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장교동 한화그룹 빌딩, 한화석유화학 여수공장, 서울 소공동 서울프라자 호텔 주변 야경, 설악프라자컨트리클럽,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 명품점, 서울 여의도 한화증권 빌딩(왼쪽부터).
당시 대장정에 참여한 한 임원은 “발이 부르터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의 ‘지옥훈련’이었지만 동료 임직원이 묵묵히 걷는 모습을 보고 힘을 얻어 완주했다”면서 “무엇보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게 가장 큰 소득이었다”고 말했다. 나머지 100km는 ㈜한화 남영선 사장과 한화종합화학 조창호 사장, 한화증권 진수형 사장 등이 임직원 220여 명을 이끌고 완주했다.
‘한화 트라이서클’ 새 CI 전 계열사에 적용
이들이 대장정에 나선 것은 그룹 창립 시절 선배들의 기업가 정신을 되살리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래서 출발지도 한화그룹의 토대를 닦은 인천공장 터로 정했다. 행로는 철새의 이동경로를 따랐다. 김승연 회장이 10월9일 그룹 창립 54주년 기념사에서 “글로벌 시대에는 둥지만 지키는 텃새보다 먹이를 찾아 대륙을 횡단하는 철새의 생존 본능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 때문이다.
지난해 신입사원과 함께 50km 산악행군을 했던 김 회장은 이번 대장정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대장정에 앞서 계열사 CEO들을 불러 “이번 대행진을 통해 한화의 핵심 임직원이 직접 몸으로 부딪치면서 변화와 혁신을 고민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그룹의 DNA를 바꿔 ‘뉴 한화’를 창조하려는 김 회장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한화는 ‘뉴 한화’ 건설을 위해 최근 ‘한화 트라이서클’이라는 새 기업이미지(CI)도 선포했다. 새 CI는 신뢰(Trust), 존경(Respect), 혁신(Innovation)을 뜻하는 세 개의 원이 만나는 형상으로 이런 그룹 핵심 정신의 창조적 만남을 통해 고객과 사회 그리고 인류의 조화로운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새 CI는 그룹 창립 55주년을 맞는 내년부터 전 계열사에 적용한다.
구분 | 1952년 | 1980년 | 1990년 | 2005년 |
계열사 수 | 1개 | 21개 | 26개 | 33개 |
종업원 수 | 2만2342명 | |||
매출액 | 5000만환 | 7642억원 | 2조8824억원 | 20조5584억원 |
자산 | 20만환(자본) | 5864억원 | 6조5852억원 | 51조4470억원 |
㈜한화 화약부문 보은공장(왼쪽), 2004년 5월20일 한화종합화학 베이징 공장 준공식.
“지금의 한화그룹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도 모른 채 무한경쟁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건 아닌지, 하루도 편히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다.”
“지금 우리가 처한 경영 환경은 기업의 연륜만으로는 발전을 기약할 수 없는 냉혹한 현실이며, 단 한순간도 안심할 수 없는 위기의 연속임을 자각해야 한다.”
“10여 년 전 ‘변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절실한 심정으로 의식개혁을 통한 경영혁신을 여러 차례 주문했지만, 변화 의지가 부족하고 위기의식이 미흡했다. 결국 한화그룹은 그룹의 존망과 안위까지 걱정하면서 ‘폐를 도려내는 IMF의 아픔’을 감수해야 했고, 그룹 계열사들을 매각하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최근 김 회장의 발언을 보면 그가 직접 그룹의 대변신을 진두지휘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남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차세대를 넘어 차차세대 동력까지 발굴해 나가는 마당에 한화는 기존 사업에만 만족하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김 회장은 그 원인을 한화그룹이 경쟁이 적은 업종을 중심으로 성장해 그룹 임직원이 쉽고 편한 장사에 익숙해진 탓이라고 한다.
김 회장의 주문은 간단하다. 한화의 전 사업부문이 ‘혁신적이고, 글로벌하고, 미래지향적인’ 사업구조로 대변혁을 이뤄야 미래에도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화는 현재 화약, 석유화학, 유통, 레저, 금융 등 업종은 다양하나 내수 위주 업종으로 구성돼 있어 사업구조가 글로벌화돼 있지 않다는 게 김 회장의 고민이다.
김승연 회장 차차세대 성장동력 발굴 진두지휘
한화그룹의 지난해 전체 매출액은 약 21조원. 이 가운데 해외 수출액은 약 2조원으로 전체의 9% 규모다. 다른 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비중이다. 한화그룹의 수출은 주로 ㈜한화 무역부문에서 이뤄지고 있다. 한화 무역부문은 올해 수출 지역을 중국 중심에서 다변화해 10억5700만 달러의 수출 실적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한화는 수출도 수출이지만 해외 진출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한다는 전략이다.
