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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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神 마고’ 21세기에 환생

연극·무용극 이어 영화 개봉 등 ‘마고 붐’ … 학술계 논쟁도 열기 뜨거워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입력2004-09-23 14: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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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女神 마고’ 21세기에 환생
    3년 전 40여명의 여성들이 지리산 노고단에 모여 ‘마고할머니’에게 예를 올리며 ‘여신축제’를 벌일 때만 해도 ‘마고’는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여신일 뿐이었다. 그 후 여신 마고는 2001년 6월 수원 화성국제연극제의 주인공(한·미 합동공연 개막작 ‘마고’)으로 무대에 오르는가 하면, 서울시무용단의 무용극 ‘산-그 영원한 생명의 터’에서는 아득한 신화의 시대를 상징하는 존재로 그려지기도 했다. 올해는 퍼포먼스 팬터지라는 새로운 장르를 표방한 영화 ‘마고’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5월20일 예정). 또 여성 록밴드 마고밴드, 연극집단 마고극장 등 마고의 이름을 앞세운 단체도 등장했다. 이제 마고 신화는 21세기 문화·예술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새로운 영감의 원천으로 떠올랐다.

    ‘부도지’ 속 창세신화에 등장

    그러나 우리는 오래 전부터 어떤 형태로든 마고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천신의 딸 마고가 지리산에 내려와 8명의 딸을 낳았다는 천왕봉과 반야봉에 얽힌 전설, 마고할머니가 아흔아홉 마지기의 논을 만들어 하늘양식을 지었다는 석문(단양 8경 중 하나), 마고할머니가 돌을 갈다가 남겼다는 양양 죽도의 절구바위, 역시 마고할머니가 치마에 돌을 가져와 성을 쌓고 나머지 돌을 버렸다는 거제도의 마고덜겅 등 이 땅 곳곳에서 마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女神 마고’ 21세기에 환생
    1995년에는 동화작가 정근씨가 ‘마고할미’라는 그림동화를 발표했다. 제주 지역에서 설문대 할망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마고할미의 전설을 동화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여기서 모든 신화의 중요한 구성 요소인 세상을 창조하는 ‘우주거인’의 개념을 찾을 수 있다.

    여신으로서 마고의 제 모습은 신라 눌지왕 때 박제상이 썼다는 ‘징심록’ 중 ‘부도지’편에 나타난다. 현재 ‘부도지’ 원문은 전해지지 않는다(상자기사 참조). ‘부도지’는 우리 민족 고유의 창세신화 혹은 개벽신화의 존재를 알려준 놀라운 기록이다. 그동안 우리에게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단군신화(건국신화) 외에 문헌상 남아 있는 창조신화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부도지’에 따르면 선천과 후천의 중간인 짐세 시대에 하늘에서 들려오는 8려음(呂音)에서 마고성(麻姑城)과 마고가 태어났다. 마고는 혼자서 두 딸 궁희와 소희를 낳았다. 다시 궁희와 소희가 4명의 천인(황궁씨, 백소씨, 청궁씨, 흑소씨)을 낳고, 4명의 천녀를 낳아 이들 4쌍에서 각각 3남3녀가 태어난다. 이들이 인간의 시조이며 몇 대를 거쳐 12파가 각각 3000명에 이를 만큼 번성했다고 한다. 인구 증가로 마고성의 식량인 지유(地乳)가 부족해지자 백소씨 일족인 지소씨가 지유 대신 포도를 먹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도 권한다(‘오미의 변’이라고 함). 마고성 안에서 지유만 마실 때는 무한한 수명을 가졌던 사람들이 풀과 과일을 먹게 된 후 천성을 잃고 수명이 줄어들었다.

    이에 대한 책임을 느낀 황궁씨가 마고 앞에 복본(復本·근본으로 돌아감)을 서약하고 사람들을 4파로 나눠 성을 떠난다. 그중 황궁씨는 일행을 이끌고 동북아시아 지역의 천산주(天山州)로 가서 한민족의 직계 조상이 된다. 황궁씨의 자손은 유인, 유호, 한인, 한웅, 단군으로 이어진다.

