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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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수술 부추기는 삐끼들의 세상

미장원·룸살롱 관계자들 손님 몰아주고 리베이트 챙겨…수술비 마련 위해 빚더미·접대부 전락 ‘부작용’

  •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4-09-22 1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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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형수술 부추기는 삐끼들의 세상
    서울시 마포구 B미용실 주인 김모씨(50)는 벌써 3년째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낀 채 손님을 맞이한다. 압구정동 H성형외과에서 성형수술을 받고 생긴 얼굴 흉터가 자신이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기 때문이다.

    김씨가 성형수술을 받은 것은 2000년 2월. 미용실 단골손님에게서 “미용실 사장은 압구정에서 50% 할인가에 수술받을 수 있고 다른 고객을 소개하면 수술비의 20%를 커미션으로 챙길 수 있다”는 제의를 받고 나서였다. 눈가의 흉터만 지우려던 김씨는 50% 할인 혜택과, 손님 몇 명만 소개하면 수술비까지 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볼, 눈 밑, 코와 가슴에 차례로 칼을 댔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혹했다. 심한 고통과 함께 징그러운 흉터가 생긴 것. 재수술 요구는 번번이 묵살됐고, 다른 의원과 대학병원의 성형외과 전문의들도 그녀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확인 결과 그녀에게 수술을 권유한 미용실 손님은 바로 H성형외과의 상담실장이었다. 그는 김씨를 소개한 대가로 얼마의 돈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명동과 압구정, 마포의 일부 유명 미용실 사장과 직원들은 압구정 성형타운의 ‘삐끼’라고 보면 된다. 속은 나도 잘못이지만 너무 억울하다”고 주장한다.

    압구정 성형타운에서도 각 병원간 경쟁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속칭 ‘성형 삐끼족’에 의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삐끼족에 대한 커미션 부담으로 수술단가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성형외과 전문의들은 삐끼족이 데려온 고객들을 상대적으로 홀대하게 마련. 이 과정에서 피해 본 환자들은 마땅히 호소할 곳도 없다.

    현재 압구정 삐끼족의 상당수는 일부 미용실, 웨딩숍, 고급 룸살롱 등의 업주나 직원들이라는 것이 성형업계의 얘기다. 최근에는 사채꾼이나 연예기획사 직원까지 이 대열에 가담해 성형 수술비의 20%에서 많게는 50%까지 챙기고 있다는 것. 이렇게 소개받고 성형에 일단 성공한 사람은 자신이 삐끼가 돼 또 다른 사람에게 성형을 강요하거나 조장해 커미션을 챙기는 순환 고리를 형성한다.



    서울 강남 미용실의 상당수는 아예 ‘압구정 성형의원의 분원(分院)’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 같은 미용실에서도 직원마다 권하는 성형외과가 따로 있다. 압구정동 B헤어숍을 자주 이용하는 권인현씨(30)는 “한 손님을 사이에 두고 직원끼리 커미션을 챙기기 위해 싸우는 모습도 자주 봤다”고 전했다.

    성형수술 부추기는 삐끼들의 세상
    하지만 압구정동 성형외과 삐끼족 중 가장 큰손은 역시 일부 룸살롱 마담들. 이들은 새로운 아가씨가 들어올 때마다 성형을 권한 뒤 수술비의 20%를 챙긴다. 연예인 뺨치게 예쁜 아가씨에게 ‘2차’를 강요해 돈이 모이면 ‘더 예뻐지게 해준다. 언니들도 다 했다’며 성형수술을 시키거나, 손님에게 인기 없는 아가씨들에게 성형수술을 하라고 돈을 빌려준(마이깡) 다음, 이를 미끼로 윤락을 강요하는 방식을 쓴다. 압구정, 신사동, 테헤란로 등 강남 지역 최고급 룸살롱들은 압구정 성형타운과의 접근성이 좋아 더욱 대접받는다. 테헤란로 C룸살롱 지배인 이모씨는 “주로 상담실장이 찾아와 부탁하고 가거나 마담이 직접 의원을 찾아가 계약 조건을 제시할 경우 이를 거부하는 의사는 거의 없다. 마담의 수술은 거의 공짜”라고 털어놓았다.