한화그룹의 글로벌화 전략의 선봉은 한화종합화학. 한화종합화학은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미국 앨라배마와 캘리포니아, 태국 방콕에 해외 법인과 생산시설을 설립했다. 특히 5월8일 준공식을 가진 한화종합화학의 미국 앨라배마주 맥스포마 플라스틱 공장은 글로벌 자동차 부품업체로 도약하겠다는 전략에 따라 자동차 본고장에 설립했다. 투자 규모는 1700만 달러(약 170 억원).
2005년 11월2일 김승연 회장이 신입사원들과 함께 50km 산악행군을 하고 있다.
레저부문 선도 한화국토개발 베트남 진출
㈜한화 무역부문은 로템과 컨소시엄을 이뤄 2002년 1억9900만 유로 규모의 아테네올림픽 전동차 126량 납품 계약을 따냈다. 알스톰-지멘스 컨소시엄, 카프(CAF) 등 유럽의 선진 철도차량 업체와 경쟁한 끝에 성사시킨 것이었다. 아테네 지하철 사업은 그리스 국책사업의 하나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 개최 시기에 맞춰 아테네시 지하철 2, 3호선 연장선에 투입하기 위해 입찰을 붙였던 것. ㈜한화 무역부문은 최신 기술이 적용된 중형 전동차 21편성 126량을 로템사가 제작해 2004년까지 분할 납품했다.
한화국토개발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담 기간인 11월16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최고경영자 회의(CEO Summits)’에서 응우옌떤중 베트남 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동모컨트리클럽을 운영하는 킹스밸리사와 합작 사업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한화국토개발은 이미 2004년 12월3일 일본 나가사키현 오션팰리스 골프코스를 인수해 해외 진출을 시작했다.
합작사업 규모는 1억5000만 달러. 양사 간 인력 교류 프로그램도 진행할 예정이다. 한화국토개발 관계자는 “두 회사는 하노이와 호치민 지역 내 복합 리조트단지를 공동 개발하게 된다”면서 “한화국토개발은 이를 계기로 레저산업에 대한 기획·건설·시설운용 등 선진경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베트남의 레저산업 발전에 기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단지에는 골프장과 리조트 시설은 물론 대규모 스파도 건설된다.
한화석유화학㈜ 역시 중국에 현지법인과 사무소를 두고 있고, 대한생명도 2003년 9월 중국 베이징에 주재사무소를 열고 글로벌 경영에 나섰다.
한화증권은 96년 헝가리에 한화헝가리은행을 설립하는 등 비교적 일찍 해외 진출에 나섰다. 한화증권은 지난해 말 기준 자본금 2600만 달러, 총자산은 6100만 달러다. 한화증권은 2003년 3월 말 중국 금융 중심지인 상하이에 사무소를 개설한 데 이어, 그해 10월에는 중국 최대 증권사인 해통증권과 포괄적 업무제휴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김 회장의 눈높이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는 수준. 김 회장은 최근 “현재 각 계열사별로 해외 진출 여부를 검토 중이나 변화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지적했다. 또 대한생명에 대해서는 “중국시장에 진출한 지 3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가시적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뉴 한화’ 건설을 위한 또 다른 핵심과제는 신성장 동력 발굴이다. 김 회장의 진단에 따르면, 현재 한화는 “한 그루의 과수를 심어놓고 그 나무가 늙을 때까지 두고두고 따먹을 생각만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래서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기 때문에 생존 차원에서 기존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면밀히 재분석하고 검토해야 한다는 것.
이에 따라 한화그룹은 대우건설 인수전에 참여하는 등 기업 인수·합병(M·A)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한화 관계자는 “각 계열사가 검토하고 있는 미래 성장산업은 ‘대외비’여서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지만 현재 다양한 업종에 걸쳐 인수 가능한 업체를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화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되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적극적으로 M·A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다양한 업종에 M·A 가능 기업 면밀 검토
한화는 ‘뉴 한화’ 건설에 필요한 핵심 인재들을 확보하는 데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승연 회장은 인재 확보와 양성의 중요성을 언급할 때마다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사장보다 더 좋은 대우를 해줘도 좋다”고 강조하곤 한다. 외부와 내부 인력이 공존하는 한화식 ‘하이브리드 경영’이다. 이에 따라 장일형 전 삼성전자 홍보팀장이 그룹 홍보팀장으로 영입됐고, 채정석 전 서울남부지검 부장검사가 법무팀장으로 스카우트됐다. 계열사 CEO 가운데 외부 영입인사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화그룹은 생존이 위태로웠던 외환위기 시절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거듭났다. 위기를 기회로 삼은 셈이다. 외환위기 이후 10여 년 만에 김 회장은 다시 변화와 혁신을 외치고 있다. 한화그룹이 어떻게 변신할지 주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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