다만 관건은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분노 조절 능력이다. 20여 년의 형사생활 동안 100여 건의 살인사건을 경험한 곽재표 경위는 “대부분의 살인사건은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벌어진다”며 “이들은 제정신을 차리고 난 뒤에는 막심한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린다. 자신이 가족을 죽였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이윤호 교수는 “대부분의 살인 범죄에서 범행 동기가 일방적으로 가해자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무원 김씨나 회사원 신씨의 경우처럼 많은 살인사건에서 분노를 촉진하는 피해자의 언행이 살인행위를 유발하는 것이 사실이다. 한림대 조은경 교수(심리학)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모욕을 주는 상대를 공격하는 것은 인간에게 본능에 가까운 일”이라며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극한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