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5일 토요일 저녁, 경기도 일산 신도시 장항동의 한 상가건물 지하. 30평 남짓한 공간에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찼다. 무대라고 부를 것도 없는 앞쪽의 비좁은 공간에 만화가 신동헌 화백(80)이 서 있다.
“이 허름한 곳에서 주말마다 열린 연주회가 벌써 500회째를 맞이했습니다.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순전히 개인의 힘으로 국내외 유수의 연주자들을 초청해 500회 연주회까지 이어온 곳은 아마도 돌체가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동안 돌체 무대에 기꺼이 응해준 연주가들과 청중 여러분이 아니었다면 결코 이룰 수 없었던 일입니다.”
신 화백이 연주자와 연주곡목을 소개하자 곧이어 ‘콰르텟 21’이 입장해 자리를 잡았다. 콰르텟 21은 올해로 창단 15년째를 맞는 현악4중주단. 제1바이올린 김현미(경원대 교수), 제2바이올린 장혜라(경원대 겸임교수), 비올라 위찬주(한양대 교수), 첼로 박경옥(한양대 교수) 등 쟁쟁한 중견 연주자들로 구성된 국내 최고 수준의 실내악 단체다.
명절연휴 빼고 주말마다 공연 … 외국인 포함 1500명 출연
이날 콰르텟 21이 모차르트 d단조 K.421, 쇼스타코비치 c단조 No.8, 슈베르트 d단조 ‘죽음과 소녀’ D.810 등 세 곡을 연주하는 동안 연주자와 청중은 완전히 하나가 됐다. 활을 그을 때 첼로 주자의 얼굴에 나타나는 미세한 표정 변화, 템포가 빨라지면서 비올라 주자의 이마에 돋는 땀방울, 바이올린 주자의 감지될 듯 말 듯한 호흡 변화까지, 청중은 손을 내밀면 닿을 듯한 거리에서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연주를 보고 듣고 느끼고 공감했다.
일산의 클래식음악 감상실 ‘돌체’가 12월2일로 음악회 500회째를 맞았다. 1999년 11월 첫째 주말에 시작돼, 명절연휴를 제외하곤 주말마다 빠지지 않고 연주회를 계속함으로써 이뤄낸 대기록이다. 주역은 돌체의 김종수(51) 대표.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돌체를 9년째 운영해 ‘일산의 명소’로 만든 사람이다.
“지금까지 돌체 연주회에 나온 연주자는 1500명쯤 될 겁니다. 그중엔 외국인 연주자도 꽤 있습니다. 연주회를 시작하면서 첫 서너 달은 연주자 초청에 애를 많이 먹었는데, 이제는 대부분 자청해서 나오겠다는 분들로 연주 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돌체 연주회의 가장 큰 미덕은 물리적이든 정서적이든 연주자와 청중 간에 거리감이 없다는 점. 달리 말하면 음악을 만드는 연주자와 음악을 감상하는 청중 간의 교감(交感)과 울림이 다른 어느 곳보다 크다는 점이다. 규모가 큰 정식 연주회장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경험을 돌체에서는 주말마다 할 수 있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연주자들이 돌체 연주회를 자청해서 하겠다고 나서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려워합니다. 돌체 청중은 다른 어느 청중보다 수준 높고 예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음악인들 중에는 ‘돌체에서 연주를 한 뒤에 정식 무대에서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달 중순까지 기념연주 시리즈 진행
김 대표는 연주회가 시작된 초기 시절부터 꾸준히 자리를 지켜준 단골 멤버들이 오늘의 돌체를 만들었다며 공을 돌렸다. 돌체를 제 집처럼 드나드는 수십 명의 클래식 마니아들이 연주회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데 일조했다는 것. 예를 들어 연주회가 끝난 후 뒤풀이 자리에서 그날 연주된 음악에 대한 전문적인 질문으로 연주자를 긴장하게 하는 일은 돌체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광경이다. 초기 시절엔 연주 악보나 독일 가곡의 원어 가사집을 펼쳐 놓고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도 있어서 김 대표가 만류하기도 했다고 한다. 공연히 연주자를 긴장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
- 클래식음악 감상실을 하게 된 계기가 각별하다고 들었는데….
