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에는 쑥스럽지만 필자의 크리에이티브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주인공은 ‘마이녹실’이라는 탈모 예방 치료제. 탈모는 현대인에게 너나 없는 공포의 대상임과 동시에 현대의학으로도 고치기 힘든 난치병이다. 때문에 구구절절한 효능 효과들로 예방과 치료를 약속하는 광고 메시지는 크게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나는 머리와 수염에 관한 몇 가지 미스터리를 가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나이가 들면 머리칼은 호시탐탐 빠지는데 수염은 왜 시나브로 나기 시작할까’라는 호기심이다. 우리의 ‘아이데이션’(아이디어를 구하는 모임)은 시작부터 흥미진진했다. ‘수염이 멋진 모델, 그러나 머리칼이 없는 모델 찾기’ ‘심플한 건 기본’ ‘임팩트(impact)가 있어야지’ 뭐 이런 것들이 아이디어의 내비게이션이 돼주었다.
결국 우리가 뽑은 헤드라인은 ‘Turn back your time’이었다. 아쉽게 지나가버린 청춘을 되돌리기 위한 방법으로 머리를 180도 돌리기로 했다. 처음엔 엽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재미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런대로 멋있다’는 자아도취에까지 이르게 됐다. 탈모를 지연해주고 발모의 싹을 틔워줄 그 어떤 자료나 데이터보다 힘이 있어 보였다.
문제는 우리가 찾는, 대머리에 멋진 수염을 기른, 그리고 나름대로 캐릭터를 가진 완벽한 모델을 찾기가 만만치 않았다는 것. 그 벽을 우리는 CG(컴퓨터그래픽)라는 장대로 보란 듯이 넘었다. 결국 국내의 어떤 성형의사도 재현해내지 못할 완벽한 합성인간이 탄생한 것이다. 이름하여 ‘Minoxyl Guy’의 탄생이었다. 턱 따로, 이마 따로, 수염 따로, 강렬한 피어싱에 어울리는 헤어스타일(?) 아니, 불타는 수염의 주인공, 수염과 구레나룻을 세 조각으로 나누어 기른 앙증맞은 인상파, 그리고 온실 속에 화초 기르듯 잘 다듬어진 수염에 어울리는 보조개 왕자까지 각 모델들의 완벽한 캐릭터가 하나로 어울려 새롭게 탄생하는 순간이다.
광고가 그 나라의 민족성을 드러내는 잣대 역할을 한다는 말에 우리는 공감한다. 그래서 한국의 대부분 광고가 선비처럼 조용하고, 양반처럼 조심조심 걷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세월이 한참 흐른 마당에 광고도 좀더 과감하게 시도하고, 변화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변화 과정에서 오는 시행착오도 먼 발치에서 보면 길을 찾아가는 즐거움이니까.
주인공은 ‘마이녹실’이라는 탈모 예방 치료제. 탈모는 현대인에게 너나 없는 공포의 대상임과 동시에 현대의학으로도 고치기 힘든 난치병이다. 때문에 구구절절한 효능 효과들로 예방과 치료를 약속하는 광고 메시지는 크게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나는 머리와 수염에 관한 몇 가지 미스터리를 가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나이가 들면 머리칼은 호시탐탐 빠지는데 수염은 왜 시나브로 나기 시작할까’라는 호기심이다. 우리의 ‘아이데이션’(아이디어를 구하는 모임)은 시작부터 흥미진진했다. ‘수염이 멋진 모델, 그러나 머리칼이 없는 모델 찾기’ ‘심플한 건 기본’ ‘임팩트(impact)가 있어야지’ 뭐 이런 것들이 아이디어의 내비게이션이 돼주었다.
결국 우리가 뽑은 헤드라인은 ‘Turn back your time’이었다. 아쉽게 지나가버린 청춘을 되돌리기 위한 방법으로 머리를 180도 돌리기로 했다. 처음엔 엽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재미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런대로 멋있다’는 자아도취에까지 이르게 됐다. 탈모를 지연해주고 발모의 싹을 틔워줄 그 어떤 자료나 데이터보다 힘이 있어 보였다.
문제는 우리가 찾는, 대머리에 멋진 수염을 기른, 그리고 나름대로 캐릭터를 가진 완벽한 모델을 찾기가 만만치 않았다는 것. 그 벽을 우리는 CG(컴퓨터그래픽)라는 장대로 보란 듯이 넘었다. 결국 국내의 어떤 성형의사도 재현해내지 못할 완벽한 합성인간이 탄생한 것이다. 이름하여 ‘Minoxyl Guy’의 탄생이었다. 턱 따로, 이마 따로, 수염 따로, 강렬한 피어싱에 어울리는 헤어스타일(?) 아니, 불타는 수염의 주인공, 수염과 구레나룻을 세 조각으로 나누어 기른 앙증맞은 인상파, 그리고 온실 속에 화초 기르듯 잘 다듬어진 수염에 어울리는 보조개 왕자까지 각 모델들의 완벽한 캐릭터가 하나로 어울려 새롭게 탄생하는 순간이다.
광고가 그 나라의 민족성을 드러내는 잣대 역할을 한다는 말에 우리는 공감한다. 그래서 한국의 대부분 광고가 선비처럼 조용하고, 양반처럼 조심조심 걷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세월이 한참 흐른 마당에 광고도 좀더 과감하게 시도하고, 변화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변화 과정에서 오는 시행착오도 먼 발치에서 보면 길을 찾아가는 즐거움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