    문제는 이들 아가씨들이 일단 얼굴을 고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는 점이다. 강남 I호텔 룸살롱에서 접대부로 일하는 김모씨(22)가 그런 경우. M대학 휴학생인 그녀는 용돈도 마련할 겸 재미 삼아 지난해 2월부터 아가씨 생활을 시작했다. 물론 ‘2차’는 사절. 그러나 김씨는 동료 아가씨들이 눈 코 턱 등을 수술해 하루가 다르게 예뻐지는 모습에서 심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담은 2차를 나가면 적립금으로 성형을 시켜주겠다며 그녀를 유혹했고, 얼굴 성형에 호기심이 있던 그녀는 고민 끝에 이를 허락했다. 지난해 3월 압구정 J성형외과에서 코를 높여 크게 만족한 김씨는 두 달 후에는 눈을 커 보이게 하는 수술을 했다. 그리고 네 달 후에는 안면 윤곽술을 받았다. 턱을 깎아내는 대수술을 한 것.

    이제 룸살롱에서 그녀는 탤런트 아무개로 불리며 손님들에게 인기 절정의 아가씨가 됐다. 하지만 얼굴 대부분을 고쳤어도 김씨는 뭔가 허전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여기저기 잡티가 보이고, 마침내 수술하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 심각한 병증에 시달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형중독자’가 된 것이다.

    김씨는 지난해부터 올 3월까지 1년 동안 무려 다섯 차례나 얼굴에 칼을 댔다. 그때마다 마담은 리베이트를 챙겼고, 그녀는 성형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매일 2차를 자원해 나갔다. 결국 성형수술을 받기 위해 몸을 팔고, 몸을 팔아 성형수술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는다. 얼굴만 예뻐지면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성형수술 부추기는 삐끼들의 세상
    이렇듯 술집에 들어가 성형중독증에 걸린 여성이 있는 반면, 사채로 빌려 쓴 성형수술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술집에 들어온 경우도 있다. 강남구 서초동 B카페에서 아가씨 생활을 하고 있는 이혜란씨(가명·25).

    대학 졸업 후 비서직 시험에 번번히 떨어진 그녀는 지난해 5월 얼굴 성형수술에 도전했다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보수적인 부모님의 눈을 피해 자신의 카드 서비스(한도 400만원)로 쌍꺼풀과 코 높이기 수술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수술 결과는 대실망. 재수술을 하려 했지만 이미 카드 사용 한도액을 다 써버린 상태였고 이씨는 결국 사채에 손을 댔다. 한때 무가 정보지에 실렸던 ‘성형 대출’ 사채를 빌려 쓴 것. 사채꾼은 이씨에게 압구정의 한 성형외과를 소개하며 “연예인 쫛쫛쫛도 여기에서 수술했고, 이 의원은 재수술에 특히 강하다”고 그녀를 유혹했다. 사채꾼의 현란한 언변에 넘어간 이씨는 압구정동 M성형외과에서 재수술뿐만 아니라 안면윤곽술(턱 수술)까지 받았다. 턱 수술 비용과 재수술비를 합해 600만원에 해주겠다는 상담실장의 파격적 제의를 거부하기 힘들었던 것.

    그 다음부터는 계속 인생의 하강곡선이 그려졌다. 얼굴에 고름이 잡히는 등 수술 부작용 때문에 4개월 동안 취직을 못한 그녀는 카드빚을 상환하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것은 물론, 연 50%의 사채 이자와 원금을 갚지 못해 지난해 10월 집을 나왔다. 1년이 채 안 돼 2500만원으로 불어난 사채와 카드빚을 갚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것은 술집 아가씨 생활. 이씨는 “사채꾼의 유혹에 넘어가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뒤늦게 후회했다.

    성형수술 부추기는 삐끼들의 세상
    일반인의 성형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최근에는 압구정의 성형외과와 연계해 공개적으로 수술비를 대출해 주는 은행까지 등장했다.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명품관) 맞은편에 있는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이 바로 그곳. 은행측은 지난해 1월부터 압구정 성형외과 20곳과 계약을 맺고 1000만원 한도 내에서 연리 12~14%에 ‘뷰티업’ 대출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난 한 해 이곳을 통해 치료비를 대출한 사람만 60명에 총 대출액이 2억2000만원. 이 은행 김광식 과장은 “무보증 대출로 재직증명서와 견적서만 가져오면 대출이 가능하며, 신용도가 높은 사람은 1000만원 이상의 대출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압구정의 ‘성형 삐끼’ 문화는 연예계까지 침투했다.

    “최근에는 연예기획사 직원이라며 연예인 지망생을 보내줄 테니 수술비의 50%를 커미션으로 달라는 브로커가 설치고 다닙니다. 저에게도 찾아왔지만 거부했죠. 아무리 성형도 비즈니스라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청담동에서 개업중인 성형외과 전문의 박현씨의 비판이다.

    ‘성형 권하는 사회’의 사생아 ‘성형 삐끼족’은 이 시간에도 당신의 외모 콤플렉스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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