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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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몸매 환상 ‘식이장애’부른다

지나친 음식 스트레스 땐 ‘거식·폭식증’우려… 다이어트에 관심 많은 사춘기 여성 조심!

  • < 정찬호/ 신경정신과 전문의 >

    입력2004-09-24 14: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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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른 몸매 환상 ‘식이장애’부른다
    진국씨(31)는 요즘 아내 민희씨(27)를 보기가 민망스럽다. 결혼한 지 2년이 지난 최근 아내가 ‘폭식증’ 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 그간 폭식증을 숨기며 아내가 남몰래 겪었을 고초를 생각하니 애처로운 생각마저 들었다.

    대학 연애 시절, 민희씨는 영화를 보거나 근사한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대신 허름한 선술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술잔 기울이는 것 을 더 좋아했다. 진 국 씨는 아무것이나 가 리지 않고 잘 먹는 소탈 함과 그러면서도 항상 흐트러 지지 않고 늘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아내의 모습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아내의 빼어난 몸매 이면에는 뼈를 깎는 고통이 감추어져 있었다. 강박적일 정도로 살찌는 것에 민감한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탐식과 구토를 통해 체중을 관리하는 잘못된 습관에 젖어 있었던 것. 출산 뒤 식욕이 왕성해지자 구토 빈도는 더욱 늘어갔다.

    그녀는 결국 위경련으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고, 진국씨는 그제서야 아내가 폭식증 환자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녀에게 음식은 소화시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미용’을 해치는 적일 따름이었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단지 생존의 차원을 떠나 미각을 충족시키는 즐거움이며, 대인관계에서 상대방과 소통 공간을 마련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그런데 지나치게 체중 감량에 신경 쓰다 보면 음식을 아예 멀리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특히 외모에 관심이 많은 20대 여성들은 살을 빼려는 욕심에 무조건 굶는 경우가 많다. 중도에 포기하면 다행이지만, 음식을 멀리하는 습관이 지속되면식욕 자체를 상실하는 거식증이란 함정에 빠지게 된다. 처음에는 체중이 줄고 야위기 때문에 다이어트에 성공한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 것도 병이 깊어지는 원인이 된다. 거식증을 방치하면 영양 공급이 중단된 기간에 비례해 후유증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만일 정상 체중의 15% 이상 체중이 줄면 무월경증, 탈모증, 체온 저하, 피부 건조증, 전해질 불균형 등이 복합적으로 일어나 결국 신장 및 심장기능 장애 등 심각한 합병증을 초래한다. 더욱이 정상 체중의 30∼40%까지 체중이 감소하면 인체 기능이 제구실을 못해 생명이 위태롭게 된다. 거식증으로 인한 영양 결핍이 이 정도로 심각한 경우는 전문기관에 입원해 치료받는 방법 외에는 대책이 없다. 병원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은 혈관이 비정상적으로 가늘어지고 탄력이 현저히 떨어져 주사 바늘조차 삽입하기 어려울 만큼 인체 기능이 마비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마른 몸매 환상 ‘식이장애’부른다
    거식증 환자의 30%는 폭식증에 빠지기 쉽다. 폭식증은 음식에 대한 스트레스로 발병한다. 폭식증 환자의 대부분은 우울하거나, 화가 날 때 참았던 분노를 음식으로 푸는 경향이 있다. 폭식증의 특징은 평소에 외면해 왔던 고량진미에 욕심을 내고, 최대한 빨리, 많은 양을 한꺼번에 먹어치우는 것. 말 그대로 목구멍까지 차오르고 배가 아플 때까지 먹는다. 그리고 지독한 포만감이 차오를 즈음 보상행동이 촉발한다. 자신의 박약한 의지에 죄책감을 느끼고 살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음식물이 채 소화되기도 전에 목에 손가락을 넣어 모두 토하거나 설사약, 이뇨제 등으로 배설하고 만다.

    이에 대한 문제점을 발견했다 해도 대부분의 환자는 수치심 때문에 증상을 감춘다. 또 먹는 것조차 자신의 뜻대로 조절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빠져 도벽이나 폭음을 일삼는 경우도 있다. 만일 이러한 폭식과 강제 배설행동이 적어도 일주일에 2회, 3개월 이상 지속되었다면 반드시 식이장애 클리닉에서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아름다움의 기준은 날씬함이다. 일반인들의 동경 대상이 되는 연예인이나 모델 중 의학적으로 건강한 체중을 지닌 이는 거의 없다. 그들은 화면으로 비쳐지는 모습을 중시하기 때문에 대개 정상 체중에 훨씬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런 특수성이 보편적인 기준으로 둔갑해 많은 여성들에게 고통을 감내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식이장애 환자의 90% 이상이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 사춘기에서 초기 성인기의 여성들에 집중된 것도 바로 이 때문. 학계에서는 다이어트 등 체중조절에 들어간 사람의 15∼20%가 식이장애 환자일 것으로 추정한다. 미국 의학계의 조사 결과, 여대생의 40% 정도가 일상적으로 이런 증상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을 정도.

    개인의 성격도 식이장애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식이장애 환자의 많은 수가 심리적으로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거나 타인에게 의존하려는 성향이 짙다. 이런 면모가 곧 지나치게 외모에 집착하는 원인이 된다. 즉 보이는 것을 통해 우월감이나 정체성을 찾으려는 데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식이장애 환자들은 먹는 행위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에 무력감과 더불어 수치심까지 느낀다.

    식이장애를 극복하는 데 가장 큰 힘이 되어주는 사람은 가족이다. 그러나 지나친 간섭이나 무관심은 경계해야 한다. 식사나 음식에 대해 부담을 주어서도 안 된다. 다만 환자가 자신의 체중과 식사 습관에 스스로 문제점을 발견하고 바로잡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때 격려와 칭찬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음식 자체를 거부하는 환자라면 무조건 음식 섭취를 강요하기보다는 과일주스 등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것부터 권하면서 서서히 음식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만약 환자가 폭식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못할 경우, ‘배고픔’은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욕구라는 점을 들어 음식에 대한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잘 다독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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