    ‘女神 마고’ 21세기에 환생
    알엠제이씨가 제작한 영화는 마고신화를 태초의 어머니인 마고와 그의 분신인 12정령(물 불 비 바람 달 길 대지 구름 나무 파문 그림자 천무), 그리고 마고와 함께 사랑을 나눠 만물을 빚어낸 태초의 남자 한웅의 이야기로 변형했다. 영화는 환경오염과 전쟁, 핵, 강간과 폭력, 마약 등으로 찌든 현실세계에 머물고 있는 한웅이 12정령의 인도로 마고성에 대한 기억을 회복하고 이 세상 위에 낙원 마고성을 다시 세우려 한다는 줄거리다.

    그러나 이 영화의 기획자이자 시나리오를 쓴 장경기씨가 영화에서 마고를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으로 설정한 부분에 대해서는 논쟁이 진행중이다. 장씨는 “마고는 음양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무극의 상태로 남녀와 음양을 같은 비중으로 품고 있는 중성”이라면서 “‘부도지’에 근거한 창세신화에서 마고를 생물학적인 의미의 여인으로 보는 것은 단편적인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미국에서 활동중인 종교여성학자 황혜숙씨가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다음 사이트에 개설한 종교여성 카페(cafe.daum.net/religionwomen)에서 ‘마고 영화 감시대’를 발족하고 영화 ‘마고’는 ‘부도지’의 마고 기록을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우선 ‘한단고기’에 의하면 기원전 3898년 한국의 신시시대를 시작한 한웅을 기원전 3만년 전의 마고와 동시대인으로 설정한 것부터가 오류이며, 세계의 창조주인 여신 마고를 한 남자의 배우자 혹은 성적 상대자로 전락시킨 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 결국 영화 ‘마고’는 마고신화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폄훼했다.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영화를 놓고 이처럼 설전이 오가는 것을 신화 연구자들은 흥미롭게 바라본다. 이 과정에서 황혜숙씨가 “마고는 중국의 서왕모와 같은 여신”이라는 새로운 가설도 내놓았다. 즉 서왕모가 우주의 어머니, 세계의 주재자, 창조자의 이미지로 중국인들로부터 숭배를 받은 점에서 마고와 일치하며 서왕모가 머물렀다는 서방 곤륜산은 마고성이 위치했다고 알려진 파미르 고원 부근이다. 이 주장에 대해 ‘금문의 비밀’을 쓴 상고사 연구자 김대성씨는 “사실 중국 신화는 중국 고유의 것이라기보다 변방 민족의 신화를 차용한 경우가 많다”면서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동양학자 박현씨는 영화 마고를 둘러싼 논쟁을 떠나, 모처럼 일고 있는 마고 붐을 우리 신화 체계를 완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신화는 창세신화에서 자연신화, 문화신화, 역사신화, 영웅신화의 단계로 분화한다. 단군신화는 국조신화이며 역사신화일 뿐 그동안 우리에게 그 전 단계의 신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행히 ‘부도지’에 담긴 마고 이야기는 우리 신화의 공백을 메꿔준다. 황궁씨의 마고성 출방으로 창세신화가 끝나고 자연신화가 시작된다. 다시 황궁씨의 자손 유호씨 대부터 역사신화, 영웅신화의 시대가 열린다. 신화의 주인공이 신에서 인간으로 바뀌는 것이다.”

    박현씨는 ‘징심록’의 유실로 완전한 신의 계보를 작성할 수는 없으나 ‘부도지’에 등장하는 신들만이라도 정리된다면 그리스 로마 신화 못지않은 위대한 문화적 자산이 될 것이라고 했다.

    ‘꿈’을 잃어버린 인류에게 신화는 하나의 대안으로 다가온다. ‘부도’(符都)라는 말 자체가 하늘의 뜻에 부합하는 나라, 또는 그 나라의 수도를 가리킨다. 새로운 세기에 부활한 마고신화는 곧 인류가 희망하는 ‘부도의 꿈’을 말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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