“제 본업은 인테리어 디자인입니다. 예전엔 꽤 큰 공장도 운영했는데 외환위기 때 부도로 망하고 말았죠. 그때 60여 명의 직원 월급도 줄 수 없어서 청산가리를 사 갖고 성산대교 밑 한강 둔치로 차를 몰고 갔습니다. 죽을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마침 라디오에서 베토벤 5번 교향곡 2악장이 흘러나왔습니다. 주변 사람에게 치이고 사업이 위기상황에 몰리느라 그때까지 틀어놔도 귀에 들어오지 않던 음악이 그 순간 제 귀에 들려온 겁니다. 음악을 듣는 중에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졌고, 그러자 어떻게든 다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김 대표는 자신처럼 갈 곳 없는 중년을 위한 쉼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한다. 바로 돌체의 시작이었다.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음악 사랑과 1963년형 알텍 604A 스피커는 돌체를 구체화한 밑받침이 됐다. 98년 1월, 드디어 돌체가 문을 열자 많은 중년 남성들이 돌체에 들러 지친 심신을 달랬다.
“당시 그분들을 위해 메모 노트를 마련해뒀습니다. 많은 분들이 거기에 자신의 심경을 남겼죠. 개중에는 마지막 유서 같은 글을 남긴 분들도 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 요즘에는 부모 손을 잡고 연주회에 오는 어린이들도 많이 보입니다.
“연주회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 아이들이 오는 것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아이들에게 클래식음악이 끼칠 수 있는 엄청난 영향을 생각한다면 결코 마다할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돌체는 요즘 500회 기념연주 시리즈를 진행 중이다. 12월 중순까지 예정된 토·일요일 콘서트가 모두 이 기획의 일환이다. 콰르텟 21 이외에 유영옥(피아노·12월2일), 소나비트 피아노트리오(3일), 김수연(바이올린·9일), 우예주(10일) 등이 출연할 연주자들.
김 대표는 얼마 전 ‘아득하게만 보이던 500회까지 넘겼으니 연주회를 그만 접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했다고 한다. 항상 겪는 적자 운영에 만성이 됐지만, 언제까지 대책 없이 버티기가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 그러자 돌체 단골 멤버들이 후원회를 결성했다. ‘이제 와서 그만두면 안 된다’는 무언의 압력이었던 셈. 얼마 전에는 김 대표에게 ‘뒷전에 물러나 있으라’고 해놓고는, 자기들끼리 숙덕숙덕 논의해 500회 기념파티도 열었다. 돌체는 이제 김 대표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공기(公器)가 됐다.
그래도 만약 김 대표가 ‘돌체를 접겠다’고 고집을 피운다면? 그러면 기자부터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기자에게도 돌체는 그동안 다른 어느 공간보다 편안한 쉼터, 놀이터, 독서실, 공부방이었으니까.
“이 허름한 곳에서 주말마다 열린 연주회가 벌써 500회째를 맞이했습니다.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순전히 개인의 힘으로 국내외 유수의 연주자들을 초청해 500회 연주회까지 이어온 곳은 아마도 돌체가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동안 돌체 무대에 기꺼이 응해준 연주가들과 청중 여러분이 아니었다면 결코 이룰 수 없었던 일입니다.”
신 화백이 연주자와 연주곡목을 소개하자 곧이어 ‘콰르텟 21’이 입장해 자리를 잡았다. 콰르텟 21은 올해로 창단 15년째를 맞는 현악4중주단. 제1바이올린 김현미(경원대 교수), 제2바이올린 장혜라(경원대 겸임교수), 비올라 위찬주(한양대 교수), 첼로 박경옥(한양대 교수) 등 쟁쟁한 중견 연주자들로 구성된 국내 최고 수준의 실내악 단체다.
명절연휴 빼고 주말마다 공연 … 외국인 포함 1500명 출연
이날 콰르텟 21이 모차르트 d단조 K.421, 쇼스타코비치 c단조 No.8, 슈베르트 d단조 ‘죽음과 소녀’ D.810 등 세 곡을 연주하는 동안 연주자와 청중은 완전히 하나가 됐다. 활을 그을 때 첼로 주자의 얼굴에 나타나는 미세한 표정 변화, 템포가 빨라지면서 비올라 주자의 이마에 돋는 땀방울, 바이올린 주자의 감지될 듯 말 듯한 호흡 변화까지, 청중은 손을 내밀면 닿을 듯한 거리에서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연주를 보고 듣고 느끼고 공감했다.
일산의 클래식음악 감상실 ‘돌체’가 12월2일로 음악회 500회째를 맞았다. 1999년 11월 첫째 주말에 시작돼, 명절연휴를 제외하곤 주말마다 빠지지 않고 연주회를 계속함으로써 이뤄낸 대기록이다. 주역은 돌체의 김종수(51) 대표.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돌체를 9년째 운영해 ‘일산의 명소’로 만든 사람이다.
