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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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철회 … 역주행 출근 … ‘인사권의 굴욕’

  • 입력2006-12-11 15: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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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보 수락의사 철회.’ 용어 선택에 만감이 교차했을 성싶다. 11월27일 사퇴한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게 남은 건 ‘상처뿐인 상처’다. 8월16일 헌정사상 첫 여성 헌재소장으로 지명된 이후 ‘낙향거사’로 곤두박질치기까지 103일 동안 그는 내내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심경이었을 것이다.

    전씨는 일면 피해자다. 그럼에도 죄 아닌 죄가 있다면 그건 두 가지다. 하나는 노무현 대통령과 사법시험 동기라는 점. 청와대는 ‘코드’가 맞는 그를 헌재소장에 앉히려고 그의 헌법재판관 임기가 3년이나 남았음에도 중도하차시켰다. 이는 전씨로선 불가항력이었던 측면이 있다.

    다른 죄는, 그가 청와대의 독선과 편법에 대항해 합리적 절차를 따지는 정치권을 향해 오히려 오기로 일관함으로써 ‘파행 국회’를 불러왔다는 점이다. 그 책임의 일부는 전씨에게 있다. 하지만 근원적인 책임은 그를 무리하게 발탁한 인사권자의 몫이다.

    그래서일까. 전씨의 ‘굴욕(屈辱)’은 안쓰럽다.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다가 갑자기 능력 있는 법조인으로서의 경륜과 체면이 한없이 구겨지고 예전의 직책(헌법재판관)마저 사라져 ‘실업자’ 신세로 전락했으니 말이다. 애꿎은 사람 데려다 놓고 바보로 만든 죄. 위자료라도 지급해야 할 청와대의 큰 죄다.

    정연주 KBS 사장이 연임됐다더니, 하마터면 그가 회사 주차장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착각할 뻔했다. 첫 출근일인 11월27일, 노조원들이 KBS 본관 주차장 입구를 막고 출근저지 투쟁을 벌이자 정 사장은 주차장 출구 쪽으로 ‘역주행’한 뒤 사무실로 들어가는 순발력을 뽐냈다.



    기동력이 돋보이는 기발한 ‘작전’. 하지만 볼썽사나운 것만은 어찌할 수 없을 듯하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지 모를 출근저지 투쟁에 대비해 ‘활로’라도 개척해두려 사전답사를 한 걸까, 아니면 선거철도 아닌데 난데없이 ‘출구 조사’라도 해보고 싶었던 걸까.

    정 사장은 출근에 성공한 뒤 사내 방송을 통해 “모든 권력으로부터 KBS의 독립성을 지켜내겠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와 고품격 프로그램으로 공적 서비스를 다하는 일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모든 권력으로부터 KBS의 독립을 지켜내겠다? 그런데 왜 자신은 정작 현 정권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하는가. ‘뒷구멍’으로 출근하는 사장이 이끄는 대한민국 공영방송의 처지, 이것이야말로 KBS의 메인 뉴스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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