“지금까지 돌체 연주회에 나온 연주자는 1500명쯤 될 겁니다. 그중엔 외국인 연주자도 꽤 있습니다. 연주회를 시작하면서 첫 서너 달은 연주자 초청에 애를 많이 먹었는데, 이제는 대부분 자청해서 나오겠다는 분들로 연주 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돌체 연주회의 가장 큰 미덕은 물리적이든 정서적이든 연주자와 청중 간에 거리감이 없다는 점. 달리 말하면 음악을 만드는 연주자와 음악을 감상하는 청중 간의 교감(交感)과 울림이 다른 어느 곳보다 크다는 점이다. 규모가 큰 정식 연주회장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경험을 돌체에서는 주말마다 할 수 있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연주자들이 돌체 연주회를 자청해서 하겠다고 나서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려워합니다. 돌체 청중은 다른 어느 청중보다 수준 높고 예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음악인들 중에는 ‘돌체에서 연주를 한 뒤에 정식 무대에서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달 중순까지 기념연주 시리즈 진행
김 대표는 연주회가 시작된 초기 시절부터 꾸준히 자리를 지켜준 단골 멤버들이 오늘의 돌체를 만들었다며 공을 돌렸다. 돌체를 제 집처럼 드나드는 수십 명의 클래식 마니아들이 연주회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데 일조했다는 것. 예를 들어 연주회가 끝난 후 뒤풀이 자리에서 그날 연주된 음악에 대한 전문적인 질문으로 연주자를 긴장하게 하는 일은 돌체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광경이다. 초기 시절엔 연주 악보나 독일 가곡의 원어 가사집을 펼쳐 놓고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도 있어서 김 대표가 만류하기도 했다고 한다. 공연히 연주자를 긴장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
- 클래식음악 감상실을 하게 된 계기가 각별하다고 들었는데….
“제 본업은 인테리어 디자인입니다. 예전엔 꽤 큰 공장도 운영했는데 외환위기 때 부도로 망하고 말았죠. 그때 60여 명의 직원 월급도 줄 수 없어서 청산가리를 사 갖고 성산대교 밑 한강 둔치로 차를 몰고 갔습니다. 죽을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마침 라디오에서 베토벤 5번 교향곡 2악장이 흘러나왔습니다. 주변 사람에게 치이고 사업이 위기상황에 몰리느라 그때까지 틀어놔도 귀에 들어오지 않던 음악이 그 순간 제 귀에 들려온 겁니다. 음악을 듣는 중에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졌고, 그러자 어떻게든 다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김 대표는 자신처럼 갈 곳 없는 중년을 위한 쉼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한다. 바로 돌체의 시작이었다.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음악 사랑과 1963년형 알텍 604A 스피커는 돌체를 구체화한 밑받침이 됐다. 98년 1월, 드디어 돌체가 문을 열자 많은 중년 남성들이 돌체에 들러 지친 심신을 달랬다.
“당시 그분들을 위해 메모 노트를 마련해뒀습니다. 많은 분들이 거기에 자신의 심경을 남겼죠. 개중에는 마지막 유서 같은 글을 남긴 분들도 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 요즘에는 부모 손을 잡고 연주회에 오는 어린이들도 많이 보입니다.
“연주회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 아이들이 오는 것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아이들에게 클래식음악이 끼칠 수 있는 엄청난 영향을 생각한다면 결코 마다할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돌체는 요즘 500회 기념연주 시리즈를 진행 중이다. 12월 중순까지 예정된 토·일요일 콘서트가 모두 이 기획의 일환이다. 콰르텟 21 이외에 유영옥(피아노·12월2일), 소나비트 피아노트리오(3일), 김수연(바이올린·9일), 우예주(10일) 등이 출연할 연주자들.
김 대표는 얼마 전 ‘아득하게만 보이던 500회까지 넘겼으니 연주회를 그만 접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했다고 한다. 항상 겪는 적자 운영에 만성이 됐지만, 언제까지 대책 없이 버티기가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 그러자 돌체 단골 멤버들이 후원회를 결성했다. ‘이제 와서 그만두면 안 된다’는 무언의 압력이었던 셈. 얼마 전에는 김 대표에게 ‘뒷전에 물러나 있으라’고 해놓고는, 자기들끼리 숙덕숙덕 논의해 500회 기념파티도 열었다. 돌체는 이제 김 대표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공기(公器)가 됐다.
그래도 만약 김 대표가 ‘돌체를 접겠다’고 고집을 피운다면? 그러면 기자부터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기자에게도 돌체는 그동안 다른 어느 공간보다 편안한 쉼터, 놀이터, 독서실, 